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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Aug 29. 2018

위대한 사상들, 윌듀런트

지식 소매상의 골든북

위대한 책,
세기의 지성이 축적된 보물

윌 듀런트. 민음사에서는 그에게 지식소매상의 원조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그가 평생 공부했던 지식을 쉽게(?) 풀어 써 대중에 보급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문명 이야기>, <철학 이야기> 전집을 집필했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한 대단한 작가이자 학자라는 사실은 자명하므로 아무도 그의 타이틀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윌 듀런트는 위대한 사상가와 시인들, 교육을 위한 최고의 책 100선, 인류가 이룬 진보의 역사 및 세계사 중 가장 결정적인 것들에 대해 다룬다. 이미 모든 것을 공부한 사람이 "이것과 이것은 꼭 읽으라"며 쪽집게 강의를 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기의 지성이 축적된 보물이나 마찬가지인 <위대한 사상들>. 과연 이 책은 개인의 지성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윌 듀런트가 그린 보물지도

아무리 윌 듀런트라고 해도 세기를 아우르는 지성인, 학자, 지도자, 종교가들 중, 그리고 세계의 역사와 진보의 역사 중, 수세기 동안 출판된 책들 중 몇가지만을 선택한다는 것에 조금 부담을 느꼈나보다.


책의 서두에서 그는 기준점을 명시해 두고 있다. 바로 인류의 삶과 정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 경우에만 리스트에 넣겠다고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지식기반이 없다면, 모두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만 읽혀질 것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할 대상은 누구나가 아니라, 지성에 꾸준한 관심이 있고 더욱 똑똑해지고 싶은 특정 집단으로 좁혀진다.


윌듀런트는 지성이라는 보물이 숨겨진 곳곳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 중 가장 큰 보물들이 숨겨진 장소를 <위대한 사상들>이라는 그의 책에 지도로 그려 놓은 것이다. 지성에 목마르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보물지도처럼 보일 터. 자신의 지성이 보통 수준은 된다고 자부하는 독서가들이라면 분명 만족할 만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왜 읽어야 하는가

요새 알쓸신잡 같은 상식프로라던가,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 같은 지식 다이제스트 등 지식을 테마로한 즐길거리가 다양해 지고 있다. 이런 프로나 책들이 인기를 끈다는 것은 지성인이 되고 싶은 대중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윌 듀런트 역시 인류의 역사와 문명, 그리고 문화는 손 꼽히는 천재들의 업적이라고 추켜 세우며, 그들의 지성을 공부하여 우리 역시 follower가 아닌 creator가 되자고 말한다. 바로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천재들은 밤낮없이 연구하며 이루었던 그 업적을, 우리는 단 한 권으로 정리된 책으로 읽으며 공부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이뤄낸 업적 위에 우리의 생각을 얹으면 우리 역시 위대한 사상가들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쉬운 점과 공감점

그러나 이 좋은 책에도 아쉬운 점은 존재한다. 윌 듀런트 역시 서양인이다보니, 그의 시선이 지극히 서쪽에 머문다는 점이다. 끽해봤자 중국에 잠깐 시선을 돌렸을 뿐, 극동지역과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곳곳에 닿지는 않는다.


그리고 괴테나 하이네를 제치고 존 키츠가 위대한 시인에 포함되었다는, 즉 누군가를 뽑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변명으로 몇 문단 씩 할애(혹은 소비) 하는 등 다이제스트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난 부분도 있다.


위대한 진보를 꼽은 것에 대해서는 상당수 동의하며 가장 재밌게 읽은 챕터다. 불의 발견이 단지 빛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식생활의 변화, 그리고 문화의 변화에도 기여했다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될 수 있었다. 또한 도구의 발견은 인간에게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사한 것 뿐만 아니라, 노동으로 나뉘어지는 모든 계급을 청산시켜 주었다는 점, 도덕은 인간의 야만성을 다듬어 주었기에 인간이 짐승과의 차별점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 등 실생활과 맞닿은 지식을 얻을 수 있어 유용했다.


