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붓다선원 사마타 위빠사나 102차 명상 집중수행

(2024년 12월 24일~ 2025년 1월 1일)

by 고요사띠

거창 붓다선원 사마타 위빠사나 102차 집중수행

아나빠나 사띠, 들숨 날숨 명상

사마타 선정수행으로서의 마음챙김


수행이 깊어지기 위한 나의 기록으로 남겨본다.

끊임없이 반조해야 할 5가지
(A5:57 경우 경 중에서)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여자든 남자든 재가자든 출가자든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무엇이 다섯인가?

1) 나는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2) 나는 병들기 마련이고
병듦을 극복하지 못했다.

3) 나는 죽기 마련이고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4)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헤어지기 마련이다.

5) 업이 나의 주인이고,
나는 업의 상속자이며,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나의 권속이고,
업이 나의 의지처이다.
나는 내가 지은 선업과
불선업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원인과 결과

그저 바른 원인으로서 목적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길이 중요하다.

바른 원인에 대해서 숙고한다.


숨을 바라보고 도솔선방에서 거창 붓다선원 예불 독송집에서 아래의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을 읽어보았다.

미얀마 파욱에서는 사람 해부도가 명상실 한 켠 사람들이 누구나 볼 수 있는 좋은 길목에 있었는데

이러한 몸 안에서 사대요소를 바라보는 수행의 적확한 이미지를 걸어놓은 그림이 참 인상적이였었다.

그때의 이미지가 계속 중첩이 되기도 하였으며 이것은 윗 절미얀마스님과 함께 동승하여 들어갈 수 있었던 남성 수행자들이 수행하는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림은 달랐지만 이러한 몸의 요소들을 그려낸 그림의 이미지가 떠올려져 그러한 기억과 함께 읽어본 라훌라 경


<6.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아침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사왓티로 탁발을 가셨다. 라훌라 존자도 아침에 옷매무새를 가다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세존을 뒤따라갔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뒤를 돌아보시면서 라훌라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라훌라야,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물질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건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오직 물질만 그러합니까, 세존이시여?”
“라훌라야, 물질도 그러하고, 느낌. 인식. 심리 현상들. 알음알이도 그러하다.”

그러자 라훌라 존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누가 세존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고 오늘 마을로 탁발을 가겠는가?’ 그래서 그는 되돌아와서 어떤 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았다.

사리뿟따 존자는 라훌라 존자가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어떤 나무 아래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라훌라야,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아라.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실로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그러자 라훌라 존자는 해거름에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아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어떻게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실로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게 됩니까?”

“라훌라야,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고 딱딱하고 견고하고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땅의 요소라 한다.
예를 들면,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빨.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 근막. 비장. 폐. 장. 장막. 위 속의 음식. 물. 똥. 뇌와 그 외에도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고 딱딱하고 견고하고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땅의 요소라 한다.
내적인 땅의 요소든 외적인 땅의 요소든 그것은 단지 땅의 요소일 뿐이다. 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바른 통찰지로 보아 땅의 요소를 염오하고 땅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빛바래게 해야 한다.”

“라훌라야, 그러면 무엇이 물의 요소인가? 물의 요소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다. 그러면 무엇이 내적인 물의 요소인가?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물과 액체 상태로 된 것과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물의 요소라 한다. 예를 들면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지방. 눈물. 기름기. 침. 콧물. 관절액. 오줌과 그 외에도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물과 액체 상태로 된 것과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물의 요소라 한다.
내적인 물의 요소든 외적인 물의 요소든 그것은 단지 물의 요소일 뿐이다. 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바른 통찰지로 보아 물의 요소를 염오하고 물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빛바래게 해야 한다.”

“라훌라야, 그러면 무엇이 불의 요소인가? 불의 요소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다. 그러면 무엇이 내적인 불의 요소인가?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불과 뜨거운 것과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불의 요소라 한다. 예를 들면 그것 때문에 따뜻해지고 늙고 타버린다거나 그것 때문에 먹고 마시고 씹고 맛존 것이 완전히 소화된다든지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불과 뜨거운 것과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불의 요소라 한다.
내적인 불의 요소든 외적인 불의 요소든 그것은 단지 불의 요소일 뿐이다. 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바른 통찰지로 보아 불의 요소를 염오하고 불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빛바래게 해야 한다.”

