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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May 29. 2023

그 해 우리는 단상

넷플릭스. 그 해 우리는.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강요로 일관된 갬성 이미지들

<그 해 우리는>은 이쁜 갬성을 한가득 채운 이미지로 가득한 드라마이다. 다만 그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무슨 말로 엮이는지는 알 수 없다. 김다미와 최우식. 두 배우는 싱그럽다. 교복을 입고 있던. 캐주얼한 옷을 입고 있던. 어떤 나이 혹은 어떤 시절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는 데도 싱그러운 젊음의 에너지가 있다. 그 둘의 주변을 채우는 수원 화성의 행궁, 서울 종로 일대 등의 한국 풍경은 갬성을 자극한다. 굳이 표현하자면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분위기와 비슷한 느낌이다. 풍경만이 아니라 이 둘과 관계를 맺는 다른 인물들도 모두 정겹게 느껴지는 면면이 있다. 무해한 힐링 드라마라는 포지션에 걸맞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무해한 힐링 드라마라. 무해하다는 표현이 드라마에 적합한지 모르겠다. 드라마는 무해할 수 없다. 무해해서도 안 된다. 어떻게 감정과 감정, 인연과 인연이 부딪히는 드라마가 무해할 수 있을까. 무해하기 위해서는 유해해야 한다. 드러나는 유해를 인물들이 으쌰으쌰 하며 하나가 되어 무해로 만들 때 무해할 수 있다. 막장을 말함이 아니다. 각각의 인물들이 서사 속 감정과 인연을 통해 인물이 아닌 인간이 될 때 무해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인간이 아닌 인물들만 가득할 때 그 드라마는 무슨 말인지도 모를 이미지를 강요하게 된다.

<그 해 우리는>의 개별 장면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이쁘다'.정말 이쁘다. 하지만 장면 내부의 인물들은 정말 물(物)이다. 힐링과 갬성이 넘치는 장면을 찍는 동안 인물들이 어떤 감정에서 어떤 관계를 맺어 어떤 사건을 겪고 어떤 변화를 하는지 알 수 없거나 너무 늦게 보인다. 이쁜 갬성에 혹할 수 있으나 갬성과 인물이 합일되지 않는 이상 그저 이쁜, 순간의 장면일 뿐이다. 서사 내부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갈등의 요소들이 활용되지 않거나 잊힌 채 지나가니 인물들도 깊이감이 쌓이지 않는 채 단편적인 이미지로 흘러간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지웅과 엄마의 관계일 것이다. 이 드라마는 지웅과 엄마의 관계를 굉장히 단편적으로 봉합해버린다. 이는 지웅의 엄마를 보여주며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인 정보를 말로만 전달하며 설명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웅의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그가 어떻게 지웅을 낳게 되었는지, 지웅의 애비라는 인간은 뭐하는 말종인지, 지웅은 자신의 부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자신의 엄마가 웅의 부모님과 달리 혹은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과 달리 매일 어딘가로 일하러 가고 돌아왔을 때는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만 안다.

여기서 지웅은 그냥 엄마를 미워하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미워할 수 있고 어찌보면 당연하다. 지웅의 말처럼 자신은 약한 어린애였고 그래서 엄마를 필요로 했으며 그 순간에 엄마는 자신을 매몰차게 밀어냈으니까. 하지만 지웅의 엄마가 마냥 지웅을 버려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지웅을 키우기 위해 돈을 벌었던 것으로 보이며 일하러 갈 때 일정 정도의 돈을 남기고 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보인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지웅의 엄마에 대한 묘사나 재현이 굉장히 단편적이라는 것이다. 우린 지웅과 지웅의 엄마가 어떤 과거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웅의 엄마가 지웅을 차갑게 대하고 밀어내는 것은 과할 정도로 명확하게 보인다. 여기서 생기는 지웅과 엄마의 관계에 대한 의문은 드라마의 끝자락에서 짧은 눈물의 화해와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대충 봉합된다. 관객을 이해시키기 위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 이런 부모-자식 관계 있잖아요. 뭔지 알죠? 이런 느낌으로 화해하는 거 뭔지 알죠?'하며 강요한다. 그놈의 느낌.

인물과 사건 모두에서 <그 해 우리는>은 자신이 가진 장점이나 요소를 활용하지 못한다. 이는 서사 외적인 즉, 제작 과정의 문제라고 짐작하고 제발 그랬길 바랄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큰 드라마 자체의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만큼 대본과 연출에서 당면한 문제를 서사 내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니까. 게다가 왜인지 모르게 자신이 활용하는 소재에 대해서도 다방면으로, 구체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느낌이다. 그저 서사 내부에서 인물로 남은 배우들의 연기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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