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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May 27. 2023

그 여름 단상

코엑스. 메가박스. 그 여름.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싱그러운 여름의 날개로 다가온 너(3.5)


저편에 아스라히 남아있는 누군가의 기억이 마침내 지금 하나의 날개짓이 된 영화이다. 동명의 단편 소설을 1시간 분량으로 영화화한 것으로 알았는데 찾아보니 7화 분량으로 애니화한 다음 7화 애니메이션을 다시 영화화한 듯하다. 즉, 소설-애니메이션-영화로 연결되는 것인데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해 확실하지는 않으나 영화만 봐서는 소설의 영화화 보다는 영화의 소설화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그만큼 영화가 소설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경과 수이 사이의 관계를 영상으로 보고 있으나 글로 마주하는 기분. 압축적인 영상이 만연한 글로 느껴지는 만큼 이경과 수이의 관계가 깊이 있게 느껴지고 공감된다.

영화와 소설의 사이에서 이경과 수이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관계로 더욱 공감이 간다. 첫째,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한 여성과 여성의 사랑임에도 큰 틀의 서사는 정상성에 기반한 사랑과 다르지 않다는 것. 인위적 정상성의 사회에서도 사랑은 자연스럽게 발현한다. 이경과 수이의 첫 만남, 연애의 시작, 두근두근한 스킨십, 미래에 대한 불안 등. 둘의 관계는 정상성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 어떻게 왜 좋아졌는지는 불명확하면서도 확실하게 기억나는 상대의 파편. 서로의 차이와 오랜 평안함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 관계의 끝. 성별과 무관하게 들어서, 직접 경험해서 흔히들 알고 있는 사랑의 모습이 있다.

둘째, 그럼에도 둘의 사랑은 이질적이고 퀴어한 것으로 인식되어 배척받고 그로 인해 숨겨야 하며 그에 따라 고통스럽다는 것. 100쌍의 사랑이 있다면 최소 100개의 고민이 있는 법이다. 그런 가운데 이경과 수이의 사랑은 남들에게 쉬이 보일 수 있거나 고민을 토로할 수도 없는 사랑이다. 그렇기에 가능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스스로 이겨내려는 수이와 같이 고민하고 얘기하며 고난을 이겨내고 싶은 이경 사이 차이는 여느 연인의 고민과 비슷하면서도 고통의 깊이는 더욱 크다. 세상에 쉬이 보일 수 없고 더 좁은 세상에서 사랑을 찾아야 하는 이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함을 단숨에 안 이들이기에 둘의 고통은 더 깊이 느껴진다.

이렇듯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둘의 사랑이기에 이별하고 한참 후의 여름에 왜가리를 보며 수이를 떠올리는 이경의 모습은 잔잔하게 감동을 준다. 고등학교의 어느 여름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사랑하기 시작한 당신. 그런 당신과 사랑을 시작하기 전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하나의 시공간만은 분명하게 기억난다. 강가에 보이는 새를 가리키며 무슨 새인지 아냐고 물었을 때 수줍게 왜가리라고 답하고 미소 짓던 당신. 여름이 되어 왜가리를 볼 때면 계속 당신이 기억날테지. 저 멀리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을 이가 분명하게 미소 짓고 있을 것이라는 결말이 아름답다. 나도 저 새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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