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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Jul 30. 2023

밀수 단상

강남. 메가박스. 밀수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헛발질 하는 자맥질 사이 유효한 몇몇 발길질


전작과 비교해 아쉬운 점이 많지만 또 그만큼 유효타도 적절했던 영화이다. 그런데 류승완 감독이라는 이름값과 비교하면 적절했다고 하는 몇몆 유효타도 아쉽게만 느껴진다. 1970년대 가상의 항구 도시 군천을 배경으로 먹고 살기 위해 밀수를 시작한 해녀들의 이야기인데, 아니 해녀들의 이야기여야 하는데... 서사 내부적으로 밸런스가 안 맞는 느낌이다. 안 맞는 밸런스를 억지로 끼워 맞췄으나 계속 흔들리다가 간신히 결말에 도달했다고 봐야 할 듯하다.

우선 여성 투톱이라고 했으나 아무리 봐도 여성 원톱에 가까울 정도로 진숙보다 춘자가 도드라진다. 배우의 연기 문제라기 보다는 인물 설정에서 춘자가 진숙보다 훨씬 능동적이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인 밀수를 할 때 춘자는 진숙보다 항상 앞서 있다. 춘자는 진숙보다 더 독하고 냉정할 뿐만 아니라 그가 밀수를 직접 기획하고 상품을 유통했으며  물주인 권 상사와 장도리 사이의 중간 단계 역할까지 맡고 있다. 즉, 춘자는 진숙보다 감정, 행동력, 정보 등에서 모두 앞서 있다.

그에 반해 진숙이 춘자보다 나은 것은 가족을 잃어 감정적으로 분노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그런데 춘자도 억울함에서 비롯한, 비슷한 크기의 분노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진숙은 춘자를 향한 분노를 제대로 풀지도 못한 채 계속 삭히고 있다. 춘자가 나타났을 때 뺨을 2대 날린 것 빼고는 주변의 다른 해녀들을 위해 밀수 계획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할 뿐이다. 분노가 인물의 행동력으로 이어지지 못하니 서사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진숙이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춘자와 러닝메이트일 때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러닝메이트라고 했으나 사실 진숙은 춘자에게 매달린 돌과 같다. 쉽게 매달고 달릴 수 있는, 하지만 매달려 있어 신경쓰이는 귀찮은 돌이다. 류승완 감독은 인물들의 연대라는 힘을 이용해 악당들을 시원하게 박살내는 쾌감을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 쪽이 수동적인 인물 로 되어 있어 연대를 통한 쾌감이 아니라 방해물을 어떻게든 디딤돌로라도 써보려고 애쓰는 모양새가 된다. 차라리 권 상사-장도리-춘자-진숙, 이렇게 더 복잡하게 얽힌 사자관계였다면 진숙이 더 능동적인 인물로서 더 큰 쾌감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여성 인물의 추만이 아니라 조연들 사이의 추도 너무 많이 기울어져 있다. 영화에서 해녀들은 밀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물들인데 실제 활약상이나 주목도는 권 상사, 장도리 일당, 세관의 이장춘 계장보다 못하다. 해녀들은 밀수의 규모를 위해 넣은 서사적 장식품에 가깝다. 밀수에 참여하는 이유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를 제외하면 없다. 먹고 살기 힘들어 밀수를 시작하게 된 해녀들로 퉁쳐지는 것이다. 마지막 수중액션씬은 새롭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전의 권 상사와 장도리의 액션에 비하면 수중이라는 한계로 임팩트가 약하다. 애초에 서사에서도 간단한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나 일하는 일꾼 정도만 하고 있었기에 해녀들은 주목을 받을 수 없다.

영화에서 밀수는 치밀한 첩보 작전과 같아야 했는데 실상 해녀들은 일개 병사 역할만, 그것도 단순 돌격만 하는 일개 병사에 불과하다. 그냥 밀수 있다 하면 와서 짐 옮기는 트럭 역할만 한다. 잠입을 한다던가, 힘으로 눌러버린다던가, 도발을 잘한다던가 등. 능력적 개성이 있을 수 있다. 군천이라는 촌동네를 미치도록 떠나고 싶다던가, 복수심에 불탄다던가, 동료들이 정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던가 등. 감정적 개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해녀들은 다른 조연들과 비교해 쉽게 대체 가능한 병사에 불과하다. 진숙보다 춘자 쪽으로 추가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다른 해녀들까지 존재감이 없으니 서사의 축이 아예 기울어져 있다.

이러니 악당들에게 배드 엔딩을 선사할 수 있는 수단이 해녀들에게는 존재할 수 없다. 춘자, 진숙, 해녀들이 감정이든, 능력이든 밀수 작전에서 영향을 줄 수 있어야 악당들에게 변수를 만들 수 있는데 춘자를 제외하면 사실상 영향 자체를 줄 수가 없다. 결국 한국에서는 찾을 수 없던 백상아리라는, 밀수와 완전 무관한 요소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아니 그래도 시기가 1970년대인데 백상아리는 진짜 너무 성의없는 거 아닌가... 심지어 위치도 충청도와 전라도 사이의 황해였는데... 상어의 개연성을 만들기 위해 다리를 희생 당한 해녀 억척에게 묵념과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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