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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Nov 09. 2020

행복한 기차.

어느 햇빛 쨍쨍한 날의 행복한 여행.

이번에는 둘째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매거진의 제목과는 다르게 둘째는 아들이다.




며칠 전, 햇빛이 쨍쨍한 어느 날 아침. 아침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여유롭게 각자 좋아하는 활동을 하며 놀고 있었다. 물론 아이들만 여유롭지 부모는 애가 탔는데, 아이들은 각각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등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난감 기차의 기관차를 한 손에 들고 거실에 쏟아지는 햇살을 따라 타고 내려오는 기차를 보며 아이가 말했다.


"햇빛이 쨍쨍해서, 기차를 타서, 너무 행복해."


둘째의 표정은 마치 행복이란 것에 맛이 있다면 한 입 가득 베어 물은듯한 미소를 머금고 해맑은 눈웃음으로 자신의 손에 들린 기차와 햇살을 따라 달렸다. 행복이 충만한 아이의 표정을 보니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날씨가 맑고 햇빛이 쨍쨍해서 행복한 걸까 기차를 타고 달려서 행복한 걸까.


기차역도 없는 시골에 사는 우리는 기차는커녕 지하철, 전철 구경도 해보지 못하고, 둘째 아이는 한국에서 열차 종류를 아무것도 타본 적이 없다. (심지어 어린이집 버스 외에 대중교통으로 시내버스나, 시외버스도 타본 적이 없다.)

다만, 생 후 15개월 무렵이던 2019년 5월에 네덜란드와 덴마크로 떠난 가족여행에서 기차를 여러 차례 타보긴 했다. 비록 지금 가지고 노는 장난감 기차와 모양도 다르고, 그때는 기차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아니, 기차가 뭔지도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일까?


아마도, 아이가 타고 있다는 기차가 자신의 손에 들린 장난감 기차이던지, 아니면 아이가 한 말이 장난감 기차에 타고 있다고 상상한 마음속 친구의 생각을 자신의 입으로 표현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둘째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어떤 상황이었던지 아이가 느낀 감정은 꾸밈이 없는 순수한 여행의 자유와 자연의 포근함을 만끽하는 행복함을 나타내고 있었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차를 탄다고 생각한 내 자아든, 놀이의 주인공과 일치된 공감을 하는 나 자신이든, 너무 행복하다는 내 감정은 같으니, 누가 어디서 무엇을 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지금 목적은 행복함의 표현이겠구나.'


상상이 놀이의 바탕이고 그 놀이는 가상현실이 되고 가상현실 속에서는 기차를 타고 선로가 아닌 무지개를 타고 달릴 수도, 거실에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타고 달릴 수도 있다.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이든지 탈 수 있는데 행복하지 않을 아이가 어디 있을까.




지금 만 31개월인 둘째는 유달리 기차를 좋아한다. 나무 기차, 플라스틱 기차, 자석 기차, 가리지 않고 늘 거실을 선로로 가득 채우고 각종 기차들이 칙칙폭폭 소리를 시끄럽게 내며 달리는 걸 지켜보는 걸 좋아했었다. 기차는 선로를 달릴 때 보다 탈선할 때가 더 자신을 웃게 만든다는 것을 발견하고야 말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유달리 커다란 것들을 좋아한다. 바퀴 달린 것들 중에는 중장비나 트럭을, 동물 중에서는 코끼리, 기린, 아니면 공룡 등. 이런 장난감들이 비율상 아이들이 손으로 쥐기 쉬워서 일까? 아니면 현실에서 자주 볼 수 없어서 일까. 자주 볼 수 없다는 것은 고정된 관념이 적고 그로 인해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 커지는 경우도 있을 때가 많다. 어쩌면 아이들이 현실에서 자주 볼 수 없거나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물건, 생명체, 우주공간 같은 미지의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 이유도 어른들이 지정해 주지 않는 고정관념 없는 관점에서 오로지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환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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