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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Aug 15. 2023

비밀의 언덕 단상

이수. 아트나인. 비밀의 언덕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가족을 향한 달콤씁쓸한, 솔직한 비밀

가족을 향해 애증을 느끼는 명은에게 공감이 가는 영화이다. 세계 어디나 가족은 개인이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하는 고민의 시작점이다. 왜 태어났는지를 고민하는 인간에게 육체적 시작이자 사회적 기반인 가족은 존재론적 고민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과 하나부터 열까지 안 맞아서와 같이 있으면 있는 대로, 왜 태어나게 했는지와 같이 없으면 없는 대로 크고 작은 존재론적 고민을 시작하게 한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으면 좋겠으나 자신을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게 한 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부터 고민을 깨닫지 못하거나 아예 묻어두고 살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고민을 깨닫는 순간부터는 존재론적 고민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영화 속 명은처럼 도덕적 불쾌도 감수해야 한다. 부모를 미워한다는 감정에 화들짝 놀라고 형제자매에게 애정을 못 느끼는 것에 어딘가 짓눌리는 기분이 든다. 존재론적 고민의 제공자에게 증오의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이성적 인식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인지의 충돌. 충돌의 여파는 자신을 향한 부끄러움의 감정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제공자에 대한 부끄러움까지 이어지는 듯하다. 자신의 존재가 자신과 맞지 않는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에서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 쉽게 말을 꺼낼 수 없는 감정들이다.

명은이 가족에게 느낀 감정은 필자가 느끼는 감정들과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전학 온 혜진과 하얀 자매에게서 솔직하게 쓴 글이 더 좋은 글이라는 말을 들은 후 가족에 의해 느끼는 도덕적 불쾌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남긴 글은 영화의 심사위원들만큼이나 관객들을 쉽게 공감시키는 글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관객만큼이나 명은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신문에 공개되는 상황이 정말 좋은 일인가? 분명 가족이 밉지만 반대로 가족이 상처 받는 상황도 싫다. 대상이라는 칭찬 이후 급격하게 몰려오는,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로는 온전히 표현이 안 되는 다중다층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어린 아이의 눈과 귀로는 미처 알지 못했던 뒤늦은 정보들이 가족을 향한 다중다층의 감정을 더욱 심화시킨다. 솔직하지 않을 때도 문제지만 솔직할 때조차도 문제라니... 가족사란 정말 어렵기 그지 없고 세상사도 마찬가지로 정말 어렵기 그지 없다. 그럼 이제 어떡하나... 어떡하긴. 자기 감정도 자기 자신도 알게 되었고 비밀스럽게 혹은 솔직하게 표현해봤으니 그것으로 되었지. 그저 잊지 않기 위해 땅에 묻고 가슴에 담은 채 묵혀놔야지. 언제고 다시 마주할 수 있게 충분히 익혀야지. 솔직한 비밀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아이는 변화했다. 스크린 너머의 관객은 어디까지 변화할지는... 그건 자기만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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