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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가위바위보

1-4. 야마 - 브라마차리야 : 불필요한 에너지의 제거

by 고요한동산

가위.바위.보
나도 모르게 휩쓸린 수많은 욕망들 사이에서 매 순간 가위바위보를 합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 고민하며, 오늘도 손을 펼칩니다.
그중 단 하나, 내 깊은 곳에서 올라온 가장 진실한 욕망이 당당히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위잉. 위잉. 계속해서 진동이 울립니다.

오늘에서 내일로 변하는 시간 00:00

브런치에 구독한 작가들의 글 발행 알람입니다.

자야 하는데, 자꾸만 핸드폰을 놓지 못합니다. 엄지손가락을 부지런히 위아래로 움직이며 스크롤을 내려 글을 읽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과거가 되어 쌓이는데 손가락과 눈은 작은 네모에 머물러있습니다. 빛나는 직사각형 속 세상은 마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유토피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핸드폰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우리는 세상을 공유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볼 수 있고, 원하는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네모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유로움을 얻습니다. 더 이상은 참지 않아도 되는 욕망의 판타지 세상 같습니다.



야마의 네 번째 규율 브라마차리야 (Brahmacharya)는 금욕. 욕망의 절제를 말합니다.

금욕이라고 하면 성욕, 식욕 등의 쾌락을 금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성욕을 감춰야 하는 수치스러운 것이라 여기거나,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미련하게 보는 시대가 아닙니다. 사랑의 표현에 거침없고 맛집 탐방을 하며 먹는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이제 참는다는 단어는 바보에게나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옛날과 다르게 욕망에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하고 금욕이라는 단어에 콧방귀를 뀝니다.

이렇게 요즘은 금욕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아마 욕망을 무조건 제어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요가철학에서 금욕은 무조건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브라마차리야. 금욕은 단순히 욕망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에너지를 제거하여 욕망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원초적인 에너지는 쿤달리니가 꽈리를 틀고 앉아있는 물라다라 차크라에서 발생됩니다. 척추의 가장 아래쪽에 깊이 자리를 잡고, 욕망과 창조의 근원 에너지를 다스립니다. 성적인 에너지가 생겨나고, 생존본능과 창조에너지를 깨웁니다. 이 에너지의 방향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의 성장방향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가철학에서는 내면에서 발생한 순수 에너지를 흐트러뜨리는 무분별한 욕망을 가지치기하여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작은 욕망의 씨앗이 날아와 마음에 싹을 틔우고 덩굴처럼 나를 휘감아버리곤 하니까요.


지난 시간의 드린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Q. 자극적인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겨, 진짜 원하던 것을 놓친 적이 있으신가요?


세상에는 자극적인 것이 넘쳐납니다. 미디어에는 내가 겪지 못한 달콤한 이야기 또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가득 있습니다. 게다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동경하는 주인공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거리를 나서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휘향 찬란하고 눈부신 네모 세상을 한 손에 들고 영혼을 그곳에 박제한 채 걸어 다닙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둥급니다. 바람은 살랑이며 굴곡을 그리고 소리도 파장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유연하고 변화무쌍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자연입니다. 그런데 직선의 틀로 만들어진 자극적인 세상이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사람들은 정보의 바다에 들어간 후 생각의 지퍼를 잠가버립니다. 이렇게 주입된 정보에 우리는 지배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손에 들려 끊임없이 빛을 내고 있는 핸드폰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의 자유는 어쩌면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네모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갇혀있는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회사에 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눈썹사이 주름이 움푹 파이고 있어요. 어쩌지요?" 하고 내가 걱정스레 물으니

"미간 보톡스를 맞으면 돼."

라고 직원이 정보를 주었습니다. 보톡스는 기본이고 리프팅을 해서 얼굴을 당겨주고 이마에는 지방을 넣어 볼록하게, 턱도 살짝 만져주면 라인이 산다고 합니다. 얼굴은 만들어가는 거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나무의 나이를 나이테로 가늠하듯이 사람도 하나 둘 생기는 주름으로 세월의 흔적을 새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세월의 흔적을 지우고 나이를 새롭게 재정립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다른 직원은 얼마 전에 고주파 마사지기를 샀는데 피부가 너무 좋아졌다며 상품 링크를 공유해 주었습니다. 저는 고맙다고 카톡을 보냈습니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걸까요? 저는 네모세상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연예인들과 우리를 유혹하는 광고들. 아름다움의 기준을 적당한 때에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바꿔가며 네모세상에 업데이트하면 사람들은 기준에 맞추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입니다. 아름다움과 젊음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욕망을 통해 병원들은 돈을 법니다.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장치가 곳곳에 설치되어 사람들은 현혹당하며 삽니다.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는 속삼임은 쉼 없이 눈과 귀를 자극합니다. 조용히 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와 내부를 둘러보면 지쳐있는 나를 만나게 됩니다.

