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플루언서(걷기 + 인플루언서)

by 고베리슬로우


나는 조언은 기본적으로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조언이 필요한 상황(=문제점)이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비슷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생긴 것도, 가진 것도, 능력도, 재력도, 살아온 길도, 지금 살아가는 환경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최고의 방법일 수도 있는 방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똑같이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이라고 해도 각자 사정이 다르다. 학교는 어딘지 성적은 어떤지 인턴은 해봤는지 교환학생은 다녀왔는지 봉사활동은 했는지 등등. 모두가 서로 다른 스펙을 지녔는데 똑같은 방식으로 취업을 준비할 순 없다. 그런 것들은 무시한 채 단순히 취업을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는 조언은 겨울에 눈 내리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조언을 귓등으로도 안 듣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크고 작은 조언들을 들으면서 살지만 대부분의 조언들을 새겨듣지 않는다. 심지어 그 조언이 최고의 조언이고 '정답'이라고 할지라도 잘 듣지 않는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결론을 지어놓고 그에 맞는 조언을 찾는다. 한마디로 "답정너", 그러니까 듣고 싶은 조언만 듣는다는 거다. 세상에 좋은 조언은 많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건 '듣고 싶은 조언'일 뿐이다.


​내 나이 곧 마흔을 앞두고 있는 지금, 아무리 내가 맞다는 생각이 들거나 누군가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도 조언을 쉽사리 하지 않는다. 내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내 멋대로' 조언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친한 사람에게 함부로 조언하는 걸 경계하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고 더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말이 그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이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굳이 말리지 않고 오히려 응원해준다(내 생각대로 한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이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건 내 인생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조언을 아끼진 않는다. 대신 그 사람들에게 어떤 정답을 알려준다거나, 내가 말하는 대로 하면 된다는 식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려고 노력한다. 나의 행동과 그 결과보다는 당시 내 상황이 어땠는지, 왜 내가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에 방점을 두고 이갸기를 해준다.

"내 이야기가 절대 정답이 아니야. 절대 참고만 해야 해. 나 말고 다른 사람 이야기도 많이 들어봐. 할 수 있으면 평소 삶의 가치관이라거나 인생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네가 처한 상황이 가장 비슷했던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봐. 물론 쉽지 않지. 그래서 많은 사람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는 거야." ​


어릴 때는 이렇지 않았다. 아주 강하게 남들에게 조언을 하곤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좋고 싫고가 분명했고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일에 대한 태도가 명확했다. 엄밀히 말하면 좋아하는 것보다는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자세가 명확했다. 싫은 것들에 대해서는 거절 또는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고 살았다.


​사회에서 거절을 거리낌 없이 한다는 건 고집이 세고 냉정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체로 (상황에 따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회사에서 남 눈치를 보지 않고 남들은 쉽사리 하지 못하는 행동들, 예를 들어 아무도 집에 가지 않는데 혼자 칼퇴를 한다거나,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회식에 혼자 빠진다거나, 아무도 하지 않았던 남성 육아휴직을 2번이나 하게 되면 저절로 나에게 의견을 묻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어릴 때는 그런 사람들에게 강하게 내 의견을 피력했다. 그래서는 안됐는데 비난을 하기도 했다. 가령 일도 없는데 눈치 야근을 하는 동기에게 그건 눈치를 보는 너 잘못이라고 꾸짖었다. 회식이 싫다면서 매번 어쩔 수 없다며 회식에 참여하는 친구에게 갈 거면 그냥 가고 안 갈 거면 가기 싫다는 소리 좀 그만해 나무랐다.

물론 나에게도 변명할 거리는 있다. 그들이 '어쩔 수 없다'라며 하는 행동들이 나로 하여금 '눈치를 보게 만드는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나라고 어디 비빌 곳이 있다거나, 천상천하 유아독존 같은 절대적인 자존감이 있어서 남의 눈치를 안 보는 게 아니었다. 나에게도 그런 눈치를 안 보는 용기가 필요했는데 주위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많으면 나도 사람인지라 점점 더 눈치를 보게 되기 때문에 나의 용기를 붙잡기 위해 그들을 비난했다. 그들을 정말 비난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내가 틀린 게 아니라는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는 행위였다.

