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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Sep 20. 2023

오펜하이머 단상

잠실. 롯데시네마 슈퍼플렉스. 오펜하이머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편협함을 짊어지고 지옥으로 묵묵히 나아가리

무서운 장면 하나 없이 무서운 공포 영화는 <컨저링>이 아니라 <오펜하이머>이다. 해외 매체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오펜하이머>에 대해 공포 영화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에는 이게 뭔 소린가 싶었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이름을 내걸은 전기 영화를 공포 영화라고 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있나?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공포 영화"라는 놀란 감독의 인터뷰도 그 인터뷰를 보고 난 이후 느낀 당황스러운 감정도 일상 속에서 잊혔다. 그리고 잊혔던 인터뷰와 감정이 관람하면서 순식간에 떠올랐다. <오펜하이머>는 공포 영화이다.

<오펜하이머>에서 무서운 장면 중 하나를 꼽으라면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스트로스 제독과 오펜하이머가 처음 만난 장면을 꼽겠다. 오펜하이머는 스트로스 제독에게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실은 '미천한' 구두 수선공이었느냐고 한다. 유럽 유학 동안 유태인 혐오를 견디고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어 핵폭탄을 만든 위대한 과학자가 실제로는 직업의 귀천을 나누는 편협한 인간이라는 공포. 인간다움이라고도 할 수 있을 오펜하이머의 편협함은 그가 아인슈타인에게 말했듯 멈추지 않는 파멸의 시작이 된다.

핵폭탄이라는 거대한 폭발을 보며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손으로 제어할 수 없는 끔찍한 무기를 만들어 피를 묻혔다고 느끼며 괴로워 한다. 자신들이 만들어도 문제지만 나치의 손에 들어가면 세상은 완전히 끝이라는 믿음으로 밀고 나아가던 이전의 오펜하이머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런 대비에 더해 자신을 명예의 왕좌에서 쫓아내려는 스트로스의 계략에 죗값을 치룬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견뎌내려는 오펜하이머의 태도는 숭고한 듯하면서도 치졸하게 느껴진다.

<오펜하이머>는 단순한 전기 영화가 아니다. 오펜하이머를 비롯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위인들이 그 한 획 뒤에 멈추지 않을 파멸의 시작일 편협함을 숨긴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공포 영화이다. 객관이란 것에 가까울 과학적 사실을 다루는 과학자들도 자신들이 만든 파멸을 마주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주사위를 굴리며 확률 놀이를 한다. 그러한 모순. 모순 속에서 인간은 위대한 발명을 하다가도 자신이 겪은 혐오를 다른 방식으로 표출하기도 한당. 자신의 연구를 도운 동료를 돕는 것이 아니라 질투해 그에게 불리한 진술을 서슴없이 한다.

핵분열과 핵융합이라는 모순된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듯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시간선과 미래에서 과거로 오는 시간선이 번갈이 진행된다. 모순에 모순이 겹치면서 위대한 인물의 편협함이 더욱 돋보인다. 그러고 보니 위대한 인물이 저리 편협하다면 그가 만든 위대한 산물은 범인인 우리가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 위대한 인물조차도 자신의 편협함에 쓰러지는데 범인인 우리는 우리 자신의 편협함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스스로 공포를 지닌 채 서로를 보며 무섭다 울부짖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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