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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Mar 15. 2023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 단상

동백. CGV.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

솔직히 이제 마블은 관성으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엔드게임 이후 마블은 10년의 공든 탑 위로 뭔가에 쫓기듯 지나치게 급하게 쌓고 있다. 그 때문에 10년 공든 탑이 정말 무너지려고 하고 있으며 10년을 함께 한 관객으로서 탑이 무너지는 걸 차마 볼 수 없어 보고 있는 느낌이다. 퀀텀매니아도 페이즈5에 대한 기대감 보다 또 나왔구나 하면서 봤다. 완전 거의 끝물에 봤다. 수많은 비판을 이미 목도한 뒤라 기대감도 사실 없었다.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엔드게임 이후 마블도 관객도 서로에게 안 맞는 기준을 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를 축으로 이어진 인피니티 사가와 페이즈 4 이후 시작된 멀티버스 사가는 이어진 서사인가 아닌가? 이 두 사가는 정말 이어진 서사가 맞는가? 이어져 있으면서도 이어져 있지 않은 서사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시리즈 소설로 따지면 인피니티 사가와 멀티버스 사가는 세계관만 공유할 뿐 전혀 다른 시리즈이다. 둘 사이는 세계관을 제외하면 연결되는 것이 없다. 여기서 마블과 관객은 동상이몽에 빠진 듯하다. 그것이 지금 마블과 관객 모두가 직면한 문제일 듯하다.

제작자인 마블의 입장에서 두 사가는 당연히 이어지는 서사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며 이전 이야기 없는 이후 이후 이야기도 없다. 문제는 마블이 봤을 때 이전 이야기의 큰 축, 즉 관객을 서사에 이입할 수 있게 한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라는 두 축이 엔드게임으로 은퇴했다. 여기서 마블은 한 가지 착각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가 없는 자신들의 이야기에 대중은 관심을 덜 갖게 될 것이라고.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의 이야기가 여전히 화려하고 볼거리가 넘치며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그것이 엔드게임 이후 몰아치듯 나온 페이즈4의 영화들이 아닐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관객에게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는 정말 중요한 큰 축이다. 이 둘이 없는데 MCU를 무슨 재미로 보냐고 하는 이들도 분명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열광한 것은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라는, 단 두 히어로의 이미지인가? 아니면 두 히어로의 이미지에 빌런 타노스의 이미지, 함께 맞서는 히어로들의 이미지 등이 중첩되면서 견고하게 쌓이고 구체적으로 올올이 풀어지는 이야기인가? 차근차근 쌓이는 이야기 속에서 살아숨쉬는 히어로들에게 열광한 것이다. 즉, 우리는 10년이라는 세월동안 견고하게 착실히 쌓이고 구체적으로 짜여진 이야기에 열광했다.

반대로 말하면 관객들도 분명 비판받아야 한다. 소비자인 관객은 인피니티 사가와 멀티버스 사가를 은연 중에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다. 은연 중에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심정적으로 이게 당연하다. 10년을 함께 하면서 가장 크게 와닿은 히어로는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이다. 둘이 없는 서사에 심정적으로 당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페이즈 4부터 나온 마블의 영화가 방향성을 상실했으며 그로 인해 매력없는 서사를 일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멀티버스라는 겉치레 세계관만 키울 뿐 서사 자체는 어디를 향해서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모르니까.

하지만 최근의 마블에 대한 비판이 정말 정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디즈니 합병, PC 논란 등을 생각해보면 영화 외적인 상황으로 영화를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서사 내적으로 어떻게 연출되고 그것이 서사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영화 외적 상황을 가지고 영화를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황 비판일 뿐이다. 전체 서사에서 일부의 영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연출이 의미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서사와 관련해 보강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오히려 마블을 억지로 비판하는 것이 트렌드이자 밈이 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나는 마블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패기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에 들어 한 세계관에 이렇게 많은 영웅들을 살아숨쉬게 한 서사는 마블이 유일하지 않은가? 경쟁업체와 비교해 이미 저멀리 앞서 나가고 있으며 다른 영화들과도 명확한 차별점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급할까? 퀀텀매니아 이후부터는 이전처럼 제작 속도를 늦추고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고 했으니 더 믿어보련다. 관객들도 조금은 더 여유있게 기다려보자. 어쨌든 이렇게 매력적인 세계관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인생의 재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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