비단 회사 생활뿐만 아니라 결혼, 연애, 고부관계, 취미 등등 여러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이라는 미명하에 나의 생각을 씨불여댔다. 가끔은 나에게 조언을 구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조언이랍시고 간섭하기도 했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안 친한 사람들은 진작에 떠났고, 정말 친했던 사람들도 나의 강경한 태도를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나의 그런 강경한 조언을 듣고 싶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조언과 행동이 '언행일치'하는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나를 좋아해 줬다. 그들이라고 해서 나의 조언에 기분이 나쁜 적이 없지 않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그저 고마울 뿐이다.


​내 인생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친구가 한 명 있다. 각자의 사정으로 왕래가 뜸해졌지만 그래도 가장 자주 연락하는 친구다. 이 친구와 나는 작년 말 고등학교 동창이 한의원을 개원하는데 다이어트 한약 모델이 필요하다고 해서 한의원 모델을 같이 했다. 3개월 동안 다이어트 한약을 먹으며 나는 88kg에서 80kg로, 친구는 77kg에서 70kg로 감량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8개월 후, 나는 다시 88kg가 됐고 친구는 80kg가 돼버렸다. 요요 막는 건 살 빼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나는 요요가 오긴 했지만 그 기간 동안 꾸준히 운동을 했다. 홈트레이닝도 했고, 달리기도, 등산도 했다. 그래서 (100% 내 생각이지만) 예전과 똑같이 88kg이 됐지만 몸은 그때와 똑같지는 않다. 물론 과체중에다가 체지방율이 평균보다 높긴 하지만 근육도 많이 생겼다.​

반면 친구는 아무런 운동을 하지 않은 채 살만 다시 쪄서 누가 봐도 뚱뚱한 몸이 됐다. 본인이 행복하면 그만이지만 그다지 행복해하진 않았다. 틈만 나면 나에게 살 빼야 하는데, 운동해야 하는데, 거울 보기가 싫다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운동할 때마다 친구에게 연락했다. 이번 주에 등산할 거니까 같이 하자. 내일 한강 뛸 건데 같이 뛸래? 이번 주말에 한강 뛰었다가 밥이나 먹자 등등. 친구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내 구애를 마다했다.


​최근에 내 걷기 기록을 캡처해서 친구에게 보내줬다. "나도 힘들어서 뛰는 건 포기했고 걷기라도 해야겠다. 너도 운동할 시간 없으면 걸어라."


​며칠 전에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나도 걷는다"



​기분이 아주 조금 좋았다. 친구가 걷기를 시작해서 건강해질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긴 하지만 살찌면 자기가 힘들지 내가 힘든 것도 아니고, 진심으로 둘 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지만 내 자식처럼 따라다니면서 건강 챙기라고 닦달할 수도 없는 거니까.


​그것보다는 앞으로 걷기를 빙자하며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일 년에 한두 번 보기도 힘들고, 만나더라도 술만 먹기에 지쳤는데, 같이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면 뭔가 더 뿌듯한 마음으로 놀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껏 살면서 와이프와 우리 두 딸을 제외하고는 내 말을 가장 대충 듣는 사람을 변화시켰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비록 한 명을 걷게 만들었지만, 나는 스스로를 "걷플루언서(=걷기+인플루언서)"라고 자칭하기로 했다. 그럴 의도로 지은 이름은 아닌데 '고베리슬로우'라는 필명도 걷기와 매칭이 되는게 운명인거 같기도 하다. ㅋ ㅑㅋ ㅑㅋ ㅑ.


​고베리슬로우, 더 걷플루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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