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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Nov 10. 2020

우리 집은 미술관.

작품을 만드는 아이, 어지르는 아이.

원래 우리 딸은 그림 그리기를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예술에는 정해진 영역이 없듯이 만들기도 좋아하고 종이접기도 좋아하고 배운 적 없는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같은, 절대 설명해 주지 않으면 그 의미를 알아채기 힘든 "춤"도 좋아한다. 그때, 몸짓보다 표정이 가장 크게 예술적 표현을 담당하는 듯, 6살 아이가 한국인의 한을 제대로 표현한다. 아마 그런 의미의 춤은 아니겠지만. 그리고 당연히, 노래 부르기도 좋아한다.




딸은 어느 날 나름 규칙과 질서 있게 거실 한을 정성껏 어질러놓고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딸의 작품은 가끔 현대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 작품 설명을 보지 않으면, 아니 설명을 읽어도 이게 왜 그걸 표현하는지 난해할 때가 있는데 그날이 딱 그랬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작가님이 전시회에 우리를 초대한 것이다.


"자, 여러분. 여기 미술관에 와서 제 작품 좀 둘러보세요."


마치, 동네 어느 마트 할인 광고 같았지만, 아이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하게 우리를 자신의 "미술관"으로 초대했다.


나는 육아를 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역할극이다.  아이들이랑 놀다 보면 소꿉놀이같이 즉석 연극을 해야 하는 때가 많은데, 난 도무지 오글거리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가장 어려워하는 놀이분야다.

그래서 둘째랑 공룡놀이를 할 때도 보통 그냥 다 잡아먹어버리거나, 일찍이 머리에 받혀서 죽어버리곤 하는데 (둘째의 최애 공룡은 파키케팔로사우르스다), 첫째는 좀 더 고차원이라 그런 게 잘 안 통한다.


아내는 이미 입장하셔서 미술관을 둘러보시며 연신 작가님 찬양에 정신이 없었다. 팬이었던 것 같다.  작가님도 신이 나서 작품 설명에 열중했다. 그러고 나서 엄마는 아주 큰 일(집안일)을 하러 급히 미술관을 떠나시고, 내 차례가 왔는데 서로 난감했다. 딸은 아빠도 끌고 들어가 작품을 보여주며 자랑을 하고 싶지만, 이미 엄마한테 한참이나 설명한 터였고, 나도 식상한 칭찬 몇 마디 해주려니 이미 아내가 온갖 미사여구를 곁들여 장황한 칭찬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아빤 안 봐도 돼."

"왜?"

"어... 아빤 미술관 관장님이라, 이미 한번 봤어."

"아 그럼 이번에는 내가 손님 할 테니까 아빠가 미술관 구경시켜줘, 아빠가 관장님 이니까."


혹 떼려다 혹 붙였다.


"그럼, 원래 저희 미술관은 개인 투어는 따로 해드리지 않는데 워낙 유명하신 작가님께서 전시하신 기념으로 제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일단 한껏 생색부터 냈다. 원래 나는 특별한 사람대접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고객관리의 핵심이다.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일단 딸의 "작품"은 도저히 뭘 표현한 건지 모르겠으므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1층 설치 미술관은 이미 보셨을 테고 2층 아동미술 코너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소곳하게 따라왔다. 바로 몇 발자국 옆이었지만 우리에게는 2층이었다.

문득 아이가 어젯밤에 읽고 정리해 두지 않은 책 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책 몇 권을 들어 올리며 표지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자, 이 작품들을 보시면 그림체가 모두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모두 같은 작가의... 그러니까 나카야 미와 작품으로써 지금 보고 계신 채소 학교 시리즈 외에도 여기 보이시는 도토리 마을, 누에콩 등의 시리즈가 있습니다. 주로 먹는 걸 표현하신 것 같지만, 까만 크레파스나, 그루터기 등 다양한 소재를 귀여운 캐릭터로 의인화해서 표현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의인화가 뭐야?" "소재가 뭐야?" 등의 질문들을 쏟아낼 아이 었지만, 자신의 역할에 몰입했는지 그저 품위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설명을 듣고 있는 아이가 정말 진지해 보였다.


그 후에도 요즘 20이 넘는 숫자를 공부하며 푹 빠져있는 이와이 도시오의 100층짜리 집 시리즈의 비현실적이지만 신선한 발상을 논하고, 앤서니 브라운의 가족관계와 아빠 엄마의 위대함을 설파한 뒤, 나의 최애 작 마쓰모토 슈헤이의 <꼬마 비행기 플랩, 2016 작가정신. 김수희 옮김>의 그림들에 사용된 색감을 함께 논하며 투어를 마무리했다.


나는 미술이나 아동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해박한 것도 아니며 그저 매일 밤 한 두 권씩 읽어주면서 평소 책이나 작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아이에게 작품 설명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했고, 딸은 진지한 건지 졸린 건지 가만히 앉아서 묵묵히 들어주었다. 아이의 상상력과 역할에 대한 몰입보다, 나의 창의력이 더 부족했기 때문에 투어가 끝이 났다. 다행히 투어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 딸은 갑자기 스케치북을 펴고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그림을 그리며 조잘조잘 자신이 받은 영감과 그래서 자신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 건지 신이 난 아이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치면서 생각했다. 거실 한편을 어지른 것도 아이의 "의도"대로 어질러진 것이고 그것이 어떠한 생각의 표현이라면, 그래서 그것이 작품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을 작품으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성취에 대한 마땅한 보상 즉, 부모의 호응이나 최소한 칭찬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창작자의 의도가, 창작물의 의미가 전달이 되었을 때 비로소 전달받은 사람에게 작품으로 인정받는 게 아닌가 싶다.

내 딸의 작품은 때때로 난해하다. 그러나 딸의 설명을 듣고 나면 오히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창의력과 통찰력에 놀랄 때가 많다.


방금 전까지 왜 그렸는지 모르겠는 이상한 선과 기호들이 나름의 의미와 의도된 모양을 갖추고 있다는 게 놀랍고, 언제 어디서 뭘 보고 그런 생각과 표현을 떠올렸는지, 정말 아이들에게 보이는 것, 느껴지는 것 같은 경험들이 중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우리 딸은 오늘도 잔뜩 어질렀지만, 작가 XX이는 오늘도 작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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