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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Jul 17. 2023

애스터로이드 시티 단상

광화문. 에무시네마. 애스터로이드 시티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예측불허의 시대에도 사랑만은 남아있다(3.5)

처음 에무시네마에 방문해 본 첫 영화이자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으로 전작인 '현재'라는 순간이 의미를 가질 때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영화인 듯하다. 같이 본 소중한 사람과 얘기하며 동의한 지점이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미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이건 웨스 앤더슨 감독 영화네!" 할 수 있을 정도로 웨스 앤더슨은 자기 자신만의 형식을 계속해서 고수하고 있다. 사실상 이제는 믿고 보는 웨스 앤더슨이라는 장르에 어떤 내용을 담느냐를 기대하며 보게 된다. 그런 웨스 앤더슨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재는 '현재'라는 순간이며 주제 의식은 "현재의 의미를 어떻게 만드느냐?"인 듯하다.

연극을 제작하는 제작진의 이야기와 무대 위에서 현실화된 연극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미소 냉전의 시대이자 미소 우주 경쟁의 시대인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대는 시대적 목표가 명약관화한 시기이다. 항상 상대편보다 모든 것이 우월하기만 하면 되는 시기. 재밌는 것은 이렇게 목표가 명약관화한 것이 시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연극이라는 서사 장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연극은 하나의 주제에 기반해 제작진 각자가 제각기의 소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외부의 연극과 내부의 시기가 모두 저멀리 있는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간다는 것은 미래를 향함이다. 아직 오지 않은 때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목표가 명확할 때 아무 의심이 없을 때에서야 가능하다. 미래를 향한 이동은 앞을 가로막는다고 해서 즉, 반대 방향을 막는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나아가는 방향 안에서부터 무너져야 한다. 목표 자체를 흐릿하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혼란스럽게 해야 한다. 그렇기에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미지의 외계인은 연극 속 인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 혼란스러움은 연극 외부로까지 이어져 자기 연기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배우로 드러난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게 맞아요?"

확신이 사라지면서 목표는 혼란스러워져 어찌할 바를 알 수 없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어 자포자기한 상태가 된다. 현재라는 순간이 무의미해진다. 그런 순간에 인간이 현재에 다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미래 혹은 과거에 목표를 두기 때문이 아니다. 현재를 빛으로 가득 채우는 사랑이 있기에 현재는 다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하는 그 누군가는 미래와 과거 모두를 잊고 오로지 현재에만 집중하게 한다. '어떻게 하면 지금의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의 현재는 찰나와 같지만 순간을 영원하게 만드는 사랑으로 의미가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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