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랭보> 와 <말테의 수기>
'랭보'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들이 몇가지 있다. 꽃미남이자 요절한 천재 시인이었다는 화려한 타이틀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랭보 역할으로 분했던 영화 <토탈 이클립스> 등...
시 보다는 소설이 좋았던 나는, 그의 시를 읽어 본 적은 없었다. 다만 그를 나타내는 수식어들에 매력을 느껴 충동적으로 뮤지컬 <랭보>를 봤던 것, 그게 전부다.
오히려 랭보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을 보고 나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장편 소설 <말테의 수기>가 생각이나서 글을 남긴다.
랭보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뮤지컬 <랭보>
프랑스 시골에서 시인의 꿈을 키워가는 소년 랭보. 그의 친구 들라에는 신간 시집이 나오거나 주목할 만한 시인이 있으면 꼭 랭보에게 전달하는 조력자다.
랭보는 <악의 꽃>을 집필했던 시인 보들레르를 존경하며, 그의 자유로움과 천재성을 숭배하는 탓에 지극히 자유분방하고 모험적인 시를 쓴다.
자신이 쓴 시집을 여러 출판사와 시인들에게 투고해 보았지만 연락 한 통 없는 상황에 지겨워 질 때 쯤, 친구는 폴 베를렌느의 시집을 한 권 가져다 주고, 랭보는 보들레르의 시를 읽었을 때의 충격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곧바로 그에게 자신의 시와 사상을 담은 편지를 부치는 랭보는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자신을 파리로 초대해 달라는 추신을 남긴다.
한 편, 베를렌느 역시, 이단아 같은 랭보의 시에서 천재성을 느끼고, 그를 파리로 부른다. 생각보다 철 없고, 어린 랭보의 모습에 잠깐 주춤하긴 했지만, 자신의 시에 근거없는 비난 만을 퍼부어 대는 파리의 문단에 이골이 난 베를렌느는 랭보와 함께 영국으로 떠나 본격적으로 창작에만 몰두한다.
그러나 새로이 영감을 주는 뮤즈로 인한 기쁨도 잠시, 가난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친 베를렌느는 랭보와 다투는 일이 잦아지고,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 뒤 헤어지고 만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랭보와 베를렌느. 그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기에 운명처럼 서로를 다시 찾는다. 하지만 재회의 순간, 비극이 시작되고 만다. 바로 의도치 않게 베를렌느가 랭보의 왼손에 총을 쏴 버린 것.
그로 인해 베를렌느는 2년 간 수감되고, 랭보는 절필을 선언한다. 그리고 랭보는 어릴 적 쓴 소설의 배경이었던 아프리카 대륙으로 홀연히 떠나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들라에에게 한 통의 전보가 온다. 들라에는 출소 후 다시 재기하여 시인의 왕이라는 타이틀을 되찾은 베를렌느를 찾아가고, 둘은 함께 랭보가 머물렀던 아프리카로 떠난다.
랭보가 그곳에 자신의 시를 남겨 두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의 방황,
<말테의 수기>에서 해답을 찾다
한 때 랭보와 베를렌느는 심하게 다툰 적이 있다. 그 때, 베를렌느가 했던 말은 랭보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바로 랭보가 마치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같다는 말이다.
랭보 역시 시는 낭만 적인 거짓말, 혹은 위선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베를렌느에게서 그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 후, 겉잡을 수 없는 좌절과 절망에 빠지고 만다.
불행한 삶, 왜 존재하는가
천재는 선택받았고, 또 저주 받은 존재
어린 시절, 랭보는 아프리카라는 미지의 공간에서 버림받은 두 아이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적이 있다. 사실, 그 이야기는 그의 유년 시절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어린시절 자신을 버린 아버지와 자신을 자존감 유지 수단으로 이용한 어머니. 사랑을 주는 이 하나 없이 어머니가 원하는 꼭두각시 인생을 살아야 하는 어린 아이는 인정할 수 없고 이해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상상 속으로 철수한다.
상처받은 아이 랭보는 상상 속에서 황금빛 미지의 땅 '아프리카'를 떠 돌며, 온갖 모험과 성공을 만끽했다. 그리고 그 때의 상상력은 소년 랭보의 손에서 다시 시로 탄생했다.
랭보는 결국 실재하지 않는 것을 쫓았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공허함을 느꼈을 것이며, 그것을 채우기 위해 쾌락에 의존하다보니 정신과 육신이 피폐해 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일쑤였다.
More worsely
베를렌느와의 싸움은 그의 근간을 뒤 흔들어 놓았다. 바로 그를 버텨내게 했던 삶의 원동력이 결국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가 망상 따위로 전락했다는 것이 가장 무섭고 두려운 나약한 시인 랭보.
자신을 이해해준다고 믿었던 유일한 존재로부터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듣고 나서 시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삶의 목적을 모두 잃어버린 후, 랭보는 우울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랭보는 아프리카로 떠났다
결국 현실은 생존의 이야기다. 생존을 위해 펜 대신 노동을 택한 천재는 어릴적 꿈꾸었던 황금빛 공간에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우울과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유일한 천국 '아프리카' 대륙은 실상 50도가 넘는 지옥이었다.
늘상 책상머리에 앉아 시를 쓰기위해 고뇌했던 청년은 익숙치 않은 육체 노동으로 인한 만성관절염으로 지팡이를 짚어야만 했다.
그러나 랭보는 깨달았다.
생존을 위한 노동이 결국은 그의 심장을 뛰게 한다는 것, 몸은 땀으로 뒤덮였을지라도 인생의 가치와 감동이 실재함을 알려준다는 것을 말이다.
경험, 릴케의 소설에서 말한 시인의 조건
결국 시는 현실과 경험에 있다는 것
베를렌느 역시 보들레르와 같은 환상적인 시를 꿈꾸었지만, 출소 후 현실에 맞닿은 시로 다시 성공을 거두었으며, 랭보 역시 일을 하고 돈을 벌며 인생은 그 자체로 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랭보와 베를렌느가 인생을 바쳐 깨닫게 된 가치는 '시인의 자질은 감성이나 감정이 아닌, 경험에서 나온다'고 했던 시인 말테의 말과 맞닿아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뮤지컬 <랭보>를 감상한 뒤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떠올렸던 이유다.
만약 그들이 <말테의 수기>를 읽었더라면, 감옥에 갈 필요도, 관절염으로 고통받을 필요도 없이, 경험에 입각한 작품을 쓰며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그러나 불행히도 <말테의 수기>는 1910년에 발간되었고, 랭보는 그보다 20년 쯤 앞서 요절했다. 아마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랭보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말테의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말테의 수기>는 노르웨이의 고독한 시인 '오프스토펠더'의 삶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