“라훌라야, 그러면 무엇이 바람의 요소인가? 바람의 요소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다. 그러면 무엇이 내적인 바람의 요소인가?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바람과 바람 기운과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바람의 요소라 한다. 예를 들면 올라가는 바람, 내려가는 바람, 복부에 있는 바람, 창자에 있는 바람, 온몸에 움직이는 바람, 들숨과 날숨이다. 그 외에도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바람과 바람 기운과 업에서 생긴 것을 일러 내적인 바람의 요소라 한다.
내적인 바람의 요소든 외적인 바람의 요소든 그것은 단지 바람의 요소일 뿐이다. 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바른 통찰지로 보아 바람의 요소를 염오하고 바람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빛바래게 해야 한다.”

“라훌라야, 그러면 무엇이 허공의 요소인가? 허공의 요소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다. 그러면 무엇이 내적인 허공의 요소인가?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허공과 속하는 것과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허공의 요소라 한다.
예를 들면 귓구멍, 콧구멍, 입이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넘어가는 목구멍과,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머무는 곳,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나가는 곳이다. 그 외에도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허공과 허공에 속하는 것과 업에서 생긴 것을 일러 내적인 허공의 요소라 한다.
내적인 허공의 요소든 외적인 허공의 요소든 그것은 단지 허공의 요소일 뿐이다. 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바른 통찰지로 보아 허공의 요소를 염오하고 허공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빛바래게 해야 한다.”

“라훌라야, 땅을 닮은 수행을 닦아라. 땅을 닮는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 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 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 잡이 못할 것이다.
예를 들면 땅에 깨끗한 것을 던지기도 하고, 더러운 것을 던지기도 하고, 똥을 누기도 하고, 오줌을 누기도 하고, 침을 뱉기도 하고, 고름을 짜서 버리기도 하고, 피를 흘리기도 하지만, 땅은 그 때문에 놀라지도 않고 모욕을 당하지도 않고 넌더리치 지도 않는다.”

“라훌라야, 물을 닮은 수행을 닦아라. 물을 닮는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 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 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면 물에 깨끗한 것을 씻기도 하고, 더러운 것을 씻기도 하고, 똥을 씻기도 하고, 오줌을 씻기도 하고, 침을 씻기도 하고, 고름을 씻기도 하고, 피를 씻기도 하지만, 물은 그 때문에 놀라지도 않고 모욕을 당하지도 않고 넌더리치 지도 않는다.”

“라훌라야, 불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 불을 닮는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 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 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면 불이 깨끗한 것을 태우기도 하고, 더러운 것을 태우기도 하고, 똥을 태우기도 하고, 오줌을 태우기도 하고, 침을 태우기도 하고, 고름을 태우기도 하고, 피를 태우기도 하지만, 불은 그 때문에 놀라지도 않고 모욕을 당하지도 않고 넌더리치 지도 않는다.”

“라훌라야, 바람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 바람을 닮는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 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 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면 바람이 깨끗한 것을 불어 날리기도 하고, 더러운 것을 불어 날리기도 하고, 똥을 불어 날리기도 하고, 오줌을 불어 날리기도 하고, 침을 불어 날리기도 하고, 고름을 불어 날라기도 하고, 피를 불어 날리기도 하지만, 바람은 그 때문에 놀라지도 않고 모욕을 당하지도 않고 넌더리치 지도 않는다.”

