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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May 25. 2023

사슴의 왕 단상

잠실. 롯데시네마. 사슴의 왕.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한 줄 평 : 과거의 이미지를 복제할 뿐 아무것도 발전하지 못한


지브리의 <모노노케 히메>와 너티독의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이미지가 엿보이되 아무런 발전 없이 복제만 한 영화이다. 영화의 이미지는 <모노노케 히메>를 많이 참고한 듯하다. 예를 들면 주인공 반이 타고 다니는 뮤이카는 <모노노케 히메>의 아시타카가 타고 다닌 영양 야쿠르를, 전염병 미차르를 퍼뜨리는 들개는 들개신 일족인 모로 일족을, 미차르가 퍼지는 불길한 어둠의 물결은 목을 잃고 분노해 여러 생명들을 앗아가는 시시가미의 불길한 물결과 비슷하다. 단편적인 이미지들만이 아니라 제작진이 지브리 출신으로 영화의 전반적인 이미지 틀에서 지브리의 색채가 강하다. 삶과 죽음, 운명, 자연과 인간 등 세계관을 형성하는 소재들이 비슷해 <모노노케 히메>를 많이 참고한 듯하다.

여기에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이하, <라.오.어>처럼 서사 구조는 세계를 위기에서 구할지도 모를, 혈연도 아닌 소녀를 구하는 아버지의 서사를 띄고 있다. 강대한 츠오르 제국으로부터 조국 아카바 왕국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섰다가 조국과 가족 모두를 잃고 소금 광산의 노예가 돠 외뿔단의 전사 반은 <라.오.어>의 조엘을, 소금 광산에서 들개에게 물리면서 미차르의 비밀을 품게 된 소녀 유나는 엘리를 떠오르게 한다. 영화는 가족을 잃어 절망한 채 살던 반이 유나를 통해 구원 받으면서 선택의 순간에 세계 보다 유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두 텍스트가 떠오름에도 <사슴의 왕>은 완성도 면에서 너무나 아쉽다. 반과 유나 사이의 관계 형성, 홋사르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의 관계와 그에 따른 갈등의 크기, 그러한 갈등이 펼쳐지는 세계에 대한 묘사와 연출 등. 아주 약간의 설명과 보여줌만 가득한 조야한 작화 속에서 이미지들만 소모된다. 인물들은 감정과 행동이 단편적이라 인식은 해도 공감을 할 수는 없으며 단편적이어도 거대한 감정은 너무나 미미한 세계관 구축 속에서 헛되이 스러질 뿐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종말의 구축이 지나치게 허술하다. 작중 종말 상황은 치료법을 알 수 없는 전염병 미차르와 츠오르 인과 아카바 인 사이의 갈등이다. 이중 영화는 후자를 더 큰 종말로 여긴다. 코로나 시기 코로나보다 더 끔찍했던 것은 계급, 젠더, 인종, 국가 등의 다양한 요인들의 교차 중 드러난 차별과 혐오의 민낯이다. 즉, <사슴의 왕>은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이 세계가 정말 종말에 처해 있는지는 모르겠다.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자연을 배경 속에서 서로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인간은 너무나 미미하다. 낙차가 거의 없는 두 이미지 속에서 종말이 성립되지 않기에 반과 유나의 관계도 깊이감 없이 그저 상징적인 아버지와 딸의 관계 이미지를 부유한다.

부유하고 흩날리는 이미지 속에서 모든 갈등이 끝난 뒤의 세계를 보여주는 에필로그는 이쁘기만 할 뿐 감정적인 동력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렇기에 산꼭대기에서 유나의 사슴 피리 소리를 듣고 등장하는 늙은 뮤이카의 모습은 외로운 고아함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 외로운 고아함을 억지로 드러내려는 인위적 당위로 느껴진다. 이를 끝으로 영화의 이면을 부유하고 흩날리는 <모노노케 히메>와 <라.오.어>의 이미지는 완전히 바스라져 사라진다. 이미지를 차용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것이 이 영화의 종말이라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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