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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Feb 27. 2018

심리학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28 콰르텟

우리 인생에서 가장 빛날 그 순간을 위하여


비첨 하우스,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


비첨 하우스. 언뜻 보면 보통의 사설 요양원 같이 보이지만, 이 곳은 전직 오페라 가수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거주지이다.


왕년에 난다 긴다했던 테너, 소프라노, 베이스, 바리톤, 그리고 악기를 연주했던 사람들까지 한 데 모여 은퇴 이후의 삶을 살아 간다.


모인 사람들이 특별한 만큼, 비첨 하우스에서는 연례적으로 특별한 활동을 한다. 바로 비발디의 생일에 맞추어 공연을 하는 것이다. 이 공연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비첨 하우스를 운영할 기금을 마련하는 펀드나 다름없다.


그래서 더욱 특별하고 아름다운 무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짜는 노인들.



그러나 매번 같은 멤버로 구성되는 무대가 그렇게 색다를 리는 없다. 절친한 친구인 윌프와 레지, 그리고 오페라 동료 가수였던 씨시까지, 모두가 함께 연습하고 노력해보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 화려했던 무대 위의 시간들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지나가 버리고, 이제는 지팡이나 휠체어가 필요한 노인이 된 사람들. 그들은 일 년에 한 번 무대에 서는 것이 삶의 희망이자 활력소가 된다.


바로 이 때, 전설적인 오페라 소프라노 진 홀튼이 비첨 하우스에 들어온다는 소문이 떠 돈다.


그리고 결국 그 소문은 진실로 판명난다.

  


낭중지추, 재능은 나이로 가릴 수 없다


아직도 세상의 중심은 나야 나!라고 온 몸으로 외치는 왕년의 여왕 벌 진 홀튼. 사람들은 비발디 생일 기념 공연에 진이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진은 여전히 콧대 높고 오만한 태도를 유지할 뿐이다.


나이들어 주름지고, 성량도 떨어진 한 물 간 가수로 대중 앞에서 망신을 당할 바에야, 왕년의 실력과 미모 뒷 편으로 나이든 자신을 감추겠다는 것일 터.


그러나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진을 설득한다. 단 한 사람, 레지만 빼고 말이다.


사실 레지와 진은 부부사이였다. 모든 것이 서툴고 감정적이었던 어렸던 시절, 둘의 결혼 생활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모두가 여왕 벌의 귀환을 환영하고 있을 때 레지는 홀로 씁쓸함을 감출길이 없다.



그러나 세월은 강산도 변하게 한다던가.


반짝 반짝 빛났던 그 때 그시절의 진의 모습은 세월의 아성 속에 조금 빛 바래고 희석돼 버렸다. 아직 까지도 자존심과 최고 실력자로서의 당당함은 유지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의 노년에 대해 날카롭게 직시하고 있는 그녀.


결국 진은 전 남편인 테너 레지와 그의 절친 베이스 윌프, 그리고 알토 씨시와 함께 4중주의 일원이 되어 무대에 서기로 결심한다.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소프라노 가수로 무대를 '씹어 먹었던' 진이 과연 무대 위의 조명을 다른 가수들과 잘 나눠 쓸 수 있을까?


가장 빛 났던 사람들이 또 한 번 빛 날 그 순간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 <콰르텟>. 기존에 사회가 다루었던 노년기의 서글픔과 쓸쓸함 보다는 유쾌하고 즐거운 방식으로 새로이 노년을 조명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영화다.



나이 듦, 노년의 우울


나이 든다는 것. 늙는 다는 것. 이것은 꽤 큰 상실감을 불러 일으킨다.


체력과 건강이 상실되고, 주변의 절친한 지인들을 떠나 보내고, 외모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찾아오며 사회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직업 역시 자의와 타의에 상관없이 잃어버릴 수 밖에 없다.


모든 것은 예전과는 다르다. 더 좋은쪽으로 발전한다면 긍정적이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것들이 퇴보한다.


아마 견딜 수 없는 우울감이 그들을 엄습할 것이다. 젊은 사람이 감기로 컨디션이 최악일 때, 그 정도의 에너지를 가지고 한 시간이 아닌 1년, 그리고 10년, 20년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 모든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자연스럽고 쉽기만 할까?


아니다. 개인에 따라서는 노화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며, 비애를 느끼기 까지 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항상 화가 나 있는 것 처럼 보여 주변인과의 관계도 틀어지게 된다. 몸이 아플 때 정신이 예민해 지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바로 그런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면 누가 비관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영화 <콰르텟>은 노년에 대한 다른 시각을 공유한다. 노년기라도 뭔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과정에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노년기라도 유쾌할 수 있으며, 노년기라도 사랑할 수 있다는 진보적인 시각을 말이다.


그리고 예술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고양시킬 수 있는 지 보여준다. 일상에 지치고 피로에 지친 노인들이 무언가 예술적인 취미를 갖게 된다면 그의 삶 역시 예술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예술이 노년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새로운 기능을 습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무대에서 에너지로 발산하고, 뒷 방 노인 신세가 아니라 박수 갈채를 받는 스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노인들에게 아주 큰 삶의 활력소가 된다. 살아야 하는 동기를 부여해 주기까지 한다.


무언가를 상실했다면, 또 다른 것을 채워주어야 우울감을 극복할 수 있다.


매년 멀쩡한 도로를 뜯어 제끼는 것 보다 노년의 취미 생활을 위한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더욱 생산적이다.


취미 생활을 공유하며 인간 관계를 넓힐 수 있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며 뇌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있다.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마음에 방 안에만 틀어박혀 세상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감성을 기르고 창조 활동을 하면서 또 다시 활력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 이것은 노년만을 위한 것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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