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이 따라오는 산책길에서

어린 왕자가 내게 말을 걸어온 시간

by 고요정


내가 사는 플로리다의 겨울은 일 년 중 가장 빛나는 계절이다.

고개를 들면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낮게 내려온 구름들이 솜사탕처럼 떠다닌다. 나는 오직 이 예쁜 하늘에 반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오후 2시, 나와 몸무게가 똑같은 내 친구 '심바'와 산책을 나선다.

심바는 걷다가 짙은 초록색 잔디가 마음에 들면 그 자리에 배를 깔고 엎드려 쉰다. 예전의 나였다면 "빨리 가자"며 줄을 당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음의 늪을 건너온 나는 이제 재촉하지 않는다. 심바가 충분히 쉴 때까지, 그 옆에 서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으니까.

그때였다. 구름 조각들 사이로 하얀 낮달이 나를 따라오고 있는 것을 본 건.

그리고 그 달빛 아래서, 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작은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줌마는 왜 낮에도 달을 보고 있어요?"

어린 왕자였다.

나는 심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글쎄, 예전엔 땅만 보고 걷느라 몰랐는데, 고개를 드니 달이 나를 따라오고 있더구나. 내 마음이 어두운 동굴일 땐 저 달이 보이지 않았어. 햇볕 아래로 걸어 나오니 비로소 저 희미한 달빛도 보이는구나."

어린 왕자는 짙은 초록 잔디 위에서 뒹구는 심바를 보며 까르르 웃었다.

"지구의 어른들은 다들 바쁘다고 하던데. 아줌마는 강아지가 쉬는 걸 기다려줄 줄 아네요? 내 장미도 기다림이 필요하거든요."

"그래, 기다림은 사랑이란다. 내가 나를 기다려주지 못해서 참 많이 아팠었지. 이제는 알 것 같아. 이렇게 멍하니 하늘을 보고, 강아지의 숨소리를 듣고, 따라오는 낮달에게 인사를 건네는 순간들이 나를 살게 한다는 걸."

플로리다의 따스한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어린 왕자는 내 곁에 서서 한참 동안 플로리다의 구름을 구경했다.

나는 이제 슬픔을 쥐어짜 글을 쓰지 않는다.

대신 심바와 함께 걷는 이 평화로운 산책길을,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낮달의 이야기를 쓴다.

내 마음의 정원에 놀러 온 어린 왕자가 맘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