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시선.
오늘의 차는 일본 나카가와 마사미치 상점의
츠키가세 겐마이차.
겐마이차 즉 현미녹차이다.
지난 주말에 아이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일본 도쿄로 여행 가서 구입했다.
원래는 나라가 원산지인 차와 제품이라고 한다.
틴 케이스라서 당연히 잎차인 줄 알았는데 티백이다.
특이한 점은 제품 포장 그 어디에도
몇 도의 물로 몇 분을 우리라는 설명이 없다.
녹차정도는 알아서 우릴 수 있으리라는 일본의 상식인 걸까?
나는 녹차니까 80도의 물로 우려 보았다.
조금 덜 뜨거워서 녹차가 좋고
게다가 향이 구수해서 겐마이차를 좋아한다.
일본의 녹차는 조금 진한 편인데
중국 녹차와 달리 잎이 작고 더 가루가 많다.
또 미역이나 생김 같은 향이 특징인데
이 제품은 볶은 현미 특유의 고소한 향이 있다.
그래서 볶은 김자반 향 같은 고소한 해초 같은 향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느 회사의 탕비실에서 볼 수 있는
"현미녹차" 제품보다는 더 녹차의 향이 강하고
현미의 구수한 맛은 덜하다.
그래도 줄기가 들어서인지
일본녹차 특유의 감칠맛이 있다.
그리고 가루 때문에 잔을 비워갈수록
씁쓸한 녹차맛과 향이 더 강해진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짧은 일정이라 도쿄 한 곳만을 다녀왔다.
아무래도 사람도 많고 많이 걸어야 해서 아이들이 힘들어했지만
다행히 일정이 끝나갈 동안 아프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건조해서 그랬는지, 피곤해서 그랬는지
둘째 아이가 코피가 났다.
밤 9시에 비행기에서 곤히 자던 아이는
선홍빛 코피에 놀랐는지 짜증을 냈다.
피는 줄줄 나왔고 갈아 끼우는 휴지조각마다
금세 새빨개지기를 반복했다.
승무원들이 셋이나 다녀갔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 피는 멎었고 무사히 내렸다.
집에 와서 짐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는데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는
멀미증상이 났다.
"여보 나 멀미한 거 같아."
"아니 왜? 비행기 타서?"
"비행기에서 아들 콧구멍만 쳐다보고 있었더니...."
정작 비행기에서 아이는 코에 휴지를 끼우고 다시 잤다.
그러나 나는 언제 휴지를 또 갈아야 할지,
코피가 언제 멎을지 만 생각하며
흔들리는 아이의 머리를 어깨로 받히고 아이의 콧구멍만 바라봤다.
아이가 깨지 않기를 바라면서.
착륙하고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30여분을 아이의 코만 바라보고 있었다.
난기류 방송이 나오고 비행기가 흔들려도,
착륙하느라 흔들리는 비행기에서도,
코피가 멎었어도 언제 다시 터질지 몰라
그저 아이의 코만 바라봤다.
그 순간에는 멀미도 느껴지지 않았고
비행기의 흔들림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내 아이가 무사하길 바라면서
하염없이 날 닮은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겨우 코피에 내 모든 신경이 거기 쏠렸다.
문득 내 대학시절이 생각난다.
나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20년도 더 전에는 지금처럼 카톡을 하거나
손쉽게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2학년까지는 핸드폰도 없었으며
전화도 비싼 전화카드를 구매해 길고 긴 번호를 눌러
엄청난 소리지연을 겪으며 통화했어야 했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열흘에 한 번 정도 전화했다.
그것도 같은 학교에 다니던 누나에게 잔소리를 실컷 들은 뒤에.
통화내용도 어머니의 걱정 섞인 질문들에
네. 아니오로 단답으로 대답만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부모님 마음이
이렇게 온통 내게만 쏠려있는 줄도 모르고.
내가 방학에 돌아오기까지 어머니의 시선이
보이지도 않는 태평양 너머만을 바라보는 줄도 모른 채.
사람의 마음이, 감정이 완전히 같을 수 없겠지만,
자녀를 키우면서 '어쩌면 그때 부모님 마음이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도 그런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고 느낄 만큼
내가 받은 사랑에 감사한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때때로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같다.
시냇물이 바다로 흐르듯이
내 사랑이 아이들을 거쳐 세상으로 흐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