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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Apr 03. 2023

이니셰린의 밴시 단상

신촌. CGV. 이니셰린의 밴시.

깊이감과 가벼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면서 관계를 고찰하게 하는 영화이다. 서로 너무 달라 어떻게 친해졌는지 알 수 없는 파우릭과 콜름의 우정은 헛웃음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진다. 크게 보면 영원과 다정이라는 두 축으로 구분할 수 있는 두 인물은 너무나 다른 만큼 서로에게 멀어지는 와중에 가까워지고 있다. 멀어지려고 할수록 오히려 가까워지기에 둘은 웃지 못할 일까지 벌이는데 파우릭의 말처럼 애정 싸움 같아 보인다. 그렇기에 둘의 우정은 결국 안타까운 와중에도 입술을 깨물게 만드는 웃음을 유발한다.

인생의 말년에 영원과 삶의 의미를 꿈꾸며 사색과 예술에 빠지려는 콜름은 무식하고 지루한 파우릭에게 쓰는 시간마저도 아깝다고 생각해 절교를 선택한다. 하지만 절교하는 과정에서 파우릭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고 파우릭을 뮤즈로서 생각하며 이니셰린의 밴시를 작곡하기도 한다. 외로움과 우울함을 모른다고 말하는 파우릭은 실상 가축 몰거나 항구 잡화점으로 우유 배달 가는 일 빼고는 할 일이 없을 정도로 외롭고 우울한 한량이다. 그런 그에게 콜름은 유일한 친구이자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기에 그는 멍청할 정도로 우직하게 콜름만 쫓아다닌다.

둘이 멀어지는 와중에 계속 가까워지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장면은 술 취한 파우릭이 콜름에게 하소연 하는 장면일 것이다. 정착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정도로 무식한 파우릭은 콜름에게 영원 같은 것에 신경쓰지 말고 다정해지라고 말한다. 콜름은 다정은 그저 순간에 지나지 않고 예술은 영원히 기억된다고 답하며 파우릭을 멀리한다. 이 때 파우릭의 말은 화려한 미사여구나 다정에 대한 학문적 고찰과 근거가 아닌, 거칠게 말하면 그저 "다정하게 대해줘!"로 들리는 투박한 말 뿐이다. 콜름은 오히려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예로 들며 예술에 대한 지식으로 영원과 삶의 의미가 순간의 다정함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며 파우릭을 다독인다.

재밌는 것은 이 장면에서 투박하게 자신이 가족들의 다정함을 기억하듯 다정함이란 결국 영원하고 그 자체로 의미 있다는 파우릭이 콜름보다 더 영원에 닿아 있다는 것이다. 18세기 사람인 모차르트를 17세기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한 줌의 지식과 영원과 의미에 빠져 있어 보이고 싶은 콜름은 오히려 순간에 닿아 있다. 너무 오래 우정을 나눈 둘은 멀어지려고 하지만 실상은 계속 가까워져 닮아가고 있다. 서로가 너무 미워져 손가락을 다 잘라 피가 철철 흘러도. 그 손가락에 목이 걸려  죽은 당나귀 제니를 위해 집에 불을 질러도. 마지막에는 서로의 다정함에 기댈 뿐이다. 개 돌봐줘서 고마워. 언제든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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