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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원 Sep 25. 2024

영국에서 핸드폰을 잃는 101가지 방법

 

운이 나빴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이렇게 먼 타지에서 상상치 못한 순간에 핸드폰을 잃다니!




핸드폰이 없는 삶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 아침에 눈뜨고 잠에 들기 직전까지 나의 모든 순간을 함께해 주는 동반자이다. 특히 처음 가는 곳, 더욱이 해외라면? 길도 모르는 데다가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핸드폰의 존재는 생명줄과도 같다. 


사실 핸드폰이 내 손을 떠나는 것은 몇 번이나 상상한 적 있는 악몽이다. 유럽 여행을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사고를 떠올릴 때 소매치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유럽 여행을 결심하면서 소매치기 걱정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유럽의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소매치기가 빈번히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외국에서는 카페에 짐만 놓여있는 자리를 보고 짐을 탐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놓인 짐이 아니라 자리를 탐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만약 유럽 관광지에서 당신이 소지품을 놓고 자리를 뜬다면 장담컨대 자리를 뜬 지 5분이 채 안 돼서 언제 그곳에 물건을 놨냐는 듯 사라져 있을 것이다. 




실제로 유럽을 여행하면서 몇 번이나 소매치기의 위험이 있었다. 은근슬쩍 다가와 시선을 돌리며 주머니 쪽으로 손을 가져가기도 하고, 모르는 사이에 내 것이 아닌 손이 가방에 얹어져있기도 했다(내 몸은 하난데 가방에 손은 3개..?) 아무 생각 없이 식당의 야외 테라스에 앉아있는 우리에게 서버 분이 주의를 주신 경우도 있었다. 

부주의하게 식당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을 가리키며 누군가 길을 가는 사람이 채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이다. 한국에 살면서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실제로 주변에 유럽에서 순식간에 소지품을 소매치기당한 사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당연히 나도 소매치기로 핸드폰을 잃은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핸드폰을 잃게 된 경위는 악몽에서 봤던 것처럼 소매치기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소지품을 챙겼다. 먼 타지로 떠나는 딸에게 부모님이 당부한 것은 단 하나였다.


"네 몸과 네 물건 모두 온전히 보전해서 돌아오렴"


누군가 내 모습을 봤다면 유난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나, 잃고 나서 후회하면 늦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기본적으로 스트랩이 달린 핸드폰 케이스를 사용했고, 여행을 갈 때는 한국에서부터 챙겨간 목걸이 줄은 연결해 모든 순간에 핸드폰이 내 몸과 함께하도록 했다. 


지갑도 물론 어디에든 연결할 수 있게 체인이 달려있었고, 캐리어 벨트부터 시작해 분실방지 줄, 복대 가방 등등 소매치기 방지 물건이란 물건은 모두 챙겨 다녔다. 


노력이 빛을 발한건지 운이 좋았던 건지 다행히 유럽 7개국을 여행하며 단 하나의 물건도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하지 않고 지킬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많은 이유로 핸드폰을 잃을 수 있을 것이다. 깜빡하고 어딘가에 두고 올 수도 있을 것이고, 떨어뜨려 고장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은 상상치 못한 순간에 일어났다. 


여느 때처럼 여행을 마치고 영국에 도착한 우리는 비행기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영국은 우리를 거센 비로 맞이해 줬다. 익숙한 일이다. 

영국에 살면서 익숙해진 것 중 하나는 느닷없이 내리는 비였다. 맑다가도 갑자기 쏟아졌고, 강우 경보도 흔한 일이며, 비가 오지 않는 날이라도 먹구름이 언제든지 비를 내릴 것만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이 순간에도 내려진 런던 강우 경보 (출처: https://weather.com/weather/today/l/51.51,-0.13?par=google)


그날도 비는 거셌고, 우리에게 우산은 없었다. 여행 짐에 우연이 우산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진작에 영국에 살면서 우산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져 우산이라는 걸 안 쓴 지 몇 달은 된 시점이었다. 거센 바람으로 인해 우산이 있었어도 큰 도움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몇 달간 우산 대신 쏟아지는 비를 막아줬던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고, 비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했다. 몸의 일부처럼 손에 붙어있던 핸드폰이 젖을 새라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고 지퍼까지 잠갔다. 이미 익숙해진 길이기에 지도를 볼 필요는 없었다. 모자를 뒤집어쓰고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비바람을 뚫고 집으로 돌아간 나는 물에 빠진 생쥐꼴이었다. 좀만 더 젖은 옷을 입고 있었다간 감기에 걸릴게 분명했기에 탈피하는 뱀처럼 걸친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우선은 따뜻한 물에 샤워부터 했다.


개운하게 씻고 나와 뽀송해진 상태로 가장 먼저 핸드폰을 찾았다. 같이 돌아온 친구에게 잘 도착했냐고 연락이라도 남길 생각이었다. 그렇게 쫄딱 젖은 바람막이 주머니에서 끄집어낸 핸드폰의 상태는 딱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다행히 미약하지만 그래도 바람막이가 방수 기능을 해준 건지 옷에 비해 핸드폰은 많이 젖지 않았다. 습기에 찬 사우나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정도의 물기만 맺혀있었다. 


