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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Jul 07. 2023

디어 마이 러브 단상

용산. CGV. 디어 마이 러브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가족 갈등이라 읽히는 로맨스라는 글귀


황혼 로맨스와 가족 갈등 해소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은 아쉬운 영화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원래는 가족 갈등 해소가 더 주여야 하는 영화인데 황혼 로맨스가 앞서 버린 영화이다. 영화에는 크게 두 줄기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에게 인정 받고 싶어하는 딸 그레이스의 서사와 황혼의 나이에 애니와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은 아버지 하워드의 서사이다. 이 두 서사는 어떤 시점에서 만나 하나로 합쳐져야 했던 듯한데 영화에서 두 서사는 만날 듯 안 만날 듯하다 끝끝내 만나지 않고 끝난다. 특히 가족 갈등 해소 서사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부랴부랴 끝나는 듯하다.

영화는 시작부터 가족 갈등 해소 서사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자신이 제대로 존중받으며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여성들이 모인 상담에 참가한 그레이스가 자신이 상담에 참가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영화는 딸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키며 시작하며 이 궁금증은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야 밝혀진다. 아버지 하워드로부터 자신이 온당히 받아야 하는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에서 생긴 인정 욕구가 상담에 참가한 동기인 것이다. 문제는 딸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영화가 동기까지는 밝혀지되 밝혀진 동기를 해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레이스의 동기가 해소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하워드와 그레이스 모두 아내 혹은 엄마의 죽음을 직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영화에서 아내 혹은 엄마의 문제는 몇 번 언급만 될 뿐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채 사라져있다. 하워드는 아내의 죽음에 그레이스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장이라 집에 거의 없던 그의 몫까지 다해 그레이스가 아내를 돌봤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레이스가 자신의 죄의식을 자극하기 때문에 그레이스를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레이스는 학교도 거의 포기할 정도로 엄마를 돌봤다는 사실을 하워드가 알아주지는 않고 엄마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좌절스럽다. 그 좌절의 반대 급부로 자신의 사랑을 인정받고 싶다고 생각한 듯하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영화는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듯하다. 하워드와 애니의 황혼 연애를 그레이스가 훼방놓고 있음에도 하워드와 그레이스의 관계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그레이스는 그레이스대로 하워드에게 인정받고 진정으로 사랑받기 위해서 혹은 엄마의 죽음이 네 책임이 아니다, 내가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라는 사과를 듣고 싶어서 하워드에게 집착한다. 하워드는 그레이스를 향한 모순된 감정은 잊으려 하고 오로지 애니와의 사랑에만 집중하려 한다. 누구도 자신들 사이에 있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영화의 톤과 흐름이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황혼 로맨스와 뒤틀린 집념에 따른 가족 갈등이 엎치락뒤치락하다 하워드의 죽음으로 모든 감정과 갈등을 뭉개버린다.

이 영화는 황혼 로맨스도 가족 갈등 해소도  아니다. 둘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다. 그레이스에게 사과하지도 그렇다고 그레이스를 계속 미워하지도 못하는 하워드와 같다. 이렇게 보니 영화가 자기 스스로를 죽이면서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종을 지켜준 애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뒤에 후련하다는 듯 고향집을 정리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을 보면 이렇게까지 왜 집착했나 싶기도 하다. 그저 다 흘러가는 것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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