“라훌라야, 허공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 허공을 닮는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 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 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면 허공이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는 것처럼 그와 같이 허공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자애의 수행을 닦아라. 자애의 수행을 닦으면 어떤 악의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라훌라야, 연민의 수행을 닦아라. 연민의 수행을 닦으면 어떤 잔인함이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라훌라야, 더불어 기뻐함의 수행을 닦아라. 더불어 기뻐함의 수행을 닦으면 어떤 싫어함이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라훌라야, 평온의 수행을 닦아라. 평온의 수행을 닦으면 어떤 적의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라훌라야, 부정하다고 인식하는 수행을 닦아라. 부정하다고 인식하는 수행을 닦으면 어떤 탐욕이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라훌라야, 무상을 인식하는 수행을 닦아라. 무상을 인식하는 수행을 닦으면 나라는 자만은 모두 제거될 것이다.”

“라훌라야,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아라.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거듭거듭 행하면 실로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그러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어떻게 닦고 거듭거듭 행하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게 되는가?”

“여기 비구가 숲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빈방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마음 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 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 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 고 꿰뚫어 안다. 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 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 고 꿰뚫어 안다.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 쉬리라며. 공부 짓고,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 ‘마음을 해탈에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 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 쉬리라며 공부 짓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라훌라야, 이와 같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거듭거듭 행하면 실로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이와 같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거듭거듭 행하면 마지막 들숨날숨이 소멸할 때에도 멸한다고 안다. 그것을 모른 채 멸하지 않는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였다. 라훌라 존자는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개인 인터뷰에서 스님께 나의 과거와 미래에 초점을 둔 질문을 드렸다.

나의 질문이 잘 못되었음을 깊이 반성하며 반추하며 그러면서 진경 스님께서는 인터뷰 끝에 오직 그 말 한마디를 나지막하게 들려주셨다.


“그저 숨만 바라보면 됩니다.”


다섯째 날

법문의 주제는 “수행은 왜 필요한가?”

우리는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죽음 직전의 마음이 무명과 함께 새로운 삶을 받게 된다.


윤회의 굴레는 탐진치의 소멸로서 벗어날 수 있다.

존재의 취착 하려는 우리들.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감각들을 잘 다스려야하며 팔정도에 대한 의미까지도 다시금 반추해 본다.


여섯째 날

“감각적 욕망을 버리는 것이 초선정의 시작이다.”

번뇌, 망상, 고통 이것은 고통이다.


명상을 잘 못하더라도 인과를 얻는 지혜가 발생하게 된다. 수행이 힘든 것이 아니라, 탐욕과 성냄 때문에 수행이 힘든 것이다.


업분석의 짧은 경 (맛지마 니까야 135)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셨었는데 또데야의 아들 수빠 바라문의 이야기였다. 결국 업에 관련한 내용에서도 이어진다.


“업이 나의 주인이고, 나는 업의 상속자이며,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나의 권속이고,

업이 나의 의지처이다.

나는 내가 지은 선업과

불선업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이러한 업에 관련된 이야기는 며칠이고 수행 중 스님의 법문에서도 자주 들려주셨는데, 사람마다 업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 정신적인 마음의 패턴

윤회를 부정할 수가 없다는 것.

취착했던 그 어떠한 것도 없다.

조건 따라 일어나고 조건 따라 사라지는 것.


숨으로 마음의 힘을 계발한다.

어느 날 법문 중에 진경 스님께서는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셨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이 이야기에서 왠지 모를 울컥함이 밀려왔다.

정법 시대는 부처님의 불법이 올바르게 유지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시대이며, 상법 시대는 깨닫는 이가 드문 시대이며,
말법시대는 불법이 거의 사라진 깨달음을 얻기 어려운 시대인 것이다.

