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의 이야기
식민지배 하의 무기력한 지식인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진수, 이상의 날개
프롤로그에서 남자는 육신이 피로할 때, 담배를 태울 때 정신이 맑아짐을 느끼고,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는 위트와 파라독스를 나열하며, 현실에서의 모순을 비판한다.
현실에선 사회적인 일을 통해 돈을 벌지 못하고 아내의 방을 드나드는 내객을 쫓지도 못한다. 그가 속편히 이불 속의 연구를 가능케 하는 아내의 주 수입원이므로.
높은 곳은 젊은이의 이상을 세울 수 있는 장소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사람들의 피곤한 생활, 즉 현실이 한 눈에 보이고 그는 다만 아랫층과 분리된 채로 이상 속에 허덕이고 있다. 그가 숨쉬는 일상 모두가 위트고 패러독스다.
현란을 극한 정오, 오탁의 거리를 내려다 보며 날개에 대한 희망을 품어보는 젊은이의 모습이 우리의 그것과 닮아 있다. 우리는 이상을 쫓지만 현실과의 괴리에 무릎꿇고, 그게 아니면 이상마저 없이 피곤한 생활을 지속하며 무기력해 진다. 모든 것을 가능케 해주는 돈 앞에 가치관을 재단하고, 지식인으로서의 순수를 내다 버린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민족 말살의 시대에서 문학이 품은 것은 아스트랄함과 기괴함, 그리고 정제된 감정이다. 오랜 무기력은 우울으로 분노로 그 얼굴을 바꾸며 소설의 장르를 치환한다. 지식인의 무기력과 자본주의 앞에 선 가치관. 스물 여섯 먹은 젊은이는 사랑과 돈, 그리고 인간의 속성에 대해 고민한다.
위트와 파라독스로 점철된 우울한 스물 여섯의 청년
마치 말소된 페이지처럼 잊혀져 버리다
아내가 집을 비우고나서 혼자만의 놀이에 심취한 남자, 그는 어림잡아 아내의 직업을 짐작하고는 있지만 이불속에 들어 앉아 논문만 쓰고 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저금통에 아내가 준 푼돈을 모으는 것은 나름대로 감사를 표현하는 남자의 방법이다. 그러나 괜한 오기로 저금통을 변소에 내다 버린 후, 경성역 찻집 커피 한 잔 사 마실 돈이 없자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벤치에 누워 하루종일 수면을 취하는 것이 나름의 반항인 순하고 유약한 남자, 그런 남자를 사랑한 이유로 여자는 불미스러운 그리고 떳떳히 밝힐 수 없는, 때문에 매일 밤 남편을 가두어 두어야 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말만 잘 들으면 주어지는 돈과 친절은 애정을 바탕으로 한 배려가 아니라 사육에 가까운 것이었다. 선호나 기호 따위 없이 매끼 주어지는 밥상은 독선이다.
내객이 아내에게 지불한 돈, 아내가 남자의 머리맡에 놓아 두는 잔돈, 그 둘의 공통점은 쾌감이었다. 그 쾌감이 어떤 것인지 알 길 없는 남자는 아내가 준 돈을 모아 지폐로 바꾸고 그 지폐를 아내의 손에 쥐어주는 댓가로 아내의 방에서 잔다.
지성의 과잉 보호로 맛보지 못했던 자본주의는 보다 편리한 것이고 큰 이점을 지닌 것이었다. 그 편의를 사는 것이 돈인데 남자는 돈을 벌지 못한다. 현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여 이불 속의 연구만 하느라 이상에 잠식되어 살고 있다.
오랜 기간 지속돼 온 무기력은 희망과 야심을 말소시켜 버린다. 아내와 남자 사이에는 오해가 있다. 아달린이냐 아스피린이냐 하는 것과 도둑질이냐 계집질이냐 하는 것.
남편은 어림짐작으로 아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돈을 벌고, 남편이 외출이 잦거나 외박을 하고 돌아온 날이면 질투에 가까운 감정을 퍼부어 댄다.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같은 부부 관계일 지라도 서로 사랑을 하고 있다. 나름의 방식으로 나름의 한계치를 넘지 않는 푸석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란을 극한 정오, 남자는 날개가 다시 돋아 나길 간절히 바란다. 아마도 아내와의 첫 만남 때는 남자도 희망과 야심을 갖고 살았으리라. 그러나 간절한 바람은, 이제는 말소된 페이지의 그 것을, 새로이 돋아날 날개를 통해 다시 한 번 가져 보고자 하는 남자의 날개없는 활갯짓일 뿐이다.
