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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l 05. 2017

심리학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7 화차

나 없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기


그녀, 사라지다.


결혼을 앞둔 선영과 문호. 청첩장까지 뽑아 여기저기 다 돌려놓고 한 달 뒤의 허니문만을 꿈꾸고 있는 문호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바로 선영이 도로 한 복판에서 실종돼 버린것이다. 부랴부랴 전직 강력계 형사였던 사촌형 종근에게 연락한 문호는 선영을 찾아달라고 애원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문호가 알고 있었던 선영은 세상이 알고있는 '강선영'이라는 여자와는 많이 달랐다. '강선영'은 어머니와 단 둘이 살다가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나서 폐쇄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완벽히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던 여자였던 것이다. 글씨체, 얼굴, 성격 모두 문호가 결혼하려던 여자 선영과는 전혀 매칭되지 않는 진짜 '강선영'.



그렇다면 문호가 알고 있었던 선영은 과연 누구였단 말인가?


끈질기게 '강선영'의 역사를 쫓아가던 종근은 문호의 그녀가 '강선영'의 신분을 훔쳐 살아가던 '차경선'이라는 여자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차경선'의 삶 또한 외롭고 기구하기 그지 없었다. 아버지가 남긴 빚때문에 어머니도 잃고, 혼자된 경선을 가엽게 여겨 결혼을 서둘렀던 남편까지 궁지로 몰아넣었던 그녀. 도망치려고 해도 귀신같이 경선을 찾아 괴롭히는 사채업자들을 피해 제 2의 신분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실종자 신분이 되려면 5년간은 세상의 눈을 피해 떠돌아야 한다. 그런데 5년간 숨어지내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 차라리 경선은 아버지의 시체라도 돌아와 법적으로 빚을 청산할 수 있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러던 차에 친인척도 없이, 그렇다고 주변 인간관계 또한 북적거리지 않는 '선영'을 찾아냈고, 그녀를 죽이고 선영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평범한 여자로 살아가는 것 또한 경선에게는 사치에 불과했다. 결국은 정체가 탄로나 또 다른 제 2의 신분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같은 삶을 살게된 것.


그리고 선영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경선은 유력 용의자로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우여곡절 끝에 경선을 마주한 문호는 경찰들의 눈을 피해 경선이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죄 짓지 말고 경선으로 살아가라는 말을 남긴 채.


그러나 경선은 종근에게 발각되고 코너에 몰리게 된다. 그리고 선영도, 용의자도 아닌 차경선으로서, 마지막 선택을 내리게 된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남을 파괴해도 괜찮아.


앞서 <아메리칸 싸이코>라는 영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자신의 명함보다 질 좋고 멋있는 명함을 가져와 자랑하는 동료를 죽이고, 재미로 노숙자에게 총을 쏘고, 여자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싸이코패스의 이야기다.


그들은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이나 흥미, 재미를 위해서라면 타인의 희생 역시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사회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이다. 모든 것이 자신의 위주로 돌아간다.


경선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이 죽어도 개의치 않는다. 자신의 삶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경선이 살기 위해서는 이세상의 많은 '선영'들이 희생되어야 한다. 안될 말이다.



경선은 문호에게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라고 고백한다. 단순히 행복해지길 원해서 저질렀던 살인과 신분 도용이라는 범죄는 결국 문호 앞에서 경선이 떳떳해질 수 없는 이유가 돼 버렸다. 아버지의 빚 때문에 보통의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해 진 경선. 그 울분은 자신에게 빚을 떠맡기고 도망쳐버린 아버지가 아니라, 다른 희생양에게로 향했다.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너무도 평범한 소망은 욕심으로 전락했다.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괴물이 되어버린 차경선의 이야기, <화차>.


세상에서 자신을 지워버리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면서까지 소원했던 보통의 삶. 그것은 이제 용의자 신분이 된 경선에게는 정말로 불가능한 것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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