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곰돌이 Dec 24. 2020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Give it Forward!

아내를 데리러 갔다.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말에 주차할 곳도 없는 골목을 빙빙 돌다가 어떻게 욱여넣을 만한 자리를 발견했다. 낑낑거리며 차를 넣으려고 하는데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든 아주머니가 터벅터벅 다가오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뚝뚝해 보이는 아주머니 인상 때문에 "여기 차 대지 마세요!" 이런 반응을 기대하고 겁을 잔뜩 먹었는데, 무심하게 발로 툭, 차 뒤에 있던 상자를 치워주셔서 차를 무사히 댈 수 있었다. 얼른 창문을 내리고 큰소리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여전히 무심한 듯 그리고 아주 멋지게 고개만 살짝 까닥이고 가시는 아주머니. 그 뒷모습이 정말 멋있고 따뜻했다.




영어로 "Give (Pay) it forward."라는 표현이 있다. 일종의 사회적 운동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데, "전혀 모르는 남에게로부터 조건 없이 받은 선행이나 혜택 또는 금전적인 도움을, 나에게 준 당사자가 아닌 전혀 다른 이들에게 나도 똑같은 선한 마음으로 조건 없이 베풀어 주는 것"이다. 즉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사소한 도움, 예를 들어 아파트 주차장에서 뛰어오는 날 보며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잡고 기다려 주었다던지 하는 도움부터, 정말 급할 때 어떤 자선단체로 지원받았던 후원금까지, 적용 가능한 범위도 다양하고 그만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도 쉽다. 유튜브에 찾아보면 이런 운동을 장려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나 기업들이 올린,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영상물을 많이 볼 수 있다.


처음 한국에 돌아와서부터 아직까지도, 무려 10여 년이 지났건만 일상에서 만나는 당황스러운 경험 중에 하나는 유모차를 밀고 있는 아내를 위해 공공장소에서 문을 열고 잡아주면 다른 이들이 끝도 없이 지나다니는 통에 정작 내 아내와 아이는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못할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당연히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목례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 애초에 그런 것을 받을 작정으로 문을 잡고 서 있었던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황당할 따름이다. 화가 나기도 하고.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는 오히려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기다리기보다 닫힘 버튼을 더욱 열심히들 누르는 것 같다. 작은 배려와 도움을 나누는 행위들은 '타인을 멀리 해야 한다'는 질병이 바꿔버린 행태들로 너무 쉽게 이기적이고 개인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남에게 도움을 받지도, 그 도움을 다른 이에게 선행으로 되돌리지도 않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우리 집에서 불과 몇 층 아래인 처갓집은 때때로 천둥소리 같은 윗집 아이들 뛰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아이들이 잘 뛰어놀 나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아파트의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라고 살금살금 걷기만 하는 것도 아니니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한 번도 윗집에 불만을 이야기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소리가 나지 않으면 아이들이 아픈 건 아닐까 걱정하신다.


반대로 우리 집은 오히려 아이들이 아주 조금만 뛰어도 인터폰이 울린다. 우리 아랫집은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건지 요새 들어 부쩍 자주 인터폰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직접은 아니고 경비실을 통해서 한다. 아이들이 오후 4시에 하원 해서 한 시간여 집에 있다가 외갓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7시 반쯤 올라와 9시에 잔다. 그 한 시간 반 동안 24평 아파트의 거실에서 뛸 공간이 얼마나 되고 뛸 시간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항변이라도 하고 싶지만, 5분만 뛰어도 어김없이 인터폰은 울린다.

 

아이들이 뛰는 것이 잘한 것은 아니나, 기분이 좋아서 뛰는 아이에게 생뚱맞게 화를 내는 것도 웃기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좋게 좋게 타일러 봤자 아이들은 또 뛰고 (사실 자기들이 뛴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그냥 이동의 방법이다.) 결국 첫째 뒤는 아내가 둘째 뒤는 내가 졸졸 쫓아다니며 뛰려고 할 때마다 어깨를 붙잡아 준다. 애들이 갑자기 뛰면, 어른들도 뛰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소리를 지르던지. 이래저래 아랫집은 고생이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give it forward 하다 보면 그 선행이 돌고 돌아 결국 또 다른 형태로 나에게 선행이 돌아오는, 그러니까 "선행의 순환으로 이어지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라고 하려고 했으나 쓰다 보니 내가 베푼 선행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직도 저기 어디에선가 돌고 있기는 한 건지, 왜 아직도 내게 다시 안 돌아오는 건지 한탄스럽기도 하다.


아, 주차를 도와준 아주머니가 계셨지. 멋진 누님 파이팅!




올해도 크리스마스는 온다.


인터넷에 산타는 자가격리 때문에 늦는다 어쩐다 말이 많아도 크리스마스는 제 때 온다.


