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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Jul 04. 2023

여름날 우리 단상

광교. CGV. 여름날 우리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사라져버린 대만 감성을 찾습니다(1.0)


개인적으로 정말 기대를 많이 한 중화권 로맨스 영화였으나 현실은 끔찍한 글로벌 혼종인 영화이다. 2017년 개봉한 배우 김영광, 박보영 주연의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한 <여름날 우리>는 중화권 로맨스 영화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2015년에 개봉한 <나의 소녀시대>나 2017년에 개봉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와 비교하면 저 멀리 후퇴한 모습이다. <너의 결혼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와중에 몇몇 요소를 미국스럽게 재포장하면서 도달한 결과이지 않나 싶다.

원작인 <너의 결혼식>은 두 사람이 하는 사랑이 한 사람의 관점에 의해서만 재단된다는 단점이 있다. 집착과 같은 감정이 로맨틱한 사랑으로 둔갑되는 것이다. 둔갑된다는 사실 혹은 그러한 과정이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선남선녀 커플을 등장시키는 것일 게다. 외적으로 수려한 외모를 지닌 선남선녀 커플은 관객을 자신들에게 집중시켜 예쁜 사랑만 했으면 싶게 만든다. 크리피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은 후경화되거나 아예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여름날 우리>도 이와 똑같은 방법을 활용한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건은 확실하다. 허광한 배우는 한국에서 입에 오르내린 중화권 로맨스물의 남배우 계보를 충실히 잇는 듯하다. 악동같은 이미지가 있으면서도 시원한 웃음과 잔잔한 미소가 공존하는 여리여리한 형태의 얼굴을 가져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미남상. 그런 외모로 한 여자만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하니.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90, 00년을 풍미한 중화권 로맨스의 이미지, 색채 등이 모두 미국풍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중화권 로맨스물의 계절감은 파스텔톤을 지닌 여름이라고 생각한다. 쨍한 햇빛을 받았으나 어딘가 바랜 듯한 원색. 이것은 아열대 기후에 가까운 지리적 위치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회상이라는 소재가 만나면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등을 떠올려보자.

하지만 <여름날의 우리>는 <너의 결혼식>을 거의 그대로 쫓아가면서 회상이 되지 못한다. <너의 결혼식>의 서사는 한 남자의 회상으로 진행되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회상이 아니라 과거를 현재화하기에 관객과 서사가 동시간에 존재한다. 이를 <여름날의 우리>는 허광안의 나레이션으로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나레이션으로는 동시간으로 흐르는 서사를 다시 과거화해 회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에 역부족이었던 듯하다.

또한 <여름날의 우리>는 대만의 캠퍼스가 아니라 미국의 캠퍼스를 보여주고 현대화된 도시를 배경으로 한 남녀의 사랑을 다룬다. 학교를 대표하는 축구 선수와 그런 축구 선수와 사귀는 치어리더라니. 미국만의 이미지는 아니나 너무나 많은 미국 영화에서 보인 미국의 이미지 아닌가. 캠퍼스 만이 아니라 서사도 거의 너무나 세련되게 현대화된 도시에서 진행된다. 도시에서 서사가 진행되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현실의 시간과 영화의 시간이 동일하게 흐르는 듯한 감각은 회상의 감각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든다.

한국의 영화를 리메이크해 미국의 탈을 덧씌운 중화권 로맨스 영화. <여름날 우리>는 중화권 로맨스 영화라는 이름을 내걸었을 뿐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중화권 로맨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어떤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도 있었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한 때를 파스텔 톤의 핑크빛으로 물들여준 소녀시대 같은 장르물이었는데... 어쩌면 이제는 "안녕, 나의 로맨스물"이라 말하며 작별을 고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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