■ 소설 속 상징
송이송이 꽃들: 유곽의 사람들을 꽃으로 표현하고 있다. 낮보다 밤이 화려한 동네로 말하고 있으며, 미닫이 문이 여닫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향수 냄새가 풍기는 곳이라는 점에서 일반 가정집과는 다른 성격의 공간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화류계 여성들을 상징하는 단어.
명패: 보통 가장의 이름을 명패에 써 붙인다. 그러나 33번지 일곱째 칸 남자의 집은 아내의 이름이 명패로 붙어 있다. 아내가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하고 있음을 알려줌과 동시에, 내객들이 아내의 이름을 보고 들어와 돈을 지불하는 것, 즉 아내의 직업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경성역 티룸의 커피: 텅 빈 맞은 편을 놓고도, 이런 저런 사색으로 여유를 즐거워 하는 주인공은 시대의 지식인이다. 남자가 찾아 들어간 티룸은 경성역 대합실 근처에 자리하고 있어, 여행객이 와 잠시 머무를 뿐 서로 모르는 얼굴들이라 각자의 공간을 침해하지 않는다. 화려한 인테리어보다 서글픈 분위기가 좋아 남자가 좋아하는 공간이다.
산 & 미쓰코시 옥상: 아달린 갑을 발견한 남자는, 인간 세상의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아 산으로 올라가고, 그렇게 외박을 하고 되돌아간 집에서 아내에게 혼난 뒤 무작정 집을 나와 미쓰코시 옥상으로 올라간다. 18가구가 어깨를 마주한 유곽과는 달리 하늘(이상)으로 우뚝 솟은 산과 옥상은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남자의 심리상태를 나타낸다.
아달린갑: 남자는 무기력하다. 현실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불 속에서 연구(사색)를 하는 것일 뿐, 아내의 방에서 잠을 자기 위한 5원도 제 손으로 못 벌어 먹는 처지의 사람이다. 어느 날, 감기에 걸린 자신에게 아내가 흰 알약을 건내고, 남자는 별 의심없이 아스피린이려니 하고 받아 먹는다. 감기는 나았으나, 밤낮으로 잠에 취해 있다. 우연히 아내의 화장대 근처에서 아달린 갑을 발견한 남자는 정신을 차린다. 밥도 아내가 주는 대로, 잠도 아내가 자라는 대로, 그리고 자정까지 방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규칙도 잘 따랐었지만, 아달린 갑을 발견하고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낀다. 아내가 혹시 자신을 죽이려고 아달린 정량을 매일 복용시켰을까 의심해보지만, 이내 아내가 힘든 일이 있어 수면제가 필요한 상황이라 자신이 먹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나 집을 나와 하루를 넘기고도 쉽사리 아내에게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달린 갑은 아내에 대한 의심을 나타냄과 동시에 현재 상황을 각성시키는 장치가 된다.
경성역: 이따금씩 기차 기적이 티룸의 모짜르트 음악보다 가깝게 들리는 경성역. 역에는 큰 시계가 있어, 자정을 확인하기에 좋은 장소이며, 드나드는 사람이 있을 뿐, 머무는 사람은 없다. 남자는 그곳에서 무명의 사람으로 누구나에게 잊혀질 수 있으므로, 오래 머물러도 눈에 띄지 않는다. 때문에 딱히 유흥을 즐기지도 않고, 친구도 없는 남자가 아내의 영업 종료 시간인 자정까지 시간을 때우기에 적합한 장소이다. 현재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남자의 심리도 포함되어 있다.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장소.
날개: 이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날개라는 장치는 희망과 야심을 나타낸다. 현재 오래간 진행된 무기력증과 우울감을 떨쳐줄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며, 이제는 말소돼 버린 희망과 야심의 페이지를 다시금 재생시켜보고자하는 속내를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남자는 아내에게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예전의 무기력한 모습이 아니라, 희망과 야심으로 가득 찬 날개가 달린 모습으로.
지폐: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장치. 지폐만 있으면 아내의 방에서 잘 수도 있고, 경성역 티룸에서 커피를 사 마실 수도 있다. 헤질대로 헤진 양복도 새로 살 수 있을 것이며, 아내에게 누깔잠(비녀) 하나 사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시대의 지식인을 상징하므로 항상 가난하다. 물질적 욕망보다는 학문에 대한 열망이 더 크고 정신적 가치를 높게 사는 지성의 특징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