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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n 12. 2019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당신은 다섯째 아이는 무엇입니까

벤을 향한 시선

<다섯째 아이>는 달리 챕터의 구분이 없이 책 전체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


마치 해리엇 부부가 거칠 것 없이 다섯째 아이까지 연이어 출산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완벽한 집, 완벽한 가정을 향한 꿈은 다섯째 아이인 '벤'의 탄생으로 무너져 내린다. 보통이라는 기준을 살짝 넘긴 벤을, 해리엇은 받아들일 수 없다.


해리엇은 '자기가 생각하기에' 괴물 같은 벤을 소외시키고 배척한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곳으로부터 버림받은 벤은 정 붙일 데라곤 하나 없이 겉으로만 나돈다.


<다섯째 아이>에서는 조금 다른 것을 향한 일반인들의 시선을 다룬다. 그 낯선 것, 인정하기 싫은 결점은 자신의 내부에 있을 수도 있고 외부의 가까운데 있을 수도 있다.


해리엇은 벤이 너무 무섭고 두렵다.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그런 것들에는 타인의 따가운 시선이 날아와 박히기 때문에 먼저 감추고 먼저 밀어내게 된다. 방어기제다.


그러나 그 콤플렉스가 자기 내부에 있다면? 도려내면 피가 나고, 지고 가자니 불편한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해리엇은 모두가 떠난 식탁에 앉아 과거의 영광을 되짚어 본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믿었던 그때의 영광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순간 과거가 돼 버렸다.


벤은 과연 비정상일까? 단지 해리엇이 그렇게 치부해 버린 것은 아닐까? 다운증후군인 조카 에이미는 사랑받으며 발랄하게 자라난다. 딱히 병명이 드러나지 않은 벤은 오히려 음지에서 나쁜 줄기로 썩어 들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해리엇은 벤이 비정상이라고 낙인찍어 줄 사람들을 찾아 헤맨다. 그래야 자신의 비정상적인 모성애를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대여섯 명은 낳아 현대 젊은이들과는 다른 완벽한 가정생활을 영위하겠다는 비뚤어진 우월감은 벤을 괴물로 만들었다.


아마도 계속되는 출산을 경험하며, 해리엇은 자신이 원하던 완벽한 가정이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완벽하지 못한 벤이 태어났을 때 폭발했다.


아무리 수 키로를 뛰고 배를 때려도, 힘차게 꿈틀거리는 생명을 떼어 낼 수는 없는 법. 해리엇은 빚내서 사들인 허울만 좋은 저택과 같이 자신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자신의 불행의 근거를 벤에게 돌렸다.


벤 때문에 불행한 것이지, 자신의 선택이 틀린 게 아니라며 끝까지 발버둥 친다. 하지만 자신만 불행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그 집을, 해리엇의 곁을 떠나 다들 나름대로 잘 살아간다.


결국 이상하고 불행하고 괴물 같은 것은 해리엇 자신이었다. 자신의 단점을 타인에게 투사하여 애써 지우려고 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괴물인 것이 들통나고 말았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자신만의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다섯째 아이 조차 불행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혹시 내 마음속에도 다섯째 아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남들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데 나 혼자 두려워하고 지레 겁을 먹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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