보통  크리스마스는 개인의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가 설레고 기분 좋은 날 중에 하나다. 연말이라는 분위기도 그렇고 아름답게 장식하는  길거리, 흘러나오는 경쾌하거나 분위기 있는 캐럴들 까지. 인간을 위한 사랑으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과 온 세상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산타클로스로 대표되는 이미지는 "나눔"과도 연결되어 각 단체들, 기업들, 모임들의 자선활동도, 자원봉사도, 기부금  모금도 많이 이루어지게 한다.


연말이  설레는 이유는 어릴 때는 얼른 한 살이라도 더 먹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걸 해보고 싶다는 "기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연필만 쓰던  아이는 샤프를 쓸 수 있게 된다던지, 이제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된다던지. 사회적으로 성장하며 부모님이나 주변으로부터  "이제 다 컸다"는 말을 듣는 뿌듯함.


그런데 내가 진짜 커 갈수록 나에 대한 "기대"도 커진다는 걸 깨닫게 된 후부터 내 어깨도 무거워지면서, 연말의 설렘은 일종의 "리셋"의 개념이랄까. 내년에는 더 잘해 볼 수 있다는 희망. 올해 부족했던 것이 내년에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2020년은 아예 뭐를 한 게 없으니 2021년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기도 하면서도 참 막막하기도 하다.


올해 가장 많이 들어본 수식어는 "처음 경험하는, "과 "코로나로 인해, "인 것 같다. 대부분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게 되면서 또는 격리를 하게 되면서 처음 경험하게 되는 문화적 경험들, 사회적 현상들, 소비의 변화들, 그리고 기술의 발전들을 이야기하는 수식어들이다.


집합 금지 명령.


사회적 모임도 할 수 없게 되면서 소외받던 이웃들은 더욱 소외되고, 이제는 멀리 떨어져 살던 가족들도 쉽게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구세군의 종소리를 들어보지도 못했고, 그나마 내 마지막 양심으로 모금통에 넣던 기부금도 이제 정말 자발적으로 웹이며 앱이며 찾아다니며 기부행위를 해야 한다.


아내에게 물었다. "그래도 연인들은 아직 설레겠지?"

아, 26일에 결혼한다던 군대 선임이 생각났다. 가장 친했던 선임인데, 꼭 보자고 했었는데, 전역하고 10년이 다 되도록 항상 연락도 주고받던 친한 사람인데, 예식장에서 통보를 받았단다. 꼭 필요한 '가족'들만 참석하는 것조차 불투명할 것 같다고. 결혼 전날이자 이렇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그 예비부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보통 연말에는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게 된다. 일종의 반성을 하기도 하고 대부분은 후회를 하기도 하고, 또 '와 벌써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깨나 어른인척도 해본다. 올해는 반년 정도 집에서 주로 가족들 하고만 보내서 그런지, 가족에 대해서 생각과 고민 그리고 감사를 많이 하게 된 해다.


생각해보니 "감사"라는 개념을 명확히 알아야 "주는"것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다른 이의 작은 선행과 도움에 "감사함"을 느낀 사람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 줄 수 있다. 베푼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감사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감사해본 사람은 베풂의 행위가 받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어떤 의미인지 알 테니까.


타인을 위한 무조건 적인 선행은 내 안에 선함이 있어야 하지만 또 내 안에 감사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감사할 줄 아는 염치라도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베풀었을 때 그만큼 보람도 더 크고 가치 있게 느낀다.


의무감이나 책임감 또는 다른 사람의 눈치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내 주변과 내 삶과 내 가족과 나의 아주 작은 일상에서부터 감사함을 느낄 때 더 가치 있는 나눔이 내 마음에서 우러나서 시작되고, 더 큰 사랑이 시작되고 내가 느낀 가치가 다른 사람들의 선행과 하나 되어 더 큰 가치로 연결되고 결국에는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는 우리 사이를 떨어트려 놓았지만 우리는 감사를 나눔으로 우리의 가치를 연결할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처음 경험하는 세상이 삭막하고 이기적인 세상이 아니라 오히려 더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바라보느냐, 어떻게 끊어진 관계들을 연결하느냐, 어떻게 느끼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의료진과, 방역에 힘쓰는 모든 이에게 감사하고, 집에서 고생하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출근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며 병에 걸린 모든 사람의 치유를 기원하고 안 걸린 모든 사람의 안전을 소망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처음 경험하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이번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는, 내 안에 있는 "감사함"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그동안 내가 알게 모르게 받았던 관심과 은혜와 사랑이 사실은 이렇게 많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다른 이에게 베풀어 가고자 하는 마음을 얻는 이번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성탄절"은 아기 예수가 태어나신 "기쁜 소식"을 전했던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크리스마스가 기쁜 날인 이유는 크리스마스는 감사함을 깨닫는 날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하면서, 그 어느 때 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준 2020년을 함께 돌아보면서 서로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함께 즐기며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그 어느 때보다 가족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해보자. 부모님에게, 자녀들에게, 배우자에게, 형제들에게. Thank, and Giving it Forward.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무엇'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