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에 집을 떠났다.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가게 된 것이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그때는 잘 몰랐다.
떠나기 전날, 무뚝뚝하던 아빠가 내 방에 들어오셨다.
“내일 집을 떠나면, 이제 평생 나가는 거야.”
아빠는 눈물을 참지 못하셨고, 나는 무척 당황했다.
엄하고 무서운 것만이 아빠인 줄 알았는데,
내가 아빠를 잘 몰랐다.
눈물을 참느라 목이 아팠다.
엄마는 잠옷을 사주셨다.
빨간 체크무늬에,
목과 주머니에 하얀 레이스가 달린 옷이었다.
“기숙사에서 잘 때 입어.”
내 옷 같지 않은 것이 이제 내 옷이 되었고,
우리 집에서 잠옷이 있는 건 나 하나뿐이었다.
떠나는 날 아침,
동네 어르신들이 찾아오셨다.
등을 두드려 주시고 손을 잡아 주셨다.
뭉툭하고 곱은 따뜻한 손.
“인사를 잘해서 참 고마웠다.”
그게 고마운 일이나 되나, 민망했다.
차에 타고 집을 떠날 때,
우리 강아지가 길을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가 말이 통했다면,
네가 사람 말을 하거나
내가 강아지의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소리 내지 않고 우는 건 목이 아팠다.
우리 강아지, 우리 친구들, 우리 동네 사람들과
우리 앵두나무, 고야나무, 수정나무, 금낭화, 해당화,
개울과 산과 교회가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끈을 길게 달고 우주로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기숙사에서의 첫 밤, 새 잠옷을 입고 누웠다.
‘우리 마을엔 별빛과 달빛 말고는 없었는데, 여기는 밤에도 새까맣지 않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열일곱 살에 첫 이사를 했다.
아빠의 말처럼, 그건 평생 집을 떠나는 시작이었다.
줄을 묶고 우주로, 우주로 더 멀리 둥둥.
나는 아직도 꿈에서 우리 집에 살곤 한다.
시람에게도 뿌리가 있다면
나고 자란 곳 어딘가부터 쭉 이어져 있을 것 같다.
꿈속에서 나는
펌프에 마중물을 붓고 양팥을 힘껏 움직인다.
물이 콸콸 쏟아지고 빨간 대야가 차오른다.
엄마가 웃고 나는 자랑스럽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날에도,
나와 이어진 그 뿌리 속에
그때의 모든 것이 늘 재생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기억으로 내 아이의 내일을 바라보곤 한다.
언젠가 아이의 첫 이사에도 목이 아프겠지.
이런 생각을 할 때, 바람 한 가닥도 사무치게 소중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