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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Mar 14. 2023

6번 칸 단상

이수. 아트나인. 6번 칸.

모스크바에서 무르만스크로 암각화를 보러 열차에 몸을 실은 핀란드 유학생 라우라. 고고학을 공부한다고 하지만 어떤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암각화를 왜 보러 가냐는 요하의 물음에 라우라는 이리나의 파티에서 만난 다른 이의 말을 반복할 뿐이다. 이리나에 대한 라우라의 마음은 이리나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그 자체 뿐이다. 라우라가 느끼는 것은 총체적인 불안이자 외로움이다. 무르만스크라는 목적지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열차처럼 라우라는 삶에서 목적도, 의미도, 이상도 느끼지 못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삶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답답함, 외로움, 불안을 느낄 뿐이다.

그런 라우라에게 요하는 돌발적인 무뢰한이다. 술에 잔뜩 취한 채 러시아는 위대한 나라라느니. 무르만스크로 몸을 팔러 가냐느니. 아무렇게나 답하는 라우라의 답변에 핀란드어는 단순하다느니. 우연히 같은 침대칸에 만났을 뿐인데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듯하는 걸 보아 서툴면서도 감정적이기까지 하다. 그의 무례한 돌발성은 라우라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명확하게 인지, 인식되는 인간이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삶의 여정에서 요하는 라우라에게 인연이라는 삶의 이정표로 다가온다. 어디로 향해 갈지 모르는 삶에서 유일하게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이정표는 찰나지만 바로 옆을 지나가는 인연이다. 삶이여, 하이스타 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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