회사에는 평가를 하는 사람과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다. 보통 팀장과 팀원인데 이 사이가 참 묘하다.
팀장은 팀원을 평가하지만 팀원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은 아니다. 팀원은 평가를 받는 입장이지만 팀원들이 마음먹고 팀장을 엿을 먹이면 팀장도 위태로워진다. 실제로 회사를 다니다 보면 팀원들이 합심하여 팀장 평가를 이상하게 줘서 면팀장*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대개는 이런 상호작용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비록 팀장이 평가권자로서 우위의 자리에 있더라도 팀원들과 상생을 도모하지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왕인 양 군림하려는 팀장 또는 평가권자들이 있다. 더 기가 막히는 건 그런 평가권자들이 특출 난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오직 먼저 입사하고 어떻게든 회사를 관두지 않고 버텼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 평가권을 갖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 면팀장 : 팀장의 직책을 박탈당하고 일반 직원이 되는 걸 의미함.
평가가 이뤄지는 과정과 결과는 사뭇 공정하지 못하다.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걔가 한 게 뭐가 있어. 운이 좋았지.”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실적이 나빠도 “걔는 열심히 했는데 운이 안 좋았지. 열심히 노력한 건 인정해 줘야지.”라는 말을 드는 사람이 있다. 누가 어떤 말을 듣는지는 평가권자가 결정한다.
금융상품 판매와 같이 개인의 업무와 재무 성과 간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 외의 업종에서는 하는 일이 재무적 성과로 직접 이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한 개인이 회사의 매출을 상승시키거나 수익률을 높이기 힘들다. 제조업이나 시스템이 잘 갖춰진 대기업일수록 그런 경향이 크다. 이런 회사에서는 애초에 일을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보다 일을 못 하는 사람을 뽑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인재를 채용할 때 스펙이 좋더라도 튀는 애들은 굳이 채용하지 않고 걸러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평가권자는 부하 평가에 있어 직원들의 업무능력으로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정량화할 순 없지만 일 잘하는 사람과 일 못 하는 사람은 직관적으로 구분이 된다. 일 못 하는 사람은 연중에 일을 못 해서 답답할 순 있지만 연말에 평가를 깔아줄 수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 일부러 팀을 구성할 때 일 못 하는 직원의 비율을 확보하는 팀장들도 있는데 팀원들도 대충 눈치를 챈다. 이를테면 암묵적 비밀인 셈이다. 그 사람과 같이 일해야 하는 사람만 속이 터진다. 보통은 같이 일을 하게 되는 사람도 평가권자의 눈 밖에 난 사람일 확률이 매우 높다. 좋은 평가는 일 좀 한다는 사람 사이에서 나눠줘야 하는데 앞서 말했듯이 일부 업무 빼고는 대부분의 일들이 회사의 재무적 성과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 때문에 '업무 능력'만으로 평가를 결정하긴 힘들다.
평가권자의 관심은 오로지 자기들이 좋아하는/싫어하는 직원에게 좋은/나쁜 평가가 돌아가는 것인데,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키(key)는 좋지도 싫지도 않은 대다수의 직원들은 그들의 평가에 순응하게 하는 데 있다. 좋게 말하면 중간층, 노골적으로 말하면 애매한 직원들이 현재의 평가체계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지언정 본인들이 직접적으로 피해본 건 없으니 가만히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그 중간층 또는 애매한 사람들에게 적당한 평가와 보상을 주며 그 비율을 50% 수준으로 만들면 된다. 그럼 그들은 회사 평가체계의 부조리에도 적당히 묵인할 것이며 그 부조리에 피해를 본 당사자들은 문제 제기를 하는 순간 그 50%를 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문제 제기가 꺼려지게 된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만약 나보고 평가체계를 만들라고 한다면 나는 평가권을 분산시키고, 모든 평가와 그 과정이 공개되는 평가체계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연말에 한 번 평가가 이뤄지는 게 아니고 반기별, 또는 분기별 평가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만들 것이다. 왜냐면 난 본인이 회사 평가체계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혜자라고 생각했다면 당연히 닥치고 있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