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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Aug 23. 2023

콘크리트 유토피아 단상

영등포. CGV. 콘크리트 유토피아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변주의 아쉬움을 남기는 정석적 포진


기대와 아쉬움이 남는 영화이다. 사실 아쉬움 쪽이 더 크긴 하지만 아직 성장 중인 감독인 만큼 일부러라도 기대에 더 힘을 싣고 싶다. 어쨌든 이제 두 번째 장편 상업 영화인데다 두 번째에 이 정도로 대중성을 짚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 아쉬움이 크다는 생각이 들지만 역설적으로 기대가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기대가 커진 만큼 앞으로 준비해야 하는 일도 막중할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를 정석적인 멜로드라마로 풀어내는 듯하다. 권선징악에 기초해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하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굉장히 익숙하다. 이미 수많은 이야기가 다양한 매체와 장르로 풀어진 만큼 새롭게 느끼기 어렵다. 어떤 이유로 발생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대지진 장면과 완전히 초토화된 서울과 아파트 단지 장면 등이 영화를 새롭게 만들기는 하다만... 그 또한 보다 보면  익숙해진다.


장면만이 아니라 인물들도 익숙하다. 사람들을 속였으되 집단을 위해 뭐든지 다하는 리더 '영탁'을 비롯해 생존자 집단의 최초 구심점이자 집단의 정신적 행동대장인 '금애', 인간다움을 고민하는 전직 간호사 '명화', 생존과 도덕 사이에서 고민하다 무너지는 '민성', 유일하게 도덕을 고수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도균' 등. 클리셰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이 모두 모여있다. 권선징악에 기초한 서사에서 이들은 모두 각자에게 주어져 있는 운명을 향해 익숙하게 내달린다.


잠시 한 가지 아쉬운 것을 더 말하면 배우 박시후가 연기한 '혜원'이라는 인물. 이렇게 소비하고 끝나다니. 영탁의 비밀을 밝히는 도구 이외에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는 인물로 느껴져 반전이 크게 놀랍지 않다. 대체로 이미 예상하고 있을 반전이지만 반전까지 다가가는 방식이 아쉽다. 영탁이 다른 인물들과의 소통 중 보이는 실수들이 쌓이다 명화에 의해 밝혀지는 것은 어땠을지...


그러나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익숙한 서사에 캐릭터를 활용하고 있는 것과 별개로 아파트라는 소재를 활용해 관객의 공감을 일으키는 대중 영화라는 점은 중요하다. 특히 이제 막 데뷔한 젊은 감독의 영화라는 점에서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조금이라도 더 대중과 소통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일종의 실험이 아닐까 한다. 실험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제 겨우 2번의 대중 영화를 만든 감독이 대중성에 대한 감각이 있다는 것은 앞으로늘 더 기대하게 한다.


추가로 영화에서 인상 깊게 느껴진 것은 다른 영화와의 연관성, 배우 김도윤의 변신, 배우 이병헌의 연기이다. 아파트라는 비슷한 소재로 시스템 내 일원들의 비인간적 아귀 다툼을 다룬 <드림 팰리스>는 영화 내에서 황궁 아파트 단지의 이웃에 있던 아파트 단지로 언급된다. 금애를 연기한 배우 김선영과 '엄 부장'을 연기한 배우 김용준이 각각 '혜정'과 '주민 대표'를 연기했다. <드림 팰리스>의 기시감이 느껴져 오히려 몰입하게 됐다.


배우 김도윤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외부인들을 돕다 낙인이 찍히고 자신처럼 외부인을 도운 주민들이 공개 조롱을 당할 때 아파트에서 뛰어내린다. 황궁 단지의 몰락이 암시되는 장면이랄까. 각설하고 타인을 위하는 '도균'을 연기하는 배우 김도윤의 뒤로 <지옥>에서 화살촉 수장 '동욱'을 연기한 것이 언뜻 보인다. 재밌는 기시감 덕분에 몰입하면서 더욱 인상 깊게 봤다.


배우 이병헌은 정말 미쳤다. 그냥 미쳤다. 연기에서 가장 표현하기 쉽게 느껴지는 감정이자 그만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분노일 것이다. 강한 자극은 그만큼 쉽게 익숙해지고 새롭게 느껴지려면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 강약조절이 없는 분노는 처음만 인상 깊을 뿐 뒤로 갈수록 밋밋한 것이다. 그런데 배우 이병헌은 세심한 감정 조절과 섬세한 제스처로 영탁의 변화를 납득시키고 그에 따라 매번 다른 분노를 보인다. 보는 내내 감탄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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