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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y 05. 2018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소아성애자를 향한 경고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롤리타>. 아마도 이 작품을 완독한 사람보다 그저 아동성애의 대명사 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롤리타 컴플렉스, 혹은 로리콤이라는 성애적 판타지로 더 많이 소비되는 희대의 문제작 <롤리타>. 서사에 집중하기에 앞서, 먼저 명심해야 할 것은 롤리타는 오히려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성범죄 사건을 다룰때면 으레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의 이름이나 신상을 특정지어 사건명으로 갖다 붙이는 그 무지하고도 불쾌한 폭력성을 소설의 제목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그나마 한가지 위안이 되는 점은 이 작품은 절대로 소수의 기괴한 성적 패티쉬를 옹호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이 작품을 통해 오히려 괴팍한 아동성애의 근절과 절멸을 종용한다.


<롤리타> 읽기


본격적으로 책읽기에 돌입하기에 앞서 한가지 더 일러둘 것이 있으니, 바로 서문을 꼭 읽으라는 것이다.

이 책의 서문은 한 박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느 날 존 레이 주니어 박사에게 한 수감자의 수기가 배송돼 오고, 박사는 그것을 읽고 깜짝 놀란다. 바로 아동을 성적대상으로 보는 페도필리아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박사는 서문에서 이 역겨운 수기를 펴내는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이상성애자의 수기를 세상에 알려 이와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지는 것을 막자는 것.

그러나 사람들은 성인 남성이 소녀와의 육체적 사랑을 즐긴다는, 싸구려 포르노에 가까운 자극적인 소재만을 기억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언어적 유희와 운율의 아름다움은 번역이라는 벽앞에 가로 막히고, 가해자 험버트 대신 피해자인 롤리타의 이름만이 책의 타이틀로 남아 독자들의 가슴에 아로 새겨지는 것이다.


첫사랑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미완의 첫사랑을 마무리 해 줄
소녀를 찾아 다니는 중년 남성의 수기


험버트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첫사랑인 애나벨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한다. 그러나 애나벨이 갑자기 죽고난 뒤, 그의 애정관은 아직 사춘기를 채 맞이하지도 못한 어린 소녀에 멈춰버리고 만다.

자연히 성인으로서 정상적인 애정 관계를 맺는데 큰 문제가 생겨버린 험버트는 결혼 생활에 수차례 실패한다. 그리고 인생의 바닥에서 자신의 첫사랑을 완벽하게 마무리해 줄 롤리타를 만나게 된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롤리타 역시 중년 남성에게 이끌리긴 하지만 성적인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해 줄 아버지로서 호감을 가진 것 뿐이다. 

그러나 롤리타에 완전히 빠져버린 험버트는 롤리타의 어머니인 샬롯에게 청혼을 하고 위장결혼을 한다. 결혼은 사실 롤리타의 옆에 머물기 위한 묘책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결국은 밟히고 만다.

롤리타를 향한 험버트의 왜곡된 애정곡선을 읽어버린 샬롯은 크게 분노하고, 험버트는 애써 변명하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샬롯이 죽어 버린다.

이제 세상엔 험버트와 롤리타만이 남았다. 여기까지가 1부의 내용이고, 책의 2부에서는 이 비정상적인 부녀의 로드 트립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취향으로 존중받을 수 없다


혹자는 미성년자를 사랑하는 것이 왜 범죄냐고 묻는다. 게다가 개인의 취향이라고 존중해 주어야한다며 한 술 더 뜨는 사람도 있다.

나는 대답한다. 미성년자는 아직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에,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어떠한 선택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언제나 옳지는 않기 때문에, 사랑 뿐만 아니라 책임이 따르는 모든 일을 결정할 때에 보호자의 승낙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이다.

미성년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윤리적 문제다.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약자를 개인의 잘못된 윤리 의식으로 그릇되게 소비하는 것은 당연히 근절되어야 할 나쁜 일인 것이다.

그러나 도덕보다 쾌락이 앞서고,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 사람들은 결국 범죄를 저지르기에 이른다. 자신의 취향 때문에 타인의 자유를 침해 하는 순간 그것은 취향의 영역에서 범죄의 영역으로 치환된다.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는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일방적인 학대일 수 있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지 일방향적인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 위한 것이라는 핑계로 남이 원하지 않는 정서를 강요하고 육체적인 행위를 시도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결국 아동성애는 대등하게 사랑을 주고 받는 것에 익숙치 못한 미숙한 성인이 무방비 상태의 약자를 향해 저지르는 학대요, 폭력인 것이다.

자신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 않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순종적으로 보이는 어린 연인을 꿈꾸는 자들을 향한 일침.

이것은 싸구려 포르노그라피로 전락해버린 <롤리타>의 이미지에 고하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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