불기 2587년 그 시간 동안 쇠퇴한 지금의 현재에서 내가 부처님께서도 수행하셨던 그 수행 방법으로 수행을 한다는 것. 그것의 의미를 다시금 아로새기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진경 스님이 10년이 아니라, 몇십 년 더 오래오래 부처님의 정법을 알려주셔야 하는데
진심으로 스님의 건강과 안위를 바라며 기도를 드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일곱 번째 날
저녁 법문의 내용은 <존재를 향한 갈애>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 내용에 관련된 이야기는 붓다선원에서 제작된 책 비구 레와따 스님의 <짐 진 자들>책에도 실린 내용이었는데, 쇠똥구리로 태어나도 그 안에서 그 삶에 심취한 상태로 살아가는 이야기라 그 우화스러운 내용이 생에 대한 집착, 갈애의 대한 집착등을 느끼게 해준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아주 오래 전,
‘앗사까(Assaka)’라는 왕이 까시에 있는
빠딸리 뿟따를 통치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는 첫 번째 왕비 우빨리(Uparī)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아주 매력적이고 우아하고 아름다웠고, 왕은 그녀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불행히도 그녀는 이른 나이에 죽었고,
그녀의 죽음으로 왕은 비탄에 빠졌습니다.

왕은 우빨리 왕비가 쇠똥구리로 환생했다는 말을 듣고 “믿을 수 없소!”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누구나 보일 수 있는정상적인 반응이겠지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악처가 아닌 좋은 곳에서 환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싶어 합니다.
보살이셨던 부처님께서는 그녀를 보여주어 말을 하도록 하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간절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럼 그녀에게 말을 하도록 해 주시오”

부처님께서
“똥을 굴리느라 바쁜 쇠똥구리 두 마리는 왕 앞으로 나와라”고 명령하자,
두 마리 쇠똥구리가 왕 앞으로 나왔습니다.
부처님은 쇠똥구리 한 마리를 가리키며
이것이 그대의 왕비 우빨리입니다.
방금 똥에서 나왔고
남편 쇠똥구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어떻게 마음을 챙길 것인가와 죽음의 순간에 나타나는 최후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어떤 존재로 재생할지가 결정됩니다.

사람이 죽어가는 순간에 마음이 선한 대상으로 향한다면 그 사람은 인간이나 신으로 재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죽는 순간 마음이 불선함으로 향하거나,

불선한 대상을 떠올린다면 그 사람은 사악처 중 한곳에서 재생합니다.


그러면서 앗사까 왕은 자신보다 쇠똥구리로 다시 태어난 왕비가 쇠똥구리 남편이 더 귀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죽은 왕비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이야기다.

진경스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시며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더라도 각자 자신들의 자리에서 취착하며 살아간다는 것, 이러한 우화를 통해서 존재를 향한 갈애, 한 편의 만화처럼 상상되어지는 이러한 앗사까 왕의 우화까지.


진경스님은 또 시간에 대한 일 겁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셨는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을 윤회하면 살아왔을지 나는 상상조차 어렵다.

결국 죽은 후에는 <세속적인 성취>를 가져갈 수 없다는 것. 그러면서 내가 오계를 잘 지켰는가, 그것만 체크해도 즉시 숨에 기대어 알 수가 있다는 것.

선정의 성취와 고요한 집중 그리고 지혜의 성취, 부처님의 바른 법 안에서 그것들은 성취가 가능하다는 것.


여덟 번째 수행 날 저녁 법문은,

<괴로운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


이때의 이야기는 그 방대함과 사마타 위빠사나에 대한 정말 간략하고도 핵심적인 이야기들을 전반적으로 다루어 주셨는데, 간단히 초반의 키워들 만 적어 보았다.


괴로운 느낌을 바로 주시하고 사띠, 알아차림으로 머물러야 한다. 마음을 마음으로 바로 대면해야 한다.

몸과 마음의 속성, 조건때문에 여러가지 도건에 따라 일어났다, 사라진다.

그러므로 나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은 없다. 무상하다.

조건에 압박 종속된 내 마음이라는 것은 없다.

내 몸과 내 몸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대상의 속성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사마타와 위빠사나는 결과에 대해 다르다.

아이텐티티가 없는 무아, 안과 밖의 오온을 잘못된 무지에서 조건따라 생긴 것이며 내가 아니고 무아이다.


1. 중립적 대상 마음, 숨

2. 숨은, 마음에서 발생하는 물질

3. 숨은, 몸을 살짝 벗어나 있다.

마음이 마음을 제압한다. 번뇌의 마음을 제압한다.

