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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May 19. 2023

정직 부동산 단상

도라마코리아. 정직 부동산

코로나 3회 차여도 여전히 격리 기간은 익숙하지 않다. 요즘 같은 때가 아니었다면 1주일 간 방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을 게다. 그런 고로 그동안 미뤄둔 일본 드라마를 마무리 하고 있다. 미뤄둔 드라마나 보고 있을 때는 아닌데... 하하...어쨌든 그 두 번째 드라마, <정직 부동산>. 마음 편하게 보기에 적당한 코미디 드라마이다. 일본 부동산 중계업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도 있기도 하고.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지점이 몇 개 있다. 이 지점은 콘텐츠에 대한 관객의 최근 경향성만이 아니라 이런 경향성이 업계에 미치는 악영향까지 보여주는 듯해 입맛이 쓰다.

최근 나온 일본 드라마는 거의가 10화 단일 시즌으로 끝났다. 한 화 당 대체로 50분 내외. 짧은 드라마는 30분 내외이다. 최소 약 300 분에서 최대 500분 정도. <정직 부동산>도 한 화 당 약 45분 정도로 총 약 450분 정도 분량이다. 한국 드라마가 한 화 당 약 60분 정도를 소요하는 것과 비교해 일본 드라마는 굉장히 짧은 편이다. 약 60분 정도를 소요하는 드라마가 없는 것은 아니나한국과 비교하면 그 수가 일본은 더 적은 듯하다. 문제는 아마 한국도 곧 일본처럼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이것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알 수 없으나 개인적으로는 안 좋은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생각한다.

드라마의 길이가 짧아지는 것은 제작자와 수용자 모두에게 문제이다. 드라마 한 시즌의 길이는 관객이 드라마를 버틸 수 있는 길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백 몇 부작의 대하드라마도 성행했지만 이제는 10화를 보는 것도 힘들다. 봐야 할 콘텐츠, 즉 정보량이 넘쳐나는 만큼 어느 하나를 선택해 소비하는 시간은 손해와 이익 중 하나가 된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했더니 지금 이 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뒤틀리고 기묘한 상황이 된다. 수용자 입장에서는 즐기는 것에 긴 시간이 걸리는 콘텐츠를 향유하는 것이 꺼려지는 이유이다.

제작자도 비슷하다. 콘텐츠가 범람한다는 것은 곧 한정적인 전체 자본이 성장하는 것보다 소비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의미이다. 하나의 대작을 제작하는 것에 들일 수 있는 자본은 한정적인데다가 필요한 만큼 가져올 수 있는지도 미지수이다. 비효율이다. 게다가 수용자도 대작을 보는 것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분량을 짧게 가져갈 수 있는 소재나 장르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안전하다. 미식, 여행, 연애 등. 로코, 사내코미디, 일상 등. 세계관을 크게 키울 필요도 없고 그래서 콘텐츠 내용의 무게감도 가볍다.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업계 입장에서 효율은 모험보다 안전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다.

<정직 부동산>은 이런 기이한 콘텐츠 업계의 상황을 보여주는 드라마 같다. 한국의 <정직한 후보>를 떠오르게 하는 정직 컨셉은 드라마의 코미디에 쉽게 안착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굳이 그 컨셉을 세서하게 짜맞추지는 않았다. 대체 부동산 중계 중 어느 순간에 나가세 사이치가 정직하게 말하는지 파악할 수 없다. 한 장면의 재미나 아름다운 결말을 위한 마지막 멋 한 발을 위해 쓰인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건 코미디 드라마니까. 가볍게 보고 넘어가는 드라마니까.

드라마의 내용도 용두사미이다. 이는 10화라는 전체 분량이 발목을 잡은 모양새이다. 10화만에 끝낼 수 없는 이야기를 약 450분의 10화로 만들어 생긴 일이다.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것은 '정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부동산 중계업에서 거짓말은 이미 업계에서 필수불가결이다. 상품의 좋은 점은 부풀리고 불리한 내용 혹은 안 좋은 점은 숨기며 혹시라도 밝혀지면 책임이 아니라고 모르쇠 하거나 혹은 다른 말로 현혹하는 업계. 그런 업계에서 정직은 대체 무엇인가? 드라마는 정직을 하나의 집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있기에 그 한 사람의 인생이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듯하다.

에피소드식으로 나가세 사이치의 중계 사건만 다뤄도 주제를 살리기에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빌런을 한 명 등장시킨다. 미네르바 부동산의 사장 이카루가. 근데 이 빌런의 목표는 사이치의 사장이다. 표면적으로는 사이치와 갈등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갈등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이치의 목표의 고급 맨션 입주를 방해하느냐면... 음... 사이치 본인의 목표가 후반부에서 바뀌는 듯하다. 고급 맨션에 입주하고 싶은 것은 여전하나 안 되면 말고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새로 갖게 된 목표가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에서 말하는 정직이 무엇인지 파악해도 감동적이지 않다. 하긴 감동적일 필요는 없다. 이 드라마는 킬링 타임용 코미디이니까.

나아가 빌런인 이카루가 사장이 등판 부동산의 사장을 증오하는 이유는 뒤틀린 증오인지라 좀더 천천히 풀어줘야 했다. 하지만 증오의 내용이 밝혀진 시기가 9화이고 심지어 이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10화에서 이상하게 봉합한 채 끝난다. 봉합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인 나가세 사이치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으며 그저 "정직 사이코!"하며 끝난다. 그럼에도 상관없다. 이 드라마는 킬링 타임용 코미디이니까.

결론은 작년부터 지금까지 본 몇 편의 일본 드라마는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에 가벼운 소재로 제작되었다. 이것이 일본 콘텐츠 제작업계 전체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고 더 심화될 것이다. 수용자가 긴 드라마를 견디지 못할 것이고 제작자도 수용자의 요구와 자원의 한계로 잘 짜인 드라마를 만드는 것에 부담을 느낄 것이다. 인기 있는 몇몇 드라마만 계속 시즌을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종국에는...? <썸머 필름을 타고!>의 미래가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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