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부를 하기 위해 걷는 게 아니다. 걸은 만큼 기부를 하지도 않는다. 다만 앞으로는 걸은 거에 비례하게 기부를 해볼 생각이다.
나는 원래 기부를 많이 한다. 어려서부터 크고 작은 아픔을 달고 살았다. 병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정상이라고 할 수도 없는 자질구레한 것들. 변비. 여드름. 비만. 작은 키. 대사증후군. 탈모 등등. 그러다가 이십 대 후반 '내일 아침 눈 떴을 때도 이렇게 아프면 차라리 자살해야지.'라는 생각을 매일 밤, 3개월 동안 할 정도의 고통을 동반한 목 디스크가 발병했고, 그로부터 2년 후에는 똥 쌀 때 힘주는 것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허리 디스크가 왔다. 아. 군대 전역하자마자 2년 연속으로 전방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을 두 번 했는데 그건 불편했지 크게 고통스럽진 않았다.
왜 세상엔 이런 고통이 있는지 궁금했다. 한탄했고 억울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감정과는 별개로 세상엔 여전히 아픈 사람이 가득했다. 내가 박애주의자는 아니지만 세상에 아픈 사람이 없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신체적, 정신적, 가정적, 환경적 '병'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하루라도 걱정 없이 밥을 먹고 하루라도 걱정 없이 잠을 자고 하루라도 걱정 없이 치료를 받게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기부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기부를 통해 내가 그래도 이 세상에 태어나 아주 조금이라도 이 세상을 내가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었다는 위안을 얻는다. 말하자면 나는 내 자존감을 높이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로 기부를 한다. 이게 부끄러운 건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런 내 마음이 당당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누군가는 나의 기부를 통해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것이다.
핸드폰 걷기 기록 앱을 이렇게 저렇게 보다가 월간 걸음 기록이 있는 걸 발견했다. 44만 7천보. 마음 같아서는 한 걸음에 1 원해서 44만 7천 원을 기부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지금의 현금흐름으로는 부담이었다. 안 그래도 1월부터 시작한 육아휴직에서 복직한지 3주가 채 안돼서 현금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 기간에 꾸준히 기부를 해왔다는 것에 자그마한 자부심을 느낀다.
어쨌든 당분간 한 달 동안 걸은 걸음 수에 0.5를 곱해서 기부를 하기로 했다. 내 하루 목표인 2만 보를 한 달 동안 걸으면 매월 30만 원을 기부해야 한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월급 받으면 사고 싶었던 것들은 당분간 못 사겠지만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번 달부터 기부하기 위해 걷는 건 아니지만, 걸은만큼 기부하는 남자가 됐다. 지난주에는 걷플루언서*였고 이번 주부터는 걷기부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