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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Jul 10. 2023

가부키초의 탐정 마리코 단상

부천. 한국만화박물관. 가부키초의 탐정 마리코.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 저변의 허무(1.5)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 가 총 3편의 영화를 봤다. 그 중 첫 영화인 <가부키초의 탐정 마리코>는 오늘 본 영화 중 가장 별로인 영화를 달성했다.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좋은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일본 상업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특유의 병맛과 일본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어딘가 축 처진 듯 고독한 가을 감성을 좋아한다면 즐길 만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장르 영화보다는 흔한 드라마류의, 즉 장르를 재단하기 어려운 평범한 상업 영화인 것이다.

옴니버스 에피소드에 가까운 서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 때문에 장르를 본격적인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로 재단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기본 서사는 가부키초에서 스낵바를 운영하면서 탐정도 겸하는 마리코가 외계인을 데리고 도망친 연구원을 뒤쫓는 이야기인데 영화는 기본 서사에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마리코의 주변 인물의 이야기에 집중해 출구가 없는 듯한 나락 인생에서 인물들 각각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조명한다.

재밌는 건 영화에서 조명하는 인물 개개인의 서사를 모아놓고 보면 마치 영화 전체가 흔히 버블 경제 이후 갈피를 못 잡은 채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여기는 일본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한 때는 도쿄 땅을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고공행진의 연속이던 일본은 버블 경제 이후 극심한 경기 침체에 빠진다. 이러한 극심한 경기 침체로 사토리, 유토리 등 새로운 젊은 세대가 등장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미래만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불안으로 가득한 가운데 대체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기약없는 희망을 품고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기약없는 희망이 나쁜 것은 아니다. 삶을 지속하는 원동력이니까. 하지만 이 기약없는 희망을 서사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영화의 서사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식으로 진행되어서 문제이다. 옴니버스 에피소드 방식으로 주변 인물들 각각의 "어떻게든 되겠지"를 풀어내는 동안 마리코의 수사도 진행 중이긴 하다. 문제는 마리코의 수사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마리코의 과거가 수사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본격 추리물은 아니니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서사까지 "어떻게든 되겠지"하며 나아가니 허탈하기도 하다.

영화 각각의 옴니버스 에피소드 중에는 나름 충격적이거나 뭉클해지는 에피소드도 있다. 하지만 그 에피소드까지 가는 과정이 지루해 에피소드에서 느낄 수 있는 충격이나 뭉클함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B.I.F.A.N.의 모토인 "이상해도 괜찮아"를 떠올려보면 이 영화의 이상함도 나름 괜찮을지도... 다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이상함을 더 적절하면서도 유쾌하게 보여줄 수도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그래... 어쩌면 이 또한 어떻게 되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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