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문화 충격.. 까지는 아니고 당황
Your biggest ick is men holding umbrellas?
이성의 정떨 포인트가 우산을 쓰는 거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There's something about it. That just feel really pathetic!
그냥 좀 그런 게 있어요.. 너무 한심해 보여요.
'기묘한 이야기'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한 영국 배우, 밀리 바비 브라운이 올해 BBC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ick'이라고 하면 보기 싫은, 일명 정떨 포인트를 의미하고, 'pathetic'은 불쌍한, 찌질한, 한심한 등의 의미를 가진다.
즉, 남자가 우산 쓴 모습이 본인의 정떨 포인트라는 것이다. 가랑비에도 우산 쓰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포인트이다. 모든 영국인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영국 사람들은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
오늘은 이처럼 한국에서 평생 살아온 한국인이 처음 영국에 갔을 때 문화 충격... 까지는 아니지만 당황스러웠던 점들을 꼽아보고자 한다.
우산, 대체 왜 안 쓰세요?
다시 앞의 우산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실제로 영국에서는 가랑비가 오든 장대비가 오든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 정확히는 우산이 없어도 개의치 않는다.
한국의 예를 들어보자. 만약 밖에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붓기 시작한다면 당장 어디라도 들어가 비를 피하거나 가까운 편의점이라도 들어가 우산을 살 것이다.
영국에서는 어떨까? 그냥 외투의 모자를 뒤집어쓴다. 아니면 그냥 그대로 비를 맞는다. 우산이 없는데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비가 오니 그냥 비를 맞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우산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에 비하면 우산을 쓰는 사람의 비율이 훨씬 적다.(30% 정도?)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처음 영국에 갔을 때 나는 자꾸만 예보도 없이 쏟아지는 비에 대비해 항상 작은 우산을 챙겨 다녔다. 비가 올 때면 빗방울을 조금이라도 막으려 우산을 들고 애쓰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런 나의 모습과 달리 모자만 쓴, 혹은 모자조차 없이 그냥 비를 맞고 있는 여유로운 주변 사람들을 보며 항상 궁금했었다.
대체 왜 저 사람들은 우산을 안 쓰는 걸까?
영국에 지내며 알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부 영국 남자들은 우산을 쓰는 게 쪽팔린 일이라고 생각한다. 유난스럽다고 생각해 쓰지 않는 것이다.
비가 너무 자주 내려 매번 우산을 준비해 다니기 귀찮다.
바람이 강해 우산을 쓰고 싶어도 못쓰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마지막은 내가 직접 경험한 이유이다. 특히 내가 있던 북부 지역은 우산이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바람이 너무 거세 우산을 제대로 들고 있기도 힘들뿐더러, 우산을 써도 우산이 비를 제대로 막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전 6화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영국에 도착한 지 약 한 달 만에 바람에 우산을 망가뜨린 이후에 다시 우산을 사는 일은 없었다.
방충망을 주세요
방충망이 없다. 창문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싶었더니 창문에 방충망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방충망 밑의 그 작은 물구멍마저 스티커를 사 막고, 혹여나 벌레가 들어올만한 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득달같이 막았는데 영국 창문은 아예 텅 뚫려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벌레의 난입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종일 창문을 열고 지낸 적도 많았으나 바퀴벌레나 모기, 하다못해 날파리 한 마리 보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모든 구멍을 막아도 어느샌가 들어와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벌레가 없다고 안심할 수만은 없었던 게, 상상치 못한 불청객이 틈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창문을 봤는데 틈 사이로 비둘기가 내 방을 구경이라도 하듯이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정말 금방이라도 방에 들어올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방충망이 없으면 벌레만 조심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밖에 작게 난 창틀에 가끔씩 비둘기들이 앉아있는 건 본 적이 있었으나 창문을 열고 있을 때는 그다지 접근해 오지 않아서 걱정하지 않았는데, 몸을 반쯤 방으로 들이밀고 금방이라도 들어올 것만 같은 비둘기를 목격하니 더 이상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니, 어느 날 주방에 가니 떡하니 비둘기가 앉아있었다는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어느 날 방에 돌아와 보니 비둘기가 들어와 있을 것만 같아 웃을 수 없었다.
실제로 들어온 적은 없었지만 마음의 안정을 위해 이래저래 방충망이 그리워졌다.
마시는 수돗물
영국에서는 수돗물(Tap Water)을 마신다. 사실 우리나라와 달리 많은 나라에서 수돗물을 그냥 마신다. 영국 가기 전부터 이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수돗물을 마시는 생활에 익숙해지기 쉽지는 않았다. 식기, 수도꼭지 등에 하얗게 남은 석회수의 흔적을 보니 도저히 마시기 꺼려지는 것이다.
