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고 보니 나에게 하는 투자나 공부가 쉽지만은 않다. 데레사 씨도 그랬을 테지..
어렸을 때 데레사 씨의 음반을 내주고 싶었다.
타고나길 성량이 좋고 고운 음색이라 성당에서 마이크가 없어도 그녀의 목소리는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뚫고 성당 전체에 퍼진다.
타고나길 노래를 잘하니 세상에서 노래가 제일 쉽다 했다.
성당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며 솔로를 도맡아 하기시작하면서 종교음악을 배우러 가고 합창단에 들어갔다. 대학에서 전공하지 않는다고 배울 수 없는 건 아니니 꾸준히 배워 성가대 지휘자가 되었다.
성당에서 하는 봉사인데도 사람들은 전공자를 찾고 명예를 찾는다. 전공자가 아니면서 젊은 데레사 씨가 성가대 지휘자가 되자 말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궁시렁 되었는지 말도 못 한다. 종교집단이어도 사람들이 모이는 단체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엄마를 지휘자로 점찍고 자신의 자리를 내어준 선생님은 그 당시 60대 할아버지였고 엄마를 믿었고 이끌어주었다.
그때의 데레사 씨가 40대였으니 지금의 나의 나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대학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성당지휘자로 그치기엔 그녀의 재능이 너무도 아까웠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펼칠 곳을 찾은 데레사씨는 열정 가득 성당에 봉사했다. 감각적으로 가장 풍성한 소리를 내는 성가대를 만들어놓았다. 누군가의 기가 막힌 행보를 보면 배알이 꼴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지 그런 데레사 씨를 물어뜯는 사람들로 데레사 씨는 상처받고 지휘자를 내려놓았다. 자신의 구원만을 위해 종교를 가지는가? 신을 믿는 이들의 이기주의에 신을 믿고 싶지 않아 졌다.
어렸을 때 집에 LP판이 있었다. 엄마가 결혼 전에 턴테이블을 사면 꼭 들어야지 하며 샀던 LP판이라고 했다. 우리가 크는 동안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LP판이 집에 턴테이블이 붙어있는 전축이 생기면서 드디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LP보다는 카세트테이프와 새로운 CD플레이어를 이용하게 되면서 오래된 LP판은 색이 바랜 종이 케이스에 보관되다 결국 버려졌다.
들어보겠다고 10년 넘게 가지고 있던 LP판 중 몇 개를 꺼내 들어보았으나 결국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라졌다.
엄마의 LP판이 버려지는 것이 속상했다. 그녀의 꿈이 버려지는 것처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데레사 씨에게 성당 지휘자를 맡아달라며 신부님의 요청이 들어왔다. 많은 전공자들이 거쳐가면서 작아진 성가대를 데레사 씨가 있을 때의 성가대로 만들고 싶다면서 말이다.
혼신의 힘으로 일하던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파놓고 돌고 돌아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여전히 이기적인 집단이었다.
"한번 해보지 뭐. 열심히 말고 힘 빼고 하면 돼"
데레사 씨는 옛날보다 여유로워진 모습으로 다시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우린 젊을 때 힘들여 열심히 한다. 그래서 용이 쓰이고 상처받기도 한다. 그렇게 생긴 생채기는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강하게 만들기도한다.
"지휘자님 우리 연습해야지요?"
단원들이 안달이 나서 말하면 데레사 씨는 말한다.
"쉬엄쉬엄 하면 돼요."
한층 힘을 뺀 데레사 씨는 즐거워 보였다.
잘하려고 애쓰면서 상처받았던 젊은 시절이 그녀에게 여유를 주었다.
"힘을 빼니 노래가 더 잘 돼."
데레사 씨가 말했다.
살면서 우리는 힘을 내야 할 때도 있지만 힘을 빼고 한숨 내쉬고 나서 다시 숨을 마셨을 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데레사 씨의 툭툭 뱉어내는 말 한마디를 나의 기억저장소에 저장해 둔다.
거실에 젊은 외할아버지 사진이 놓여있다.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사진 속 잘생긴 모습으로 지금의 데레사 씨보다 젊은 외할아버지가 그녀의 기억에 영원히 남아있다.
부모님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현재의 나보다 젊은 모습의 기억으로 남겨진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예전에 너희 외할아버지가 엄마 어렸을 때부터 본인이 돌아가실 때까지 항상 내 손톱을 예쁘게 깍고 다듬어 주셨어."
"외할아버지는 경찰이었는데 엄청 잘생기고 멋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그렇게 이뻐했었어."
외할아버지는 데레사 씨에게 좋은 기억이고 그리움이다.
반면에 외할머니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 데레사 씨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가셨다.
언젠가 데레사 씨는 말했다.
"나는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말아야지'를 목표로 너희를 키웠어."
"다들 나이가 들면 엄마가 그립다는데 나는 그립지가 않다."
데레사 씨의 그 말이 가슴 아팠다.
인생은 짧기도 하면서 길기도 하다.
사람의 죽음의 마지막이 결국은 기억이라면 짧든 길든 좋은 기억이길 바란다.
죽고 나면 남아 있는 이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는데 그 기억이 끔찍한 것은 죽고 나서도 너무 슬프지 않은가?
빨간 대문을 열고 기억을 들추어 보니 헤어짐이 있었을지라도 기억 속에 남아 함께 있었다. 불안정한 기억 장치일지라도 그 기억 속에 1인칭은 나이고 나의 시선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나를 변화시켜 새롭게 형성해 나갔다.
기억은 신비롭고 새로운 세계임이 틀림없다
모두가 머릿속에 신비로운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기억을 들추어 자신에게 독이 될까 득이 될까?
요즘 기억의 장치에서 득이 되는 기억만 꺼내보고 있다.
결국 자신의 세계에서 주인공은 나인데 이왕이면 해피엔딩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