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급 상황 시 아이 먼저 구해주세요. 혈액형은..
퇴근길 신호대기 중. 앞차의 검은 뒷유리에 흰 글씨가 반짝인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정보전달 목적의 글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의 목숨보다 아이를 더 소중히 지키려는 부모의 마음이 녹아든 글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에게 아이가 생긴다는 일은 그들의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가 인생에 자리 잡는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떨까? 부모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큰 의미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특히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이제 두 돌을 바라보는 조카가 말문이 조금 트여 하루 종일 떠들고 다니는데,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엄마 아빠이다. 밥을 먹을 때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도, 잠투정을 부릴 때도 끊임없이 말한다. 이제 내 무릎 언저리 정도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녀석이 엄마 아빠로 가득 차있다. 어른이 된 우리는 친구, 직장동료, 선후배 등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많지만, 우리와 달리 아이들에게 존재하는 세상은 오직 부모 하나뿐이다.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다. 아이가 생기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고 사정이 생기는지 알 수 없다. 그나마 두 해 전에 여동생이 조카를 낳고 어깨너머 보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에 와닿는 것들이 있다. 내가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조카를 보고 있으면 이 작은 생명이 너무 이쁘고 소중하다. 주위 지인들이 왜 다들 조카바보가 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태어난 지 몇 개월 안 됐을 때는 행여나 내가 잘못 만져 생체기가 날까 걱정되어 볼 한번 쓰다듬기도 어려웠다. 그때보다는 조금 큰 지금은 얼마나 먹성이 좋은 지 저녁을 배불리 먹어 배가 빵빵해도 후식으로 자기 주먹만 한 딸기 하나를 손에 쥐고 먹으며 놓지 않는다.
외삼촌인 내가 봐도 이렇게 좋은데, 부모인 여동생과 매제가 볼 때는 얼마나 더 소중할까. 막 튼튼하진 않아도 크게 아픈 곳 없던 동생 부부가 조카를 돌보며 허리에 협착이 오고 어깨뼈에 금이갔다. 그래도 아픈 내색 없이 아이를 돌본다. 이런 노고를 아는지 조카는 세상에서 가장 선한 웃음으로 자기의 하나뿐인 세상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그리고 여동생 부부도 아이게 미소로 답한다. 이런 모습을 보니 이미 서로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와 아이들은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통해 우리 주위에 있던 이 작은 세상들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부모의 학대로 세상을 떠났다. 또 20개월 된 아이는 친모의 방임으로 인한 영양실조로 눈을 감았다. 이 세상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아이들의 하나뿐인 세상이 존재해서는 안 될 악몽이 되었다. 태어난 지 4개월 엄마 아빠의 얼굴만 봐도 좋아해야 할 아기가 부모를 보면 운다. 유일하게 울지 않는 시간은 부모가 자리를 비운 시간. 아기는 자신이 볼 수 없는 곳으로 내팽개쳐진 모빌 옆에서 자기 손을 신기하게 보면서 놀 때뿐이다. 20개월 먹어도 먹어도 배고플 때인 아이는 영양실조가 걸릴 때 먹지 못하고 배고픔에 손가락이 헐 때까지 빨았다. 있을 수 없는 일에 내가 봐오고 생각했던 부모와 아이의 모습은 송두리 채 뽑혔고, 가슴 안쪽이 쓰라려 선인장을 삼켜 버린 기분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머리가 너무 아팠다. 내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하나뿐인 세상에게 배신당한 이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다녀갔을지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그저 무겁고 미안한 마음에 맥없이 눈물만 흐른다. 다만 추운 겨울의 끝자락에 하얗게 피었다가 금세 지는 매화처럼 다녀간 아이들이, 지금 있을 그곳에서는 아픔도 배고픔도 없기를,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세상에서 좋은 순간 한 번쯤은 있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