영국 생활 초반에는 꼬박꼬박 생수를 사 마셨다. 하지만 금방 귀찮아졌고, 그 후에는 브리타를 장만해 물을 정수해 마셨다.
하지만 외식을 할 때만은 이 고집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한국과 달리 영국의 식당에서는 생수를 유료로 판매한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가격이 그렇게 저렴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러면 차라리 돈 조금 더 주고 음료수나 술을 마실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하지만 너무 돈이 아깝거나, 혹은 꼭 물을 마시고 싶을 때는 그냥 Tap water(수돗물)을 주문하곤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기뻤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식당에서 편하게 원 없이 정수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대로 멈춰라
한국에서 횡단보도 신호등에 붙어있는 버튼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버튼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안내 버튼으로, 누르면 신호등 불이 바뀌었을 때 알려주고, 남은 시간을 안내한다.
영국의 횡단보도 신호등에도 역할이 다른 버튼이 달려있다. 영국 신호등에 달려있는 버튼은 신호를 바꾸기 위한 버튼이다. 이 버튼을 눌러야지만 보행자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뀐다.
초록불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처음 영국에 갔을 때 차도 없는데 횡단보도 앞에 서서 초록불이 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다 퍼뜩 알아차리고는 그제야 버튼을 누르곤 했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이렇게 직접 신호를 바꿀 수 있는 버튼이 있는대도 불구하고 안 누르고 그냥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굉장히 쉽게 무단횡단 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차가 많고 도로가 넓은 도시에서는 좀 덜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그냥 빨간불에 건너거나 횡단보도조차 없는 곳에서 곧잘 건넌다.
사실 영국에는 무단횡단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빨간불에 건너도 범죄가 아니다. 경찰들이 무단횡단 하는 것도 굉장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보행자 우선인 영국에서는 그냥 횡단보도나 갓길에 사람이 서있으면 친절하게도 차가 멈춰준다. 별도로 신호가 없어도 사람이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차가 멈춰주는 것이다.
말을 탄 경찰
영국에서는 의외로 쉽게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경찰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영국 근위병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을 타고 궁을 지키는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런던에 방문한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 중 하나인 버킹엄 궁전 근위대 교대식을 봐도 기마 근위병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기마 근위대뿐만 아니라 기마경찰들도 있다는 것은 영국에 가서 처음 알았다.
처음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경찰들을 봤을 때는 무슨 촬영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런던 같은 대도시라면 모를까 내가 있던 소도시에 갑자기 일상적인 거리에 말이 등장하니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찾아보니 영국에서는 경찰이 말을 타고 다니는 것이 그렇게 낯선 일이 아니었다. 기마경찰은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말을 타고 다니는 경찰을 본 적이 없어서 굉장히 놀라운 포인트였다.
만약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 시위 등을 보게 된다면 높은 확률로 그 근처에서 기마경찰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후 5시의 밤
영국의 겨울은 밤이 빨리 찾아온다. 오후 3시부터 어둑어둑해지다가 4시면 해가 지고 5시면 한 밤처럼 깜깜해진다. 하루의 대부분을 어둠 속에 사는 기분이 든다.
처음 영국에 도착했을 때 한겨울인 1월이었다. 한국의 겨울보다는 훨씬 덜 추웠지만 밤은 훨씬 빨랐다. 한국도 겨울에는 해가 빨리 진다고 하지만, 영국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작 3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점점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니 하루의 대부분을 어둠 속에서 사는 기분이 들었다. 영국의, 특히 북부의 겨울은 날씨도 좋지 않아 하루 종일 한 번도 밝은 해를 못 보고 어둑어둑하다 끝나는 날도 많다.
그래서인지 영국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우울하게 느껴진다.
그 대신 영국의 여름은 그만큼 더 아름답다. 영국의 악명 높은 날씨가 거짓말 같이 느껴질 정도로 화창하고 청량한 하늘이 나타난다. 우울한 겨울을 버티면 한국보다 훨씬 덜 더우며, 습하지 않은 행복한 여름을 보낼 수 있다. 영국의 여름은 겨울과 반대로 밤 9-10시까지 하늘 한쪽이 밝을 정도로 낮이 길다.
이렇게 오늘은 영국에서 발견한 놀라운 점들을 이야기해보았다. 아직 이야기할 것들이 많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글에서 더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