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발과 내 발이 같은 크기가 되었을 때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넓게만 보였던 방이, 이렇게 작았었나 놀라는,
멀고 넓던 그 길이 이렇게 좁고 가까웠나 당황하는,
팔씨름에서, 이젠 이길 수 있는데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아 비등한 척 지는,
그런 순간들.
그중에서 오늘은 내 발이 엄마 발과 크기가 같아진 무렵의 이야기를 쓴다.
엄마는 처음부터 나에게 엄마였다.
다 자란 엄마.
그러니까 내가 본 엄마 발은 크기가 늘 225mm였다.
다 자란 발.
내 발은 점점 자라서 잠시 225mm가 되었었는데
그때, 나는 엄마 신발을 신어도 됐고, 엄마는 내 신발은 신어도 됐다.
열 밤만 지나면 학교 소풍날이었다.
소풍날 입을 체크 원피스와 고동색 구두를 샀다.
내가 골랐다.
구두는 오래 걸으면 발이 아프다는 엄마의 걱정에도 나는 구두를 골랐다.
반짝반짝 광이 나는, 얇은 가죽끈 리본이 달릴 고동색 둥근 코 구두에 반했던 거다.
소풍날 처음 신으려고 아껴두었던 내 구두가 사라졌던 건 소풍 가기 이틀 전이었다.
내 구두도 집에 없고, 엄마도 집에 없는데 엄마 신발은 전부 다 집에 있었다.
'그럼 엄마가 내 구두를 신고 나갔다는 건데,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가 있나.'
화가 나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엄마에게 따지고 화를 낼 거야 생각하며 이글이글 빨간 마음으로 엄마만 기다렸다.
마당에서 차 소리가 들리고, 아줌마들 목소리가 들리고,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나는 엄마 발을 보았다. 역시, 내 구두가 엄마 발에 있었다.
"엄마가 어떻게 그래? 어떻게 내가 아껴둔 구두를 먼저 신을 수가 있어? 소풍 끝나면 신지, 소풍날 내가 먼저 신었어야지!"
나는 큰 소리로 엄마에게 와다다다 따져 물었다.
엄마는 하나도 화를 내지 않았다. 약간 지친 목소리지만 잔잔하고 다정했다.
"미안해, 엄마가 신발 좀 길들이려고 신었어. 새로 산 구두 신고 오래 걸으면 뒤꿈치가 까져서 많이 아플 수 있어. 엄마가 그래서 늘려놓으려고 신고 나갔어. 너한테 말하면 못 신고가게 할 거 같아서 몰래 신었네, 미안해."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온 엄마, 엄마의 하얀 레이스 카바 양말, 빨갛게 물이 든 뒤꿈치.
나의 화는 갈 곳을 잃었다. 나의 원망은 흐물흐물해져 나에게 달라붙었다.
소풍날 아침에 엄마는 멀쩡한 내 발뒤꿈치에 밴드를 붙여주었다.
혹시 모르니 밴드를 붙이고 양말을 신으라고 했다.
소풍이라는 건 많이 걷고 오래 서있는 거다.
다음에는 운동화를 신어야지 생각했다.
'뒤꿈치가 까지지 않아도 이렇게 발이 아픈데, 엄마는 어떻게 그걸 신고 걸었던 거야.'
화창하게 서글픈 행진이었다.
점심때, 솔밭에서 다시 엄마를 만나서 김밥을 먹었다.
엄마가 신발을 늘려줘서 난 하나도 안 아프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 순간 내 마음이 살짝 가벼워졌다는 건 비밀인데,
지금 생각하니 엄마는 속을 다 알았을 것 같은 투명한 비밀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