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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Feb 13. 2019

다자이 오사무, 사양

착한 가즈코의 나쁜 일생을 들여다 보다

일본의 몰락, <사양>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이 소설은 패전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 전 귀족 가문으로서 온갖 향락을 누렸던 한 가정이 가장을 잃고, 나라를 잃고, 희망을 잃어 가며 각각 어떤 선택에 맞딱뜨리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소설의 주인공은 어머니, 장녀 가즈코, 아들 나오지가 주축을 이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시름 시름 앓아 누운 어머니와, 짧은 결혼 생활에서 실패하고 어머니 곁에서 병수발을 드는 딸 가즈코, 그리고 군에 징집을 갔다 돌아온 아들 나오지까지. 이 셋에게서 가족간의 유대감 보다는 오히려 와해를 느끼게 된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가즈코는 어머니 곁에서 하루 종일 병수발을 들며, 혹시라도 어머니가 밤새 죽어버리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어머니의 상태에 따라 심한 감정기복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지면 열병에 시달리며 생과 사를 넘나들던 어머니의 마음 속에는 아들 나오지 뿐이다. 간만에 아들이 집에 돌아오면 열이 떨어지고 묘한 생기마저 돋아 났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가즈코는 실망감으로 괴로워 하면서도, 어쩌면 어렸을 적 뱀의 알을 태운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아프게 된 것은 아닐 지 자책하기도 하며, 못내 서운한 마음을 감춘다.


나오지는 겉돌기만 했다. 문인들과 어울리고, 출판업을 한답시고 집안의 보석들을 모두 탕진해가며 쾌락만을 쫓았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는 자신이 어려울 때 빚을 갚아주느라 고생했던 누나를 떠올리며 미안함을 느끼며, 스스로를 불량한 인간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처럼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버린 세 가족은 그 어느 하나 서로 마주보지 않은 채 절름발이 같은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가족의 구심점이 되었던 어머니 마저 돌아가시고 나자, 가즈코와 나오지는 정 반대의 길을 가며 마침내 일본의 한 귀족 가문은 전쟁의 포화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희망, 불안과 실패의 또 다른 이름

<사양>은 패배를 받아들이는 여러가지 태도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 드느냐, 혹은 기존의 폐단을 지워내고 새로이 혁명을 일구느냐. 이 두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패전국의 허울뿐인 귀족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잃고 나서, 마지막 귀족으로 고고한 삶을 살아가다 죽음을 맞이 한다. 사실 잔뜩 포장한 것이 이 정도고, 어머니는 아들 나오지에게서 '없는' 희망을 찾으려고 헛된 기대만을 품었을 뿐, 제대로 뭔가를 한 적 없다. 나오지가 예전의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 해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가즈코가 없으면 밥 조차 먹지 못하는 노쇠한 기성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오지 역시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 했다. 누나의 패물과 어머니의 보석을 탕진하며, 철 없이 사는 듯 보여도, 사실 나오지는 자신의 무능을 자각하고 있었다. 더 이상 귀족으로서의 화려하고 쉬운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귀족이 아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이른다. 그러나 가즈코는 기존의 낡은 질서에 반대되는 방식으로 새 생명을 잉태한다. 그리고 그 생명에 기대어 살기로 다짐한다.


나라와 아버지를 잃은 불안의 시대, 가족들의 연이은 실패를 지켜보면서도 가즈코는 어떻게 생명을 품을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어머니가 나오지에 기대를 걸고 하루 하루 버틴 것처럼, 가즈코 역시 희망이라는 것이 필요했던게 아니었을까.


사양은 저물어가는 태양을 그려내고 있지만, 결국 지고 나면 다시 뜨는 태양에 대한 기대 또한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장녀 가즈코의 착한 일생

가즈코는 착한 아이였다. 어머니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며 병수발을 들고, 동생의 빚을 갚기 위해 패물을 팔러다닌 것이 단초가 되어 오해를 사 이혼까지 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사업병에 걸린 동생 때문에 유품들을 처분하면서도 장녀 가즈코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힘든 내색도 없이 어머니가 아니면 나오지를 위해 모든 것을 양보했다. 어머니의 마음에 들기 위해  전전긍긍하기만 했던 착한아이 가즈코는 어떻게 혼자 살아남게 됐을까.


귀족이었을 때의 명예와 부가 사라져 버린 후에도 여전히 귀족의 기질을 지닌 어머니나 동생 나오지와는 달리, 가즈코는 과감히 사랑과 혁명을 택했다. 기성 세대들이 지양하라고 가르쳤던 사랑과 혁명이라는 것. 전후, 젊은 세대들은 그것이 신포도와 같은 거짓이었음을 깨닫고, 광적으로 사랑과 혁명에 몰입한다. 그들 중 하나가 가즈코였다.


나오지나 어머니가 추구했던 낡은 도덕, 아무리 귀족의 것이라고는 하지만 실용성 없고 사람을 급으로 나누는 천박한 그것은 피로 물든 가난한 땅에서 그 어떤 쾌락도 주지 못했다. 패전국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의 울음 소리, 망가진 세대를 다시 한 번 강대국으로 이끌어 줄 젊은 세대의 탄생 뿐이었다.


이렇게 '다시 한 번 떠오르는 태양을 창조해야만 한다'는 시대적 광기에 발맞추어 결국 가즈코는 새 생명의 탄생을 택한 것 이리라. 가즈코는 나오지에게는 없었던 것, 즉 삶에의 의지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홀로 살아남아 새로운 생명을 품게 되었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로 보여질 만큼 어머니의 사랑에 집착했던 가즈코는, 어머니의 마음에 들기 위하여 착한 일생만을 살아왔다. 그러나 자신이 삶의 기준으로 삼았던 어머니가 죽고난 뒤,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 주체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어머니의 죽음 뒤 한 인간으로서 자립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간의 착한 삶에 도전장이라도 내밀듯이, 기존의 질서에 위배되는 나쁜 방식으로 자신의 새로운 삶의 기준을 만들어 낸다. 아이가 탄생한 후 가즈코는 또 다시 '착한' 엄마로 되돌아가 버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새로운 기준을 찾기 위해 기울인 노력 자체는 주체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의 치유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남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일명 '자존감'을 기르는 것. 이미 여기 저기에서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자존감'이라는 키워드가 다소 지겹게 느껴질 지도 모르나, 분명한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고평가하지 않으면, 자신의 제대로 된 가치를 가늠하지 못한 채 저평가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나오지만을 희망으로 여겨, 실제 희망을 품고 살아남은 가즈코를 저평가해버린 어머니의 사례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말. 가즈코의 사례는 비록 비도덕적이고 몰상식하나, 이 소설에서 불륜이라는 장치는 기존의 낡은 방식(귀족적 허례 허식과 낡은 도덕)을 뒤엎어야만 패전국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상징적 의미(사랑과 혁명의 가치를 담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불륜'을 통해 자존감을 기르라는 소리가 절대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아실 듯하지만 노파심에 두어줄 더 첨가해본다. 게다가 패전 후 일본의 시대의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껄끄러움이 느껴졌다는 점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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