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좋아하세요?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그 나라의 술을 맛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애주가로서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그 나라만의 술이 있다는 게 새삼스럽게 신기하고 즐겁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의 술을 마실 수 있다고는 하지만 본고장에서 마시는 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 간 나라에 술 투어가 있다면 꼭 들리는 편이다. 오늘은 유럽을 여행 다니면서 체험했던 술 투어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한국에서 맥주로 유명한 유럽 국가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아마 독일일 테지만, 독일과 마주하고 있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또한 맥주가 꽤나 유명하다.
네덜란드 맥주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는 하이네켄(Heineken)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주인만큼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 가면 하이네켄 박물관(Heineken Experience)이 있다. 꼭 하이네켄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씩 들르기 좋은 곳이다.
하이네켄의 역사와 전통, 맥주가 만들어지는 제조 과정을 하나씩 설명해 준다. 그룹 단위로 이동하는데, 가이드분이 각각의 장소를 함께 이동하며 설명해 주시는 시스템이다. 투어를 진행해 주시는 가이드 분이 굉장히 유쾌하시기에 경직되지 않은 즐거운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다. 커다란 건물 여러 층을 사용하며 실제 크기와 같은 크기로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건물이 몇십 년 전만 해도 양조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체험 자체도 흥미롭지만 공간도 아름답다. 창문 디자인, 계단 디테일 하나하나 눈여겨볼만하다. 일부 공간은 굉장히 현대적으로 꾸며놓았지만, 과거 양조장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놓은 곳에서는 엔틱 한 매력이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하이네켄 병에 자신이 원하는 문구(보통은 이름)를 적는 등의 체험도 할 수 있다. 이곳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기념품이다. 투어 마지막에는 하이네켄 생맥주를 맛볼 수도 있는데 투어의 느낌과 분위기에 취해서 그런지 특별히 더 맛있게 느껴진다.
와인 종류 중 하나인 포트 와인은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브랜디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제작한 와인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술 중 하나이다.
보통 포트 와인이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와인보다 더 달고, 도수 높은 레드 와인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보통의 다른 와인들처럼 사실 맛도 종류도 굉장히 다양하다. 흔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와인을 전문으로 파는 식당에서도 간혹 찾아볼 수 있다.
유명한 포트 와인 브랜드로는 Taylor's, Graham's, Sandeman 등이 있다. 세 브랜드 모두 각각의 투어를 진행하지만, 그중 내가 선택한 곳은 'Taylor's Port'였다. 그 근처에 비슷한 투어를 진행하는 곳들이 많으니 본인의 일정과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투어의 흐름 자체는 '하이네켄 박물관'과 비슷했다. Taylor's라는 브랜드의 창립 과정, 역사, 브랜드 설명이 이어진다. 여럿이 다 같이 설명을 듣고, 이동했던 하이네켄 투어와 달리 가이드 없이 각자 알아서 편하게 구경하는 시스템이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고 본인의 속도에 맞게 편하게 구경하기 좋다는 장점이 있다.
이 투어의 가장 큰 볼거리 중 하나이자, 가장 유명한 포토스팟은 바로 끝없이 이어진 오크통이다. 커다란 창고 같은 공간에 실제 크기의 오크 통이 수없이 놓아져 있다. 공간의 규모와 분위기 만으로 압도되는 느낌을 준다. 뜨겁게 햇살이 내리쬐는 바깥과 대조적으로 서늘한 곳에서 잠깐 쉬어가듯 느긋하게 구경하기도 좋다.
하이네켄 박물관이 왁자지껄 신나게 구경하고 체험하는 느낌이었다면, 테일러 와이너리 투어는 더 전문적으로 설명해 주는 박물관 느낌이 강하다. 포트 와인의 제조 방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다. 수많은 글과 그림, 사진이 펼쳐진다. 가이드 분의 음성 설명이 아닌, 혼자 조용히 본인의 속도에 맞게 천천히 읽어보는 걸 선호하는 사람은 잘 맞을 투어 방식이다.
당연하게도 마지막에는 포트 와인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시간이 준비되어 있다. 한참 동안이나 포트 와인에 대해 공부한 보람이 있는 순간이다. 수많은 종류의 포트 와인 중 맛본 것은 'Taylor's Late Bottled Vintage Port 2017'와 'Chip Dry' 두 가지였다. 레드 포트와인하나, 화이트 포트와인 하나가 제공되며 포트 와인을 체험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의 취향을 조금이나마 파악하기에도 좋다. 적은 양처럼 보이지만 일반 와인보다 도수가 높은 것을 고려하면(약 20%) 적절한 양처럼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드라이한 와인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빈티지 포트 와인 쪽이 더 취향이었다.
