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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Mar 31. 2023

라이스보이 슬립스 단상

건대. 롯데시네마. 라이스보이 슬립스.

<미나리>와 마찬가지로 한국인 교포의 삶을 다루고 있으되 한국과 가족에 더 강하게 방점을 찍고 있는 듯하다. 8, 90년대 한국, 그 당시 아직 한국 시골에 남아있던 공동체 의식, 한(恨)에 대해서 감독이 많은 부분 고찰한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교포임에도 불구하고 한과 가족 사이 관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동현과 단 둘이 낯선 캐나다에서 억척스럽게 살아남은 소영이 남편의 가족을 만나기로 결심하고 돌아가기까지 과정은 한의 감정에 기반해 있다.

이러한 한을 감독은 쌀이라는 식재료로 가장 먼저 보여주기 시작한다. 요즘은 쌀 소비가 줄었다고 하지만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처럼 쌀과 밥은 한국인의 정체성에서 빠질 수 없다. 이질적인 정체성이기에 캐나다라는 백인 중심 사회에서는 정 맞기 십상이다. 나아가 쌀은 소영과 동현이 서로를 끌어당기게 하면서도 반대로 서로를 밀어내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동현의 입장에서 쌀은 세대가 다른 동현에게 어머니인 소영과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만들어주지만 자신도 잘 모르는 자신의 이질적인 정체성으로 드러내 캐나다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게 한다. 소영의 입장에서 쌀은 유일하게 동현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지만 동현과 자신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둘 사이 모순적인 관계가 더 치열해질수록 한의 감정이 쌓인다. 그리고 둘 사이 쌓인 한은 결국 그들의 정체성이 있는 곳 한국 즉, 가족으로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런 소영을 맞이하는 할머니의 분노와 할아버지의 회한은 소영의 한과 공명하며 더 큰 한으로 요동친다. 여기서 한의 모순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듯하다. 한은 원망, 억울함, 슬픔 등의 감정과 가까운 듯하지만 동시에 가족이란 요소와 만나면 정(情)이 된다. 가족이기에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할머니의 분노와 슬픔은 가족이기에 밥이라도 한 끼 먹고 가라는 할아버지의 회한과 환대와 다르게 보이지만 일치한다. 같은 식탁에 앉아 밥도 안 먹겠다고 하더니 소영이 떠다준 물을 마시거나 동현과 소영이 떠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는데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는 할머니. 아들이 왜 자살했는지 모르기에 그 탓을 며느리인 소영에게 돌리면서도 소영의 탓이 아님을 알고 있다. 할머니라는 인물의 행동을 보건대 개인적으로 감독이 한국의 전통적 가족 문화에 내재된 한과 정이 서로 통함을 이해하고 있다고 사료된다.

영화에서 좋았던 또 다른 지점은 화질이다. 8, 90년대 TV 화질을 떠올리게 하는 뿌연 듯, 지직거리는 듯한 스크린의 화질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 회한, 분노, 환희 등이 뒤섞인 것처럼 느껴진다.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은 잊고 싶으면서도 기억하고 있기에 지금의 '나'가 있을 수 있다. 세상은 계속해서 강해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지금의 '나'가 쓰러지더라도 견디어 일어서고 다시 버틸 수 있는 것은 뿌옇고 희미하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뿌리이자 정체성. 감독은 한의 감정을 경유해 한국으로 와 가족에서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도달하는 듯하다.

P.S. 아역 배우 황도현 님의 연기가 정말 빛난다. 다른 배우 분들의 연기도 빛이 나지만 황도현 님의 연기는 나이를 생각해봤을  때 대견하다는 것을 넘어 미래가 기대되기에 더욱 빛이 난다. 그리고 할머니를 맡으신 배우 이용녀 님도 역시 빛난다. 이보다 더 할머니라는 인물을 잘 이해시킬 수 있는 배우가 있나 싶다. 아마 몸에서부터 나오는 그 특유의 힘이 한의 정서와 잘 맞으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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