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겨울철 눈이 잘 안 보는 것 같다. 이번 겨울에 들어서고 나서도 습관처럼 보던 뉴스의 일기예보에는 몇 번인가 눈소식을 알렸었다. 그렇지만 겨울의 허리가 꺾인 2월의 초입에도 눈을 본 기억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된다더니 오르는 기온 덕에 사라져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집을 나설 때 피부에 와닿는 냉기는 지구온난화 소식이 무색할 만큼 냉랭해서 언제 눈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이다. 또 운전을 할 때면 눈앞을 뿌옇게 만드는 염화칼슘의 흔적들이 눈이 다녀갔음을 말해준다.
눈의 행방이 궁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눈을 좋아하거나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그냥 너무 추운 날씨에 ‘눈도 안 오는데 날씨가 이렇게 춥다고?‘ 하는 궁금증에 실없는 생각을 조금 해봤을 뿐이다. 어렸을 적을 생각해 보면, 여느 아이들처럼 눈을 참 좋아했었다. 겨울이 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면 눈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밤새 눈이 와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면 동생들과 밖에 나가 손 시린 줄도 모르고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겠다면 눈을 굴리고,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이글루를 만들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시절보다 나이를 조금 많이 먹은 지금 나에게 눈은 하얀 불청객 그 이사 그 이하도 아니다. 예전에는 설렘과 재미를 주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불편하며 귀찮은 것이 되어버렸다. 운전을 시작한 이후로 더욱 그렇다. 길은 미끄럽고, 차는 막히고, 사고도 많이 난다. 하늘에서 내리기만 하면 하여간 민폐 덩어리이다. 어린 시절 소중하게 기다리던 마음이 민망할 만큼 이렇게 무용한 것으로 변해버렸다. 사람은 처한 상황이나 위치에 따라서 이렇게 간사하게 세상을 바라본다.
결국 눈은 사라진 게 아니라 어른이 된 내가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맞는 표현 같다. 어느 순간부터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안 보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일일이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마주하고 사는 것은 피로도가 따르기에 나름 필요한 생존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대가로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그것의 가치를 뒤집어엎으며 살아간다.
내일 새벽 폭설을 예보하는 재난문자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린다. ‘내일은 눈이 많이 오겠구나.’ 생각한다. 역시나 전과 같은 설렘은 없다. 출근길에 대한 걱정이 마음을 스쳐 지나갈 뿐이다. 과거를 추억해도 다시 소중한 마음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눈과 같이 소중했던 무언가가 계속해서 눈 녹듯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될 것 같다. 한 겨울만큼이나 시린 일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가끔 쓸어 내며 추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