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면 개울에서 수영을 했다. 얼른 물놀이가 하고 싶어서 아직 많이 덥지 않은 날인데도 개울물에 손을 담가 온도를 자꾸 확인하곤 했다. 이만하면 물에 들어가도 될까. 아니, 너무 차가운 거 같아, 친구들과 나는 들뜬 마음으로 매일 물을 만져보곤 했다.
재밌는 건 매년 수영을 처음 하는 날엔 물 온도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이미 누군가 물에 들어갔다가 젖은 옷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아이들이 모인 공터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얘들아, 물에 들어가도 돼, 많이 안 차가워!"
그러면 모두 집으로 달려가서 색이 들어간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검은 봉지에 수건과 샴푸를 담아서 나온다. 물안경이나 튜브가 있다면 그것도 가지고서. 우리 동네 아이들은 수영복이 따로 없어서 젖어도 속이 많이 비치지 않는 짙은 색 옷을 입었다. 그때는 개울에서 수영을 하다 머리를 감는 것이 사람에게든 자연에게든 폐가 되는 행동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집에 가기 전에는, 샴푸로 머리를 문질러 거품을 내고, 그 상태로 물에 엎드려 두 손으로 머리를 빠르게 비비며, 두 발로 첨벙첨벙 발장구를 쳐 앞으로 나가는 머리 감기 수영을 했다.
여름엔 비가 오는 날만 빼고 개울에 갔다. 나는 다른 아이들만큼 매일 가지는 못했는데, 엄마까지 집에 없는 날엔 내가 가게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너무 놀고 싶을 때는 몰래 가게문을 잠그고 수영하러 다녀오기도 했지만 마음이 썩 편하지가 않았다. 그래도 여름엔 되도록 많이 개울로 갔다. 개울이 가까워지면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참 좋아서, 가까이 갈수록 걸음이 빨라졌다. 감자밭을 지나 길게 자란 소리쟁이를 스치고 울퉁불퉁 돌멩이들을 건너뛰듯 밟아 커다란 바위에 올라가서 검은 봉지를 놓고 신발을 벗고 물속으로 첨벙!
개울 이름은 무당소였다. 왜 무당소냐면,
"예전에는 물이 어른키보다 더 깊었대. 사람들이 자꾸 개울물에 빠져 죽어서 무당을 불러 굿을 했대. 무당이 개울가에 그 큰 바위 위에 올라가 방방 뛰었는데, 미끄러졌는지, 뛰어들었는지, 아무튼 물에 빠져 죽었다는 거야. 이상하게 그다음부턴 사람들이 안 죽었고 여길 무당소라고 불렀대."
이걸 말해준 사람은 내 친구였다. 진짜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엄마는 모르는 얘기라고 했고, 삼촌은 "그걸 믿니, 빙신아." 하고 놀렸고 아빠는 바빴다. 더 알아보려면 그럴 수 있었지만 나는 그냥 믿기도 했는데, 그 이야기로 무당소가 더 으스스하고 신비롭게 느껴지는 게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모험과 동화와 판타지와 괴담이 필요했다. 무당소는 정말 그 이야기에 딱 맞는 장소였다. 혼자서나 둘이서는 그 스산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서 꼭 셋 이상이 가야 했다. 물론 셋이 가도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우르르 가서 왁자지껄 떠들고 웃어야 개울가 풀 속 어두운 그림자도, 나무 밑 파랗게 축축한 공기도 환하게 밝아진다는 걸 무당소가 무당소가 된 이유를 모를 때도 알았다. 그 묘한 인상이 뭉쳐져 무당소라는 이름으로 흘러온 거 같다. 그때 그 이름을 떠올리거나 들은 누군가에게도 모험과 동화와 판타지와 괴담이 필요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