포트 와인을 처음 체험해보고 싶은 사람이나 혹은 접해본 적은 있지만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고, 본고장에서 마셔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술 종류 중에 와인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포트 와인 투어를 통해 포트와인의 매력에 빠져 한동안 찾아 마셨다. 처음 도전해 보는 사람이라면 와인 병에 'Ruby'라고 적힌 포트 와인을 먼저 도전해 볼 것을 추천한다. 입문하기 좋은 달달한 포트와인이다.
스코틀랜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스카치위스키이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위스키 중 하나가 바로 스코틀랜드에서 제조된다. 보통 위스키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로 이 스카치위스키일 것이다.
앞서 설명한 모든 투어가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 가장 추천하는 술 투어는 바로 이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위스키 투어이다. 셋 중 하나만 다시 간다면 주저 없이 이 투어를 고를 것이다.
사실 이 투어를 가기 전까지 위스키의 '위'자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위스키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위스키란 멋있는 어른의 술' 같은 인식이었다.(물론 나도 성인이지만 그냥 20살을 넘었을 뿐이고 정말 '어른' 말이다.) 고급 바에서 혼자 앉아 고독을 곱씹으며 마셔야만 할 것 같은 술,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던 위스키였다.
그렇다 보니 처음에는 위스키 투어를 갈 생각도 없었다. 위스키에 대한 흥미도 그다지 없을뿐더러 혼자 여행하는 후줄근한 복장의 여행객이 갈 수 있는 곳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에든버러(스코틀랜드의 수도)에서 손꼽히는 관광지가 바로 이 위스키 투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내 방문했다. 위에 언급한 곳들과 달리 술을 즐기러 가는 것보다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는 기분으로 들린 유일한 투어였다.
그렇게 방문하게 된 위스키 투어. 투어의 시작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가장 먼저 놀이기구를 타고 시작한다. 물론 놀이공원에 있는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는 아니지만, 기구를 타고 이동하며 투어가 시작된다는 점에서부터 신기한 경험이다. 이동하는 기구에 몸을 싣고 이곳저곳에서 펼쳐지는 영상을 보면 위스키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진다.
놀라운 점은 한국어가 지원된다는 것. 한두 명씩 기구에 앉는데, 기구에 앉기 전에 친절한 안내 직원 분이 어떤 언어를 원하는지 물어봐주신다. 반쯤 농담 삼아 한국어가 있냐고 여쭤보자 놀랍게도 한국어 지원이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놀이기구를 타고 이동하는데 한국어 지원까지 된다니, 여기서부터 이미 다른 술 투어와의 차별점이 생기며 흥미를 끈다.
그렇게 즐겁게 위스키의 제조 과정과 역사에 대해 배운 후에는 스카치위스키의 종류에 대해 배우고 각 위스키의 향을 직접 맡아볼 수 있는 체험 시간이 있다.
스코틀랜드 내에 위스키를 제조하는 생산지가 대표적으로 5군데가 있는데, 생산 지역에 따라 위스키의 향과 맛이 다르다. 각 위스키의 향을 맡아보며 먼저 자신의 취향을 찾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이 순간만큼은 마치 향수 시향회에 온 기분이다. 종이에 코를 대고 향을 맡아보니 신기하게도 어떤 것은 꽃향기가 나고 어떤 것은 시가 같은 스모키 한 태운 향이 났다. 정말 술에서 이런 향이 날 수가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향이 펼쳐졌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체험하고 싶은 위스키 종류를 선택하면 그 위스키를 한 잔 받는다. 마지막으로 위스키를 마시는 방법까지 배우고 나면 투어가 끝이 난다.
스카치위스키의 종류에 대해 알고, 그중에서 본인의 취향을 찾아볼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딱딱하고 어려운 분위기일 것 같다는 걱정과는 달리 정말 편안하고 친절한 분위기였다. 위스키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보는 재미도 빼놓지 않았는데, 투어 중간에 모든 벽면이 위스키로 채워져 있는 일명 '위스키의 방'이 있다. 마치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거울 대신 위스키가 채워져 있다는 점에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투어를 다니며 느낀 것은, 경험의 깊이에 있어서 아무 지식 없이 마셔보는 것과, 역사와 제조 과정을 알고 마시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투어는 아니지만 유럽을 여행하며 기억에 남았던 술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