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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May 04. 2023

토리와 로키타 단상

용산. CGV. 토리와 로키타.

영화가 끝났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가장 차갑고 잔인한 두 발의 총성. 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총탄이지만 동시에 그 당위가 소리를 타고 스크린을 찢고 나와 영화와 현실을 뒤섞는다. 차디찬 땅에 밀쳐진 상태에서 부지불식간에 가슴을 부수는 서늘함. 죽음을 느끼는 순간 그 인식의 흐름마저도 깨뜨리는 두 번째 서늘함. 분명 눈앞에 펼쳐진 것은 현실로 느껴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영화라고 인식된다. 인지부조화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과 그에 따른 자책의 감정이 응어리가 져 풀리지 않는다.


나이가 많다 하여 죽음을 쉬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나 로키타의 죽음 앞에서 영악하다고 할 정도로 똑똑한 토리는 무기력하다. 피보다 더 진한 유대로 엮인 남매애는 로키타의 죽음으로 자신이 외톨이가 되었음을 인지하게 한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토리가 그 외톨이의 깊이를 미처 깨닫지는 못한 듯하다. 차갑게 식은 로키타의 시신이 누워있는 관을 바라보며 로키타가 불러준 자장가를 살아있는 토리가 부른다. 담담하다면 담담한 그 목소리는 마지막 소절과 함께 검은 화면으로 사라진다. 스크린의 이야기는 스크린을 넘어 현실을 찢어발긴다. 우리가 외면하던 현실을 채워넣으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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