세계의 역사에 대해 다룬 부분에서는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되었다. 달력의 도입으로 인간의 삶과 지구의 절기가 규칙을 찾았고, 인쇄술의 도입으로 지성이 널리 퍼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 등 지금은 당연한 것들이 그 당시에는 한 문명을 휘두를 만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또한 역사는 누군가의 죽음, 싸움, 전염병 등의 사건을 써내려간 우울한 기록임과 동시에 현대의 우리에게 반면교사로 삼을 지침서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기록'의 위대함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다독 혹은 속독? 정독!

이 책의 중반부에서는 교육을 위한 책 100선을 제공하고 있지만, 사실 언급된 책들을 모두 세어 보자면 151권에 달한다. 윌 듀런트는 권당 10시간씩 잡고, 주당 7시간, 하루 1시간 독서를 기준으로하면 총 4년이 걸린다고 말한다.


미국 최고의 지성인이 권장하는 독서량은 하루 1시간, 1권 당 10일이다. 속독이나 다독을 할 필요가 없다. 언어의 형태만을 강박적으로 읽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정독을 통해 의미를 곱씹자. 하루 1권 휙 읽고 책 표지나 찍어 올리는 행태를 지양하고, 시간을 넉넉히 두고 책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독서법을 지향해야 한다. 독서는 곧 자기 만족인데 그렇게 쫓기듯 읽을 필요가 있을까?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 곧 지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책의 권 수로 자존감을 채우려 하지 말라. 독서 끝에 자신만의 언어로 한 권의 책을 정리한다는 것은 독서하는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최대의 행복 아닌가.


* 윌 듀런트의 교육책 100선에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작품은 고리오라는 영감이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잘나가던 사업가에서 쪽방 노인 신세로 전락하는 슬픈 역사를 담고있다. <문제적 주인공만 오세요 소설 심리치료실>에서는 고리오 영감이 처한 상황을 바탕으로 그의 심리를 분석해 본다. 


덧붙이기 -
"번역이라는 장벽"

언어와 인쇄술은 윌 듀런트가 꼽은 위대한 진보 중 하나이다. 생각과 말이 글로 옮겨지고, 그것이 인쇄되어 책으로 남아 후대에 전해지거나,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로 뻗어져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성이 추상적인 것으로 머물지 않고 손에 만져지는 실체, 그리고 눈에 보이는 언어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 더이상 대대손손 그들의 역사를 구전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살이 더해지고 빠지는 일 없이, 지성의 실체를 보존할 수 있게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위대한 사상들>의 텍스트를 읽으며 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반부터 끝까지 번역투가 만연했고, 자칫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는 표현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탈자가 없으니 교정이 아주 잘 되어있다는 말인데, 읽기에 부담스러운 부분이 더러 있었다것은 원문 자체가 특이하다는 소리다.

사실 영미권의 학자들이 쓴 책을 보면, 그들의 지성을 유머나 위트로 덮어 알쏭달쏭하게 보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한 인물의 역사에 대해서 말할 때도, "모차르트라는 음악가가 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여 궁정 음악가로 많은 곡을 썼다."는 식의 사실 위주가 아니라, "천재 주변에는 그의 재능을 시기하는 악한들이 있게 마련이다. 겨우 다섯 살 난 꼬마가 완벽한 클래식을 단 번에 줄줄 써내려가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 누군들 질투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아마 살리에리에 가까운 사람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특히나 내 연구실에 코흘리개가 들어와 논문을 척척 써내는 꼴을 보게된다면 말이다."라는 식의 서사적 요소를 꼭 넣는다.


(이것을 문화상대성이나 문화적 차이로도 볼 수 있을까? 한 문화권이 가지는 특수성 때문에 번역 자체가 매끄럽지 않게 읽힐 수도 있는 것일까?)


서양의 유머나 위트는 동양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유시민의 책이 사실 위주라면, 윌 듀런트의 책은 비유와 은유에 사실을 뿌린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비유와 은유라는 것은 한 문화의 생활 양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축적물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조금 어색하게 들린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심장이 콩닥콩닥 한다는 사실적인 표현을 하지만, 외국은 위속에 나비가 들어있다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한다. 그런 식의 문화차이에서 오는 어색함이 더러 있었다는 점.


물론 나 또한 번역투를 좋아하고 현학적인 글을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어렵다 싶은 구절들이 몇 가지 있었다는 점을 끝으로 조금 긴 서평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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