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유 Apr 20. 2024

둘째 딸은 인정이 고프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받는 아이였다> (클랩북스, 2024) 중

“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일의 무의미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상을 받든 받지 못하든 별 느낌이 없습니다......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상을 받았을 때 자기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면 계속 해나갈 수 있습니다.”


영화 <도쿄타워>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은 연기파 여배우 키키 키린은 수상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우아하게 답변했다고 한다. 남의 인정을 바라지 않는 초연한 태도는 고상하고 품격 있어 보인다. 나는 늘 그런 사람을 동경해 왔다. 내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겉으론 조용해 보여도 속으론 눈에 띄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였다. 어찌나 칭찬을 좋아했던지 칭찬 한마디면 며칠 동안 밥을 안 먹어도 진짜로 배가 불렀다. 하루는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칭찬을 받은 게 너무 좋아서 책 한 귀퉁이에 몰래 ‘선생님이 나한테 ㅇㅇㅇ이라고 하셨다’라고 적어두고는 한 시간 내내 들여다보며 헤헤 웃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서 책이 휙 하고 사라졌다. “이게 뭐야. 선생님이 자기 칭찬한 걸 적어놨잖아.” 내 책을 채어간 옆자리 친구는 깔깔거리며 나를 놀려댔다. 아직도 그 장면이 기억나는 걸 보면 그 일이 꽤 창피했나 보다.


유달리 칭찬받는 걸 좋아한 건 둘째 딸이어서인지도 모른다. 오빠는 아들이라서 동생은 막내라서 귀여움을 받았다면 중간인 나는 포지션이 좀 애매했다. 어쩌다 싸워도 “오빠한테 어딜 (이기려 들어)”이라든가 “동생한테 좀 져주지”라는 말을 듣기가 일쑤였다. 설상가상 공부마저 잘하는 형제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더 설 곳이 없어졌다. 그래서 착한 딸이 되기로 했다. 엄마의 집안일을 돕고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거기에는 나름의 철저한 계산이 담겨 있었다. 머리로 안 되면 몸으로 때워서라도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하겠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사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안에는 칭찬받고 싶은 마음과 미움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한다. 어느 쪽이든 타인의 눈에 비친 내가 좋은 사람이길 바란다는 점에서 사실은 같은 뿌리다. 어려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면 어른이 된 지금은 욕먹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새내기 직장인 시절, 나는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다음 날 출근을 했다. 병원에선 아직 더 있어야 한다며 만류했지만 회사에서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나는 억지로 퇴원하고 예정된 지방 출장을 갔다. 물론 내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은 대가는 이후에 혹독하게 치렀다. 건강을 버리면서까지 얻은 건 상사의 짧은 칭찬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역시 고유는 책임감이 강해”라는 칭찬을 듣고도 칭찬 받았다는 기쁨보다 욕먹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만 들었다. 잠깐 기분은 좋았지만 이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만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내가 상사가 되면 좀 나아지려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아랫사람들에게 ‘꼰대’라고 욕먹고 싶지 않은 마음만 추가되었다. 업무 시간에 자리에서 한 시간씩 수다를 떠는 후배, 정당한 업무 지시에도 자기 일이 아니라며 거절하는 후배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한 건 내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라 미움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마땅히 조언해야 할 순간에도 욕먹는 게 두려워 망설이는 한심한 어른이 되어버렸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쓴 소리를 삼킨 순간 미워진 건, 후배가 아닌 나 자신이었다.


상담 선생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은 날, 선생님은 대답 대신 “지금 어떤 기분이냐”고 되물었다. 어떤 생각이 드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분이냐고 물으니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내 삶이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생각만 들었다. 마치 오랫동안 나 아닌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온 기분이었다.


“허탈해요. 내가 왜 남의 눈을 신경 쓰느라 내 인생을, 내 건강을 그렇게 망치고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상담 선생님은 휴지를 건네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고유 씨가 지금 느끼는 그 마음이 ‘공허감’이에요.”


남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며 사는 동안 내 안엔 늘 누군가가 들어와 살았다. 그 누군가는 부모님일 때도 있고 선생님일 때도 있고 직장 선후배일 때도 있었다. 그들에게 칭찬 받으려고 혹은 미움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동안, 내 삶에선 내가 사라져 버렸다. 내가 보는 나보다 타인이 보는 나에 집중하는 바람에 내 삶의 주도권이 타인에게 넘어가버린 것이다.


다시 내 삶을 살아가려면 남의 인정을 바라는 마음은 비워내고 나 스스로를 인정해야 했다. 그 빈자리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채워 가기로 했다. 나에게 인정받으려면 흔들림 없이 단단한 나만의 기준이 필요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기준 말이다. 세상이 어떻게 평가하든 내 기준만 만족한다면 ‘이만하면 잘 하고 있어’라고 나를 칭찬해 주는 거다. 그러면 점점 남의 인정에 초연해지지 않을까.


다행히 요즘엔 예전보다 남의 눈을 덜 신경 쓰게 되었다. 내 기준에서 잘못한 게 아니라면 회사에서 웬만큼 욕을 먹어도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 ‘오늘의 내가 좀 부족했어도 내일의 내가 더 잘할 거야’라며 속 편히 넘길 때도 있다. 무엇보다 내 가치는 회사가 아니라 내가 평가하는 것이라고 또 한 번 되새긴다. 그리고 마지막엔 꼭 나에게 이 말을 해주는 걸 잊지 않는다.


‘수고했어. 오늘도 최선을 다했어.’



*이 글은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받는 아이였다>(클랩북스, 2024)의 일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