조금 맺혀있는 물기를 쓱쓱 닦고 전원 버튼을 가볍게 눌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검은 화면은 묵묵하게 나 자신을 비출 뿐이었다. 배터리가 다 됐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굳이 배터리를 꽉 채워놓지 않았던 게 기억났다. 바로 짐에서 충전기를 꺼내 핸드폰 충전 단자 부분을 호호 불고는 연결했다. 그리고 또다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배터리를 충전하면 전원이 켜지지 않던가? 원래 충전 표시도 뜨지 않던가? 전원버튼을 꾸욱 눌러보기도 하고 충전기를 뺐다가 다시 꽂아보기도 하고 충전될 시간을 줘야 할까 싶어 잠시 모르는 척하다 조금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이 들 때 다시 시도해보기도 했다. 


그 모든 노력이 무색하게 핸드폰은 켜지지 않았다. 그제야 핸드폰이 고장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바람막이 주머니 속에서 비를 맞은 탓에 모르는 새에 물이 들어가서 고장 난 것이라는 걸. 

그걸 몰랐던 나는 물이 들어간 핸드폰을 가지고 하면 안 되는 모든 것을 한 셈이다. 핸드폰이 아예 물에 풍덩 빠진 것도 아니고 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은 그렇게 젖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고장 났을 거라곤 예상조차 못했다. 




그렇게 핸드폰은 완전히 쓸 수 없게 됐다. 순간 앞으로 어떡해야 하나 막막해졌다. 다른 건 몰라도 핸드폰만은 지키고 싶었는데 그 핸드폰이 고장 난 것이다. 먼 타지에서 핸드폰을 못쓰게 되다니! 휴대폰이 켜지지도 않아 데이터 복원이나 이동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핸드폰 사진 자동 클라우드 업로드 기능을 사용하고 있어 대부분의 사진은 그대로 볼 수 있었지만 결국 핸드폰이 고장난기 전 하루치 사진은 끝끝내 잃었다.)


불행 중 다행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핸드폰은 손쓸 수 없게 됐지만 그 순간 손 닿는 곳에 노트북이 있었다. 여행 도중에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바로 노트북을 켜고 친구들과 부모님께 소식을 알렸다. 고민을 했으나 이미 수리로 복구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과 이미 2년 넘게 사용한 핸드폰을 바꾸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는 조언을 받고 고장 난 핸드폰은 그만 보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국 다음날 바로 가까운 삼성 센터를 찾았다. 맨체스터와 리버풀에 Samsung Experience Store이 있었고 나는 그중 리버풀에 위치한 삼성 매장에 가기로 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도착한 삼성 매장에서 바로 핸드폰을 구매했다. 새 핸드폰의 전원이 켜지는 모습을 본 그제야 계속 두근거렸던 심장이 진정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경험(외국에서 핸드폰을 개통하기)을 하게 된 후, 한동안은 새로운 핸드폰과 친해지는 데에만 며칠을 썼다. 



리버풀 사진


영국에서 구매한 핸드폰은, 

1. 통화 녹음 기능이 없다

갤럭시 핸드폰 사용자로서, 항상 전화 녹음 기능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영국에서 구매한 핸드폰의 경우, 똑같은 갤럭시인데도 불구하고 통화 녹음 기능이 없다. 설정에서도 관련 기능을 찾아볼 수 없고, 이전에는 통화 화면에 존재했던 통화 녹음 버튼이 지금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2. 카메라 셔터음이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카메라 셔터음이 반드시 나도록 설정되어 있지만, 나라에 따라 그렇지 않은 나라들도 많다. 특히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법적으로 의무가 아니라 카메라 셔터음을 지원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핸드폰도 유럽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사진을 찍을 때 '찰칵' 셔터음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한국에서 사용하던 핸드폰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셔터음이 나지만, 영국에서 구매한 핸드폰의 경우 한국에 들어와도 소리가 카메라 셔터음이 나지 않는다. 


3. 한국 기준으로 당연하게 사용했던 설정이 사라졌다. 

재난 알람문자가 오지 않고, 핸드폰 달력에 한국 공휴일이 빨간 날로 표시되지 않으며, 달력에 표시된 일정 정보를 읽어줄 때면 마치 외국인이 한글을 읽어주는 것처럼, 알파벳으로 적힌 한국어 문장을 읽어주는 것처럼 들린다. 이 밖에도 자잘하게 차이가 나는 설정들이 있다. 




물론 위의 대부분의 것들은 설정을 찾아 변경하거나 별도의 앱을 사용해 해결할 수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처음 맞닥뜨렸을 때는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소매치기도 아니고 궂은 날씨 때문에 핸드폰을 잃을 수 있다니 조심할게 하나 더 생겼다. 


리버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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