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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Jul 15. 2023

위커맨 단상

부천. 한국만화박물관. 위커맨.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문명이건 야만이건 그저 믿음일 뿐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본 3편의 영화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영화이자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싶은 영화이다. 제목부터 시작해 이 영화는 단순 장르 영화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지점이 있다. 오히려 영국을 배경으로 한 종교학과 신화학 다큐멘터리 혹은 논문을 영화화했다고 봐야 할 정도로 고증이 잘 되어 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학문의 관점에서 기독교와 원시 종교를 비교하며 믿음에서조차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것을 비판하는 다큐멘터리 혹은 논문 같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영화의 탈을 쓴 논문 다큐멘터리이다!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할 점은 첫 장면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눠주는 성경 구절을 읽는 하위 경위가 끝 장면에서는 원시 신앙의 신들에게 번제물로 바쳐진다는 점이다. 굉장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근대 종교라 하는 기독교조차도 예수의 피와 살을 먹는 예식을 거쳐 세상이 끝날 때에 하느님의 나라에서 부활하는 것을 약속 받지 않는다. 서머아일에서 산제물을 넣은 위커맨을 불태워 신에게 바치는 행위는 다음 해에 풍년이 들기를 약속 받는 행위이다. 그것이 기독교의 성체성사와 어떻게 다른가? 믿음에 있어서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믿음에 있어서 합리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를 느끼게 한다.

하위가 서머아일의 주민들과 자신을 구분하면서 주민들을 교화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도 재미있다. 어둠이 짙게 내린 밤 처녀의 방에 씨앗을 뿌리는 남자를 보내거나 마을의 공터에 주민들이 모여 성교를 한다거나 여관 주인의 딸이 노골적으로 하위를 유혹해 방으로 들이려 한다거나 등. 하위가 보기에 서머아일의 원시신앙은 다음 해 풍년을 기원한다는 마음을 이용해 인간의 욕망을 자제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야만의 종교이다. 그렇다고 하위의 종교인 기독교는 완벽하게 합리적인가? 예수의 살과 피를 빵과 포도주로 바꿔 진행하는 성체성사나 그 빵과 포도주를 먹으며 죽음 이후의 부활을 믿는 종교관도 마찬가지로 합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믿음은 그저 믿음일 따름이다.

다큐멘터리니 논문이니 하는 말을 했지만 사실 <위커맨>은 추리 미스터리 장르의 문법에 굉장히 충실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약간의 변주로 반전까지 성공하는 영화이다. 탐정 역할을 맡은 하위의 관점을 지나치게 믿거나 이입하지 마라. 하위의 관점은 오늘날의 우리가 느끼기에 익숙해서 편안한 관점이기에 쉽게 믿기고 이입하게 된다. 하위의 관점에 이입하는 과정과 하위의 관점을 의심하는 과정 사이에서 계속 싸우며 영화를 볼 때 오히려 영화가 더 재밌어지는 경험을 하지 않을까 싶다.

P.S. 고 크리스토퍼 리 경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광기와 합리가 동시에 느껴진달까. 소름이 돋으면서도 계속해서 믿음이 간다. 배우가 아닌 사이비 교주가 되셨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엄청나지 않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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