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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Jun 01. 2023

엘리멘탈 단상

용산. CGV. 엘리멘탈.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흐름과 멈춤을 조화롭게

이미 알고 있는 줄 알았던 이야기도 픽사의 연출이 함께라면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로미오와 줄리엣>를 비롯해 어느 지역에서건 서로 만나서는 안 될 두 사람의 이야기는 존재해왔고 수많은 로맨스 혹은 로맨틱 코미디로 변주되어 왔다. 그런 닳고 닳은 이야기를 여전히 현재를 되돌아보게 하는 유효한 이야기로 변주하는 픽사의 제작진이 감사할 뿐이다. 특히 계급, 인종, 이민 혹은 난민 등의 소재를 두 원소의 사랑과 버무리면서 서사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처음 인상에 남은 것은 파이어 타운과 그 주민들의 생활상이다. 이민 온 이들이 처음 겪는 차별과 혐오를 짧지만 명확하게 보여주면서 그들이 한 곳에 자신들만의 주거지를 형성하는 과정까지 자연스럽다. 차이나타운 혹은 코리아타운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 와중에 엠버의 부모님인 버니와 신더가 시작한 사업은 편의점이다. 순간 넷플릭스의 <김씨네 편의점>이 겹쳐진다. 원소들의 사회지만 먼저 이주해 정착한 물, 바람, 흙과 완전히 분리된 듯하면서도 그 경계가 모호한 불의 모습은 자신들끼리 뭉치는 와중에 원두민들과도 계속 연결되어 있는 현실의 이민자 사회를 떠오르게 한다.

다음으로 인상 깊은 것은 이 영화의 파이어타운이 단순히 코리아타운, 즉 한국의 문화만이 아니라 중국, 남미, 인도 등 다양한 문화 요소를 혼재했다는 점이다. 한국 이민자 2세인 피터 손 감독으로부터 시작했기에 불의 모습은 큰 틀에서는 한국의 문화가 생각난다. 하지만 불의 문화에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향, 남미의 정렬적인 축제, 샤머니즘과 같은 주술적 요소 등이 다양하게 혼재되고 쌓여 있다. 이를 통해 파이어타운은 단순히 현실의 한국 이민 사회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주류 사회로부터 밀려난 비주류 사회의 총체가 된다.

마지막으로 인상에 남은 것은 피터 손 감독을 비롯해 수많은 제작진의 개인 경험이 서사에 잘 녹아든 점이다. 이 영화는 피터 손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면서도 어떤 이유로 고국을 떠나 외국으로 갈 수밖에 없던 이민자들 모두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그저 꽃을 보러 왔을 뿐인 버니와 엠버를 향해 다른 곳에 가서 불태우라고 고성을 지르는 다른 원소들. 엘리멘트 시티에서 태어나고 자란 엠버에게 엘리멘트 시티의 언어를 잘한다고 어디서 배웠냐고 묻는 웨이드의 가족들. 반드시 꼭 불과 결혼하라고 말하며 죽는 할머니. 필연적으로 내부에서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외부에서는 차별과 혐오에 맞서야 하는 현실의 이민자가 담겨 있다.

현실의 차별과 혐오가 반영되어 모든 게 그대로 이어질 것 같은 엘리멘트 시티가 이 서로 만나서는 안 된다고, 만날 수 없다고 여겨진 엠버와 웨이드의 사랑으로 변화를 겪고 결국 서로를 받아들이고 뒤섞이게 되는 모습은 뻔하지만 뻔한 만큼 지극히 감동적이다. 아는 맛은 아는 맛이기에 무서운 것이 아니다.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색다른 매력이 계속 발견될 수 있기에 지극히 즐겁게 무섭다. 누군가는 픽사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보수적인 가족주의로 안정을 꾀한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개인이 하나의 가족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만큼 파격과 진보를 담고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어쩌면 픽사는 지금의 시대에 가장 파격적인 안정, 안정적인 파격을 시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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