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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Jul 18. 2023

씨네마 천국 단상

광화문. 에무시네마. 씨네마 천국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시간은 변할지라도 우리의 시간은 변하지 않으리

에무시네마에서 본 두 번째 영화이자 첫 관람을 영화관에서 해 다행인 영화이며 영화보다 같은 시간을 공유한 이들의 우정을 다룬 영화이다. '왜 당신은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혹은 '왜 당신은 영화를 사랑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많이 언급되는 영화일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어린 살바토레가 영사 기사 알프레도를 통해 영화를 사랑하게 된 과정을 그리는 듯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앞의 두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 영화를 꼽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살바토레가 영화를 사랑하게 된 과정보다 영화를 매개체로 나이를 초월해 같은 시간을 공유한 두 사람이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이 더 돋보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사진 이후 기록의 의미는 사진 이전과 비교해 완전히 달라졌다. 사진 이전의 기록은 순간을 포착하는 행위가 아니라 순간을 사유하고 고찰하는 행위였다. 문자 한 획 한 획을 그으며 순간을 해석해야 했고, 기억에 담아 한 올 한 올 풀어내 그려야 했다. 포착이라는 단어가 그 자체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사진 이후 부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순간을 포착하는 정도가 아니라 순간들의 연속을 있는 그대로, 아예 현실에서 떼어버리는 듯한 영화의 등장은 사유와 고찰의 행위가 강했던 기록에 감각과 인지의 행위를 더했다. 순간은 자신의 기억으로 사유하고 고찰해 해석하며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하고 인지해 형성하는 것이 된다. 사유와 고찰이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 때의 현실이 있는 그대로 재생되고 있기에 사유와 고찰을 통해 하나하나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더 직관적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순간들은 보는 이의 감각과 감정과 조응해 거대한 정동으로 이어진다. 관객 하나하나에 달라붙은 순간의 감각과 감정들이 관객의 감각과 감정과 만나 순간을 사유하고 고찰하는 것 보다 앞서 눈앞의 순간을 재형성하는 것이다. 감각과 감정으로 재형성되는 순간들은 보는 이에 따라 너무나 달라 쉽게 통일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순간들을 관통하고 둘러싸는 거대한 정동 에너지 속에서 단일하지만 다채로운 순간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영원한 순간으로 직관적 반복을 이어가기에 매순간 감응하는 정동 에너지에 빠질 수도, 계속해서 곱씹으며 더 깊은 맛을 음미할 수도 있게 된다. <씨네마 천국>의 영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영화를 보고 있는 시칠리아 주민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 떠오르는 순간의 환상에 울고 웃고 화내고 즐거워한다. 그들의 모습은 스크린으로 그들을 보고 있는 관객과 동일하다. 관객의 입장에서 경험한 적 없고 원래라면 감각조차 할 수 없는 순간이 시칠리아 주민들을 통해 이중으로 중복된다. 필름 영화의 시대를 영사실에서 함께 거치고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젊은 시절의 사랑을 함께 느끼는 살바토레와 알프레드의 모습에서 관객은 직관적 순간을 삼중으로 경험한다. 마지막으로 편집하면서 잘라낸 방종한 필름들을 엮어 만든 알프레드의 마지막 영화로 관객은 직관적 순간은 사중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오직 그 순간을 함께 경험한 살바토레와 알프레드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과 감정이 관객의 감각과 감정을 만나 감응한다. 겉잡을 수 없이 그 순간을 포착해 떼어놓은 영화라는 매개체가 아름다워 보인다. 매개체로 사랑의 정동이 폭주한다.

하지만 <씨네마 천국>의 영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영화가 직관적으로 반복되어 계속해서 음미할 수 있는 정동의 매개체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전혀 다른 세대를 살아 마주할 수 없을 줄 알았던 두 사람이 같은 시대를 경험할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경험을 영화를 통해 직관적으로 재형성해 시간을 넘어 소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록이라는 행위는 애초부터 해석의 행위이다. 감각과 인지에 의한 것이건 사유와 고찰에 의한 것이건 기록은 행위자의 에너지가 타자들에게 전달되는 행위이다. 그 에너지에 감응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각과 감정의 에너지에 몰입해 다시 그 에너지를 다른 타자와 나눌 수 있다는 것에 우리는 빠진 것이 아닐까? 살바토레와 알프레드의 관계에 감응해 그와 같은 관계를 꿈꾸며 자신만의 순간을 기대하게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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