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면 손톱이 더디게 자라길 바랐다

by 고야씨


11월이면, 손톱이 더디게 자라길 바랐다.

손톱에 들인 봉숭아물이 오래 남아있길 바랐다.

첫눈이 올 때, 봉숭아물이 남은 손톱 위로 첫눈이 떨어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유성이 떨어지기 전에 소원을 비는 건 너무 순식간이라 어려웠는데,

봉숭아물은, 그때까지 색이 남아있기만 하면 소원을 빌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또 제법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있기만 하면 된다면 그렇게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 초승달 같이 남은 주홍 손톱 끝 위에 첫눈이 닿아야 한다는 게, 소원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퍽 적절하게 느껴졌다.



언니가 있는 애들은, 야무진 언니들이 때가 되면 척척 봉숭아물을 알아서 들여줬다.

봉숭아물을 들인 날에 그 애들의 손끝은 예쁘고 가지런하게 비닐봉지 조각으로 묶여 있었다.

다음 날 그 애들의 손가락은 검붉은 색이었다. 살까지 물이 진하게 들었는데, 그렇게 색이 진해야 나중에 손톱에 선명하고 예쁘게 남는다고 했다.

나는 언니가 없었고, 엄마가 먼저 손톱에 물을 들여주지 않아서 스스로 봉숭아물을 들였다.


친구들이 방법을 알려주었다.

우선 봉숭아의 꽃과 잎을 같이 따야 한다는 거다. 꽃만 따면 색이 진하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꽃과 잎을 곱게 찧는다. 나는 절구가 없어

평평한 돌과 손에 쥐기 쉬운 돌을 골라서 씻었다.

찧을 때 백반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백반이 뭔지 물어봤는데, 하얀색이고, 통에 백면이나 명반이라고 쓰여 있다고 했다.

엄마에게 집에 백반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없다고 했다.

친구 말로는 백반이 없으면 소금을 넣는 거래서 나는 소금을 조금 넣고 찧었다.

반죽처럼 된 봉숭아를 손톱 크기만큼 덜어서 손톱 위에 살살 올린다.

아, 미리 비닐봉지도 잘라두어야 한다. 손톱을 감싸서 빙빙 감아 묶을 만큼.

나는 열 손가락 다 물들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유는 그게 예뻐 보이지 않아서였다.

새끼와 약지 손가락에만 들이기로 했다. 혼자서 묶는 게 어려워 결국 왼손에만 물을 들였다. 한 손과 입을 사용해서 묶었다.

하룻밤 자고 아침에 풀어야 물이 잘 든다고 했는데, 답답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겨우 참고, 날이 밝아지자마자 묶어둔 비닐을 빼고 손을 씻었다. 백반이 없던 탓인지 손톱에 흐리게 물이 들어 있었다.


친구들의 검붉은 주황색이 예쁘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색이 진할수록 대단한 거라고 해야 하나, 친구들 사이에서 알아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더 오래 버틴 게 멋져 보였다.

나는 흐릿한 주황색, 나 혼자 얼렁뚱땅 들인 물, 자신감은 없지만 그래도 손톱 끝에 남은 색이 소중해서 되도록 오래 남아있길 바랐다.




내가 처음 들인 봉숭아물은 첫눈까지 남아있지 못했다.

초승달처럼 남은 흐린 주황 손톱이 아까워 새끼손톱을 깎지 않고 그대로 두었었는데, 허무하게도 놀다가 부러져버렸다.


친구 숙이가, 가장 손톱을 시뻘겋게 물을 들였던 숙이가, 11월에 다시 검붉은 손가락이 되어서 나타났다.

숙이네 언니가 봉숭아를 찧어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어제 새로 물을 들여주었다고 했다.

첫눈이 오면, 손만 내밀면 바로 물이 든 손톱에 첫눈이 떨어질 거라고 했다. 소원을 열 개 생각했다고 했다.


아, 그런 방법도 있구나. 그런데 그렇게 해도 신비한 기운이 남아있을까? 생각했다.

소원을 이루려면 긴 시간 간절하게 바라는, 어려움을 참고 극복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냉동실에 얼려둔 봉숭아 반죽에, 그래, 그게 지혜라면 지혜일 테지만, 소원이 그렇게 이루어지는 게 맞을까?

허탈한 마음으로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다음 달 유성에 도전하자 마음을 먹었다. 유성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소원을 하나 정해 빨리 마음속으로 비는 법을 연습했다.


너무 욕심이 많은 소원은 책에서 배웠듯이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큰데, 내가 바라는 건 많으니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을 했다.


그렇게 고민하다 정한 한 문장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해 주세요.”였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 달라는 건, 나쁜 사람의 나쁜 행복도 빌게 될 것 같아 겁이 났고, 나만 행복한 것도 싫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불행을 빌 것 같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소중한 사람들은 너무 많아 일일이 호명하기 어려우니.


소원 한 문장을 생각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 후로 지금까지 나는 유성이 떨어질 때면 그 문장을 반복해서 말하곤 한다.

유성은 너무 빨리 떨어져서 “와!” 하고 감탄하는 순간 이미 없으니까,

유성우 시간엔 계속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 거다.

떨어지는 순간 문장을 다 말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다.


숙이의 냉동실 봉숭아물 소원이 이루어졌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그 후로도 나는 냉동실에 봉숭아물을 얼려두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신비함은 거기 없었으니까.


다음 해, 봉지를 잘라두고 돌 위에 봉숭아꽃을 조금, 잎을 많이 두고 찧고 있는데,

엄마가 내 모습을 보고 다시 봉숭아를 따오라고 했다.

엄마는 이모할머니 댁에 전화를 걸어 백반도 빌렸다.

백반을 넣으면, 며칠 지나 손톱 주변 살이 까질 거라고, 아플 텐데 그래도 넣고 싶냐고 엄마가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절구에 봉숭아 꽃과 잎, 그리고 백반을 넣어서 찧고, 내 손톱 위에 그 반죽을 동그랗게 올리고,

비닐랩으로 한 번 돌려서 감고, 검은색 비닐봉지로 다시 감싸 예쁘게 묶어주셨다. 가지런하고 빈틈이 없지만

피는 잘 통하는 정도로.


나는 검붉게 물이 드는 건 싫어서 새벽에 쏙 비닐을

빼버렸다.

아침에 선명한 주황색 손톱을 보니 얼른 학교에 가고 싶었다.

아이들은 제일 검붉게 물이 든 손톱을 최고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아침 하늘 같은 내 주황빛이 참 좋았다.


오른손에 두 손가락, 왼손에 세 손가락 물을 들였는데, 이 중에 하나만이라도 첫눈이 올 때까지 남아주길 바랐다.

손톱이 밀려 올라갈 때 또렷한 색의 경계가 참 예뻤지만, 반 이상을 새 손톱이 차지하고 나면, 첫눈의 시간과 손톱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길 바랐다.


그러는 동안 소원을 다시 정해보곤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빌게 되는 소원은 또,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해 주세요.”였다.

물론 이 문장에도 많은 함정이 있는 걸 알지만, 그 함정을 밀어내는 내 마음에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눈이든 손톱이든 하늘이든 별이든 알아줄 거라는 옛이야기 같은 바람으로.


화요일 연재
이전 10화보물 찾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