에너지를 모아 원하는 순간에 문을 여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요가정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요가원 문을 열었었습니다. (오래전입니다. 지금은 요가정원이 없어요 ㅠㅠ) 그 당시 온전히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거울을 달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회원들은 거울이 없어 불편해했지만 나중에는 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상태에 집중하며 수련을 해 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회원들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이는 것에서 벗어나니 자유로워졌습니다. 자유는 외부의 자극을 멈추고 나에게 집중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지는 것이었습니다.


브라마차리야 (Brahmacharya)는 결국 욕망의 방향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에너지를 본질을 향해 모으는 것이죠.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도록 집중하여 진짜 원하는 것에 에너지를 쓰는 것이 브라마차리야를 실천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요가수트라》에는 브라마차리야에 대해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Brahmacharya-pratisthāyām vīrya-lābhaḥ.”

(브라마차리야에 확립된 자는 강력한 에너지를 얻는다.)


에너지를 모아주는 실천법 중 하나는 호흡을 통한 것입니다.

요가에서는 숨의 멈춤을 말하는 쿰바카(Kumbhaka)라는 호흡법이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 “Kumbha”는 항아리, 용기라는 뜻이고 “-ka”는 ‘상태’를 뜻하는 접미사입니다.
즉, 쿰바카(Kumbhaka)는 “이라는 생명의 기운이 항아리 안에 머무는 상태”를 말합니다.
숨이 들어오거나 나가지 않고, 고요히 머물러 있는 정지의 순간을 쿰바카라고 합니다.
**두 가지 종류의 쿰바카가 있는데 마신 후 멈추는 안타라 쿰바카와 내신 후 멈추는 바야 쿰바카가 있습니다.


! 안타라 쿰바카 (Antara Kumbhaka) : 들이쉰 후 멈춤
! 바야 쿰바카 (Bahya Kumbhaka) : 내쉰 후 멈춤


숨을 들이마시고, 멈춥니다.
가만히 욕망을 바라봅니다.
숨을 내쉬고, 멈춥니다.
그 순간 욕망도 멈춥니다.

이 호흡법을 해보면 그 안에서 에너지가 가득 차오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쉽사리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호흡을 통해 내 안에 머무르는 겁니다. 욕망을 절제한다는 것은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게 하여 진정으로 원하는 곳으로 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흡을 통해 멈추어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무조건적인 비움과 억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채우고 멈추고 비우고 멈추는 흐름 속에서 나도 모르게 휩쓸리는 욕망을 바라보고 멈추며 방향을 선택해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도록, 진짜 나의 욕망이 아닌 것에 휘둘리지 않도록 말이지요.


가위.바위.보

나도 모르게 휩쓸린 수많은 욕망들 사이에서 매 순간 가위바위보를 합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 고민하며, 오늘도 손을 펼칩니다.

펼쳐낸 손들 가운데, 내 깊은 곳에서 올라온 가장 진실한 욕망이

당당히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브라마차리야를 향해 갈 수 있도록 아사나 하나를 소개합니다.


사르방가아사나 (Sarvangasana) - 어깨서기


어깨서기_chatgpt (목이 뜨면 안 돼요. AI가 한계가 있네요 ㅠㅠ)


1. 준비 자세: 바닥에 누워 팔은 몸 옆에 두고 무릎을 구부립니다.

2. 상체 들기: 엉덩이를 서서히 들어 올리며 손으로 허리를 받칩니다. 손을 허리에서 어깨 쪽으로 최대한 가져갑니다. 팔꿈치는 어깨 가까이 모아줍니다. 상체를 수직으로 세워줍니다.

3. 완성: 서서히 다리를 천장으로 가져가 곧게 펴줍니다.

주의) 무리에서 넘기다가 목이 다칠 수 있어요. 허리를 잘 받쳐주셔야 합니다.

4. 호흡: 5~10회 반복합니다.

5. 마무리: 다리를 머리 위쪽으로 넘겨 할라아사나(쟁기자세)를 취하고 서서히 내려옵니다.

쟁기자세 - chatgpt

야마는 절제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힘사. 사랑을 향해 폭력을 제거하고,

사티야. 진실을 향해 그릇된 마음, 말, 행동을 제거하고,

아스테야. 내면의 평온을 향해 비교와 탐욕을 제거하고,

브라마차리야. 에너지의 집중을 향해 진짜가 아닌 욕망을 제거합니다.


이제 야마에서 다섯 번째 아파리그라하(비소유)만 남겨두었습니다.

다섯 가지 금욕 가운데 우리는 네 가지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지혜를 추구하며 나아가는 과정이 철학이고 그 과정에서 나의 삶은 조금씩 조화로워집니다.


다음 시간에는 아쉬탕가 철학의 뿌리인 야마(Yama).

다섯 번째 규율 <아파리그라하(Aparigraha) : 소유의 절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겠습니다.


미리 질문을 던집니다.

Q. 끊임없이 소유하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나요?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다시 이야기 나눠요.

고맙습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사적인 요가 철학이야기

아쉬탕가 철학의 뿌리인 야마(Yama)에서의 다섯 번째 규율

<아파리그라하(Aparigraha): 소유의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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