숨을 안다는 것은 몸을 안다는 것이다.


“선정의 반석 위에서 지혜의 칼을 갈아라.”



매일 저녁 예불 후의 발원문과 공덕회향

<발원>

붓다, 담마, 상가에 예경하고 귀의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 수행하여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에서
벗어나기를 발원합니다.

5온을 몸, 마음, 무상, 고, 무아, 부정으로 보아
자만, 갈애, 사견 버리기를 발원합니다.

언제나 깨어있음으로 탐,진,치에서 벗어나
만족, 자애, 지혜, 깊어지기를 발원합니다.

마음, 몸, 입으로 지은
저의 모든 선한 공덕 모여
생멸하는 연기법 보기를 발원합니다.

모든 존재들이 그들이 지은 선업의 힘으로
슬픔이 없는 열반에 이르기를 발원합니다.

붓다께서 보이신 바른 법이
이 땅에 오래 머물기를 발원합니다.
<공덕회향>

갈애, 생에 대한 집착, 사견, 무지 등의
번뇌로 물든 모든 존재들에게
오늘 하루 수행하고 계를 지키며,
보시하고 법문을 설하고 들은
저의 이 공덕을 공평히 나누어 드립니다.

이 공덕이 탐, 진, 치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선정과 열반에
이르는 원인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

마지막 수행 날 아침은, 자애수행으로

집중수행의 마지막을 마무리한다.


나도 모르게 진경스님의 목소리를 듣는데 갑자기 소름이 돋듯이 감사함이 밀려온다.

내 자신에게도 이 몸을 빌려 온 내 자신에게도 자애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탐진치로 인한 성냄을 마주했던 이들에게도 자애를 보내며 마무리 짓는다.



돌아가는 길,

진경스님께서 차 한잔 하고 가라시며 찻잔을 내주셨다. 이미 손님이 오신 자리였다. 진경스님과 중학교 동창분께서도 오셔서 산 하나 건너오셨다면서 진경스님과 담소를 나누고 계신 자리였다.

짧게라도 처음 뵈었던 보살님과 진경스님과

또 다른 수행자와 끝 맛이 향긋했던 허브티까지.


못 뵙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다행이도 삼배도 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길을 나서다가 혜주스님을 뵙고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얼굴 보니 좋다시며, 보이지 않으셨던 다른 스님들의 근황 이야기도. 나는 더 자주 인사드려야 겠다는 마음을 담고 나설 수 있었다.


사실 집중수행이 쉬운 건 아니라 이 짧은 기간에도 몇 번이고 힘든 순간들이 오지만 그럼에도 편안한 수행공간에서 맛 좋은 건강한 음식과 날씨는 시리게 찼어도 그 배려의 마음들, 선한 기운, 수승한 법과 그 법을 이어가고 있는 스님들. 결국 끝은 이다지도 가벼이 감사한 마음으로 늘 돌아가곤 한다.

그것이 벌써 십년.

그저 나는 늘 감사할 뿐 이다. ​


<거창 붓다선원 102차 집중수행 발원문은,>

수행이 깊어지기를,

진경스님이 늘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법문을 설하여 주시기를,

모든 거창 붓다선원 스님들이 건강하시기를,



집으로 돌아와

일어난 참사에 마음이 먹먹했다. 눈물이 났다.

나도 모르게 그 순간의 죽음에 대해 떠올려졌다.

감득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순간의 공포에 대한 것은


십년 전, 10일 명상 집중수행 마지막 날이

2014년 4월 16이었다.

고속버스 안 전원구조란 말을 듣고

핸드폰을 반납하고 숨과 사투를 벌였던 10일동안


10일 후 모두가 핸드폰을 켜자마자 한탄했다.

함께 명상했던 이들의 탄식소리가

우리들의 첫 소리였다.

그 때의 그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데…….

또 다시 이러한 참사에 마음이 서글퍼져,

그저 오온의 무더기지만

그럼에도 깊은 마음으로 애도하며.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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