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존재감이 주는 행동의 당위성
회사에서 메신저 챗봇이나 자동화 툴을 통해 "마감 기한이 하루 남았습니다." 혹은 "SLA가 3일 남았습니다."와 같은 알림을 반복해서 받아도 (나를 포함해) 사람들은 점점 그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직접 "혹시 이거 오늘까지 가능하실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내면, "아,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라고 응답이 오고, 일이 처리 됐던 경우가 다반사였다.
표면적으로는 동일한 '마감 기한 임박'이라는 내용을 담은 텍스트인데, 반응과 결과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면서, 항상 궁금했던 부분이다.
사회적 존재 이론(Soical Presence Theroy)에서 답을 조금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 이론에 의하면 상대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느낄수록 우리는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한다고 한다.
AI나 챗봇은 실제 존재하긴 하지만, 사람과 같은 존재"감"은 현저히 떨어진다.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이름을 붙이고, 사람과 비슷한 말투까지 흉내 내도록 하지만- 그것이 기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상대방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다소 편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즉, 우리에겐 덜 미안하고, 덜 급한 존재가 된다.
기계가 보낸 메시지는 그냥 읽고 넘기는 정보지만, 사람의 메시지는 정보+존재를 동반한다.
그래서 똑같은 텍스트여도 발신자의 존재감에 따라 '상대방이 피해 입지 않게 해야겠다.' 혹은 '다음에 또 협업하려면 지금 잘해드려야지'와 같은 심리가 붙고, 자연스럽게 행동의 당위성으로 연결된다.
한 논문에 의하면, 사람들이 AI 도구에 저항감을 느끼는 다섯 가지 심리적 요인이 있다고 한다.
1) 불투명성(opacity): 무엇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알 수 없다는 불안
2) 무감정성(emotionlessness): 감정이 없다는 느낌
3) 경직성(rigidity): 적절히 유연하지 못한 태도
4) 자율성(autonomy): 내가 아닌 기계가 결정한다는 위협감
5) 집단 소속감(group membership): ‘우리’ 안에 속하지 않는 존재라는 거리감
최근 AI 에이전트가 나오면서 많이 개선되어 AI 도구에 대한 수용도가 (논문이 나왔던 2023년보다) 많이 증가했지만, 그럼에도 이 중 2번과 5번은 조직 내에서 AI나 단순 자동화 툴이 존재감을 주지 못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많은 조직이 효율을 위해 자동화를 도입하지만, 관계와 감정이 빠진 시스템은 생각만큼 사람을 움직이게 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조직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일하는 공간이다.
그러기에 업무나 협업 과정에서 행동의 당위성을 만들어내는 미묘한 존재와 감성의 틈새는 아직까지 AI나 자동화 툴로 채우기 힘들다.
자동화툴로 효율성은 최대로 끌어올리되 사람만이 줄 수 있는 무게를 알아차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개입하는 조직. 기계의 몫과 사람의 몫을 명확하게 분별하는 조직. 그런 조직이 결국 일도, 관계도 잘 풀어가는 조직이 아닐까 싶다.
번외로, 이 글을 작성하며 많은 기업들이 "백투오피스(코로나 때 재택근무를 제공하다 다시 사무실로 출근하여 대면 근무를 하도록 하는 정책)"를 실천하게 된 배경을 좀 더 이해하게 됐다.
실제 얼굴을 보고 말하며 함께 일하는 것만큼 서로의 존재감을 충분히 제공해 주는 업무 환경은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회사에 출근하면, 하물며 화장실을 가다가도 '아, 맞다. 저분이 요청하신 그거 해드려야지.' 하게 되니깐 말이다.
*참고 자료
- Psychological factors underlying attitudes toward AI tools
- https://www.sciencedirect.com/topics/